『편린 속의 파편조각』

글쓴이; 주  환

밤새 내린 비바람이

곱게 자란 꽃잎을 짓밟아 놓았네,

봄날이 몇 날이나 된다고

비바람 불 곳 그리도 없더냐!

위에 소개된 4행으로 이루어진 글은 필자의 글이 아니라, 21세기 오늘날에도 생산되는지는 모르겠지만, 1980년 이후 1990년대 이전까지 생산되어 시판되던‘에뜨랑제’라는 껌이 있었는데, 그 껌종이에 인쇄되어 있던 어느 무명인의 글이다. 위의 글은‘과거 운동권학생의 회고’라는 필자의 수필에 소개된 글이기도 하다.

위의 글에서‘비바람’이라는 표현에 대해 혹자는 어떻게 해석할지 모르겠지만, 소개된 글의 전체문맥의 흐름으로 봐서 인권의 자유를 유린하는 강압 내지는 억압이라고 필자는 해석한다. 수필에서도 마찬가지로 해석했다. 단순하게 문자 그대로만 본다면 어떻게‘비바람’이 강압과 억압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말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詩적으로 표현된 모든 문장은 직언으로 표현되기보다는 우회적, 즉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게 다반사이다.

물론 위에 소개된 글을 어떤 글에다 끌어 잡아당겨 쓰느냐에 따라, 또한 글쓴이의 내면적 정서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나, 필자가 해석하는 범위를 좀 더 상세히 말할 것 같으면, 2행에서의‘꽃잎’을‘생명’이라 해석해 볼 수 있고‘짓밟아 놓았네.’라는 표현은 앞에서도 해석해 놓았듯이 강압 내지는 억압이라는 뜻으로 자유를 유린했다는 해석이 되며, 3행에서‘봄날’이라는 표현을 하나는‘젊음’으로, 하나는‘자유’로 해석을 하였으며‘몇 날이나 된다고’는 일평생 중 젊음은 아주 짧다는 말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위의 4행으로 된 짧은 글을 인용하여 해석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자면, 흔히‘봄날’이라 하면‘젊음’을 연상할 수 있겠으나, 필자가 맞추려는 초점은‘봄’이라는 계절성이다. 그러면 앞에 해석해 놓은 모든 것들은 접어두기로 하고‘봄’이라는 계절을 생각해보기로 하자. 물론 사람마다 그려지는‘봄’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그려질 것이겠으나,‘봄’은‘고향’이라 말하고 싶다. 그 이유는‘봄’이라는 계절을 생각하다보면 약속이나 한 것처럼‘고향’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고향’을 생각하다보면 바늘과 실처럼‘향수병’이라는 정서가 연상되기도 한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말이 되겠지만‘향수병’이라 함은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뜻이다. 그리움이 짙다보면 상사병에 걸리게 되는데, 상사병에는 백약이 무효라는 말이 있다. 다만, 상사병을 낳게 하는 명약이 단 하나가 있는데, 상사병을 앓게 된 원인을 분석하다 보면 상사병을 앓게 한 그 대상은 때로는 사람일 수도 있고, 때로는 고향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사람으로 인해 생긴 상사병에는 원인을 제공해 준 사람이 명약이 될 것이요, 두고 온 고향으로 인해 생긴 상사병에는 원인을 제공해 준 고향이 명약이 된다.

그러나 똑 같은 증세를 보이는 상사병이라 하더라도 고향으로 인해 얻게 된 상사병에는 두고 온 고향이 있다하더라도 물질문명발달로 인하여 고향마저도 이미 오래 전에 낯선 모습으로 바뀌어버렸기 때문에 21세기 오늘날에 와서는 더 이상 명약이 될 수조차 없는 게 바로 고향이기도 하다.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삶의 편린하나 때문에 문명발달을 인정하며 모순사회를 건설하였음을 스스로의 내면으로 인정하면서도, 외면으로는 패배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부반응 때문에‘고향’이라는 향수병마저 앓을 권리조차 스스로 유린해버리지는 않는지 의문이 생긴다.

아래에 소개되는 시를 어떻게 받아들여 해석하느냐 따라 그림은 천양지차로 그려지겠으나, 필자의 시각적 정서로 말할 것 같으면 봄만 되면 누구나 한 번씩 앓게 되는 두고 온 고향에 대한‘향수병’의 치료약은 고향이 아니라, 우리네 마음속에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세대에 따라 나이에 따라 시시각각 다르게 그려지는 두고 온 고향을 연상해 본다.

아울러 아래에 소개되는‘장대규’시인의「도심의 은행나무 가로수」라는 서사시가 말해주는 메시지를 하나로 줄여본다면, 과학문명이 안겨 준‘편린 속의 파편조각’이라 생각하면서 필자 또한 그 파편조각 속에서 진리를 찾는 자아(自我)를 본다. 맺음을 하면서‘도심의 은행나무 가로수’라는 시제에서 은행나무는 접어 둔 상태의‘도심의 가로수’를 현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이라 생각했다.

도심의 은행나무 가로수/ 장대규

현세(現世)의 도심(都心)에 태고(太古)가 끌려 와

칼칼한 목 후비며

해가 저도 밤이 없어 달마저 제 빛을 잃는

참빗살 같은 현실과의 시간 차이 아픔을

검은빛 짙은 회색 눈물로 감추고

수억 년 묵은 향수(鄕愁) 목관(木棺)에 담아

황금빛 밀랍 발라 역한 냄새로 봉(封)하고 나면

칙칙한 회색 거리에

찬 기류 타고 오는 피할 수 없는 손님을 위해

가로등 조명과 바람의 장단에

꽃도 잎도 아닌

진화(進化) 멈춘 화석(化石)의 황금빛 옷 벗으며

갖은 교태 다하고

화대 없는 알몸

거적 한 장으로 아랫도리 가리고

더욱 매몰찬 다음 손(客)을 기다리는 속내는

울 수도 없는 혼(魂)이 없는 육신

통정을 바라는 손들의 놀이개로

철사줄 같이 옥죄이는 날들을 하늘 향한 푸념

아, 얼마나 먼 곳에 고향은 있는가.

△ 2008년12월 특별기획집 ≪현대특선시인선≫ 中에서.

장대규 시인―

경북 포항시 북구 거주

경일대학교 건축공학과 졸업

현, 건축설계사무소 근무

2008년3월 시와 수상문학 시인 등단

2008년6월 시와 수상문학 특집시인상 수상

2008년10월 계간 대한문학세계 가을호 시인 등단

2008년12월 특별기획집 ≪현대특선시인선≫ 공저

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 정회원/본회 기획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