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대한문학세계 가을호 인물탐방 - 최우서 시인
 
베란다로 몰려드는 땡볕 한 무더기가 그녀의 모자챙으로 타고 돌더니 내 시선과 묵묵히 눈을 맞춘다. 강렬히 들어오는 빛에 잠깐 동안 눈이 부신다. 후끈한 더위까지 밀어내는 그녀는 여름의 풍경처럼 책상 앞에 고즈넉이 앉아서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다. 화가 앞에 앉은 미모의 모델 같기도 하고 얼핏 보면 사무실의 일부로 착각이 들 만큼 조각적이기도 하다. 단 5초의 미동만으로도 자연처럼 느껴지는 특이한 이미지. 대부분 사람의 첫 인상은 굉장한 에너지를 품고 있기 마련이다. 그녀가 고개를 천천히 들어 입가에 미소를 떠올리자 사무실이 환하게 밝아졌다. 대한문학세계 회의실에서 만난 최우서 시인의 첫인상은 눈부신 깃털이었다. 인상적인 인터뷰가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취재 예감이 거의 빗나간 적이 없었던 만큼 이번 인터뷰도 상당히 인상적일 것 같은 느낌이다. 뭔가 서려 있는 분위기부터가 다른, 깊이 있고 신비한 느낌의 최우서 시인을 만나본다.
Q. 최우서 시인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번 여름은 백여 년 만의 폭염이라는데 어떻게 지내셨나요?
A. 네 안녕하세요, 먼 길 오셨네요. 반갑습니다. 지독히 더웠어요. 어떻게 더위와 맞서야 하나 고민하며 지쳐가다 보니 어느새 선선한 새벽이 와 있던걸요.
Q. 그래요 무더위에 고생 많으셨습니다. 최우서 시인님은 2017년에 대한문학세계 시 부문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하셨는데요, 이 가을에 시의 진수를 보여주시길 기대해 봅니다.
혹자는 시가 고상한 언어의 집합이다, 말로 그리는 그림이다, 마음을 고감도로 복사해 내는 것이다 등등의 표현들로 쓰기도 하는데 최우서 시인님은 한 마디로 어떻게 표현하시겠습니까?
A. 시는 마음의 그림이고 그림은 시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시란 것은 특히나 주관적이고 직관적 철학이 강한 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물과 현상에 대한 시인의 주체성을 또렷하게 드러낸다고 봅니다. 아울러 시인은 고유의 색채로 시적 대상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Q. 시인님은 시를 쓰고 싶을 때가 특별히 따로 있나요?
A. 어느 특정한 날이 달리 없고요, 매일 좋은 글을 쓰고 싶지만 마음처럼 쉽지가 않네요. 꿈속에서도 시를 쓰고 싶습니다.
Q.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용기 있는 사람만이 시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류입니다만 최우서 시인님의 견해는 어떠하신지요?
A. 인간은 누구나 시의 감성을 본능적으로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만의 용기보다는 솔직한 심정을 지면에 옮겨 놓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많은 작품을 읽고 느끼고 표현하며 자기만의 독특한 창작 기법을 개발하는 것이 더 좋은 작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도 생각해 봅니다.
Q. 시가 삶에 얼마만큼 영향을 끼칠 것이라 생각하시는지요?
A. 음악이나 그림으로 마음의 상처도 치유되는 세상입니다. 시는 고대시대로부터 인간을 도울 수 있는 가장 고급스러운 도구로 인식되어 왔지요. 살아감에 정신과 마음에 위안을 얻을 수 있고 또한 시나 글을 통해 희망을 갖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Q. 어떤 마음으로 시를 쓰시는지요?
A. 늘 부족한 부분을 배운다는 자세로 쓰고 있습니다. 글을 쓰는 시인이기 이전에 내면의 인간성을 갖추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하니까요. 글을 쓸 수 있는 건강과 감성을 물려주신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을 이 시간을 빌어 전하고 싶습니다. 졸작을 읽어주시는 독자들께도 깊이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Q. 시인님의 시 중에서 좀 더 애착이 가는 시 한 편만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A. <무탈>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무탈 / 최우서
정해진 방향을 쫓아 내 맡겨진 일상이
시침을 따라 돌고 있다.
일탈을 꿈꾸었지만
되돌아 갈 수 없었고
정확히 한 칸을 넘는 분침의 손이 정교하다.
끝없이 조립되는 반복의 공회전
한 번쯤 멈추고 싶었지만
잡은 손의 저림이 전해졌을 뿐
몸의 무게는 차갑고 무겁기만 하다.
방향을 잃지 않으려는 일정한 간격은
밤과 낮의 경계를 예리하게 긋고 새벽에 꽂힌다.
허공을 가르는 자명종 소리
침묵을 깨고 하루를 맞춘다.
딸깍
인생의 초침이 넘어가고 있다.
Q. 네 잘 보았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돌이킬 수 없는 삶의 무게,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냈는데도 남는 인간의 고뇌 등을 냉철하고도 밀도 있게 표현하신 무탈은 시의 색깔 자체가 오묘합니다. 당시의 자세한 느낌을 들려주시겠습니까?
A. 1에서 12까지의 숫자판 위에 시침과 분침과 초침으로 단순 반복의 무료한 일상의 노동을 떠 올렸습니다. 때로 일탈을 꿈꾸기도, 무의미한 삶이라 여길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왕좌왕하지 않는 일상이 세상을 지탱하는 힘임을 깨닫고 팽팽하고 힘겨운 일상의 하루하루지만 아무 탈 없이 돌아가는 균형이 있기에 자신의 존재 위에 자유로운 여백을 즐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딸깍 넘어가는 하루의 시작에 감사함을 담았습니다.
Q. 그러셨군요. 깊은 뜻이 이제야 이해가 갑니다. 짧지 않은 시간인데 흔쾌히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A. 네 제가 고맙지요. 적극적인 도움을 드리지 못해 죄송스럽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좀 더 많은 대화 나누었으면 좋겠네요. 그 동안 시도 많이 쓰고 괜찮은 이야깃거리도 많이 만들어 놓겠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최우서 시인님께 거듭 감사드립니다. 최우서 시인은 독특한 사람이다. 대구에 사는 그는 현재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 회원으로 있으며 대한문인협회 대구경북지회 정회원이기도 하다. 2017년 한국문학 올해의 시인상도 수상했으며 순 우리말 시 공모전에 장려상으로 수상했던 최우서는 훌륭한 이력만큼이나 조용한 배려를 품고 사는 시인일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게다가 지난 6월에는 통일 짧은 시 짓기 공모전에서 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미술학원장, 논술학원장 이력으로 현재 재능기부 봉사를 열심히 실천 중이다. 그런 최우서 시인께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내며 해거름에 서울로 길을 잡는다.
|
공지사항 
공지사항
main menu
공지사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