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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택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한영택
ㆍ작성일	2024-05-22 22:08

ㆍIP: 1.xxx.79

지리산 종주 (1편: 노고단의 달, 삼도봉의 일출)

지리산 종주 (1편: 노고단의 달, 삼도봉의 일출)

한영택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고 하여 지리산(智異山), 한자로 지이산(智異山)이라 쓰지만, 한글로 지리산이라 읽는데, 지이는 우리말 지리에서 변형된 것으로 본래 산을 뜻하는 ‘두레’에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고 ‘두레’는 두류라는 한자를 붙여 산의 이름으로 사용, 또 다른 설은 지혜로운(異人)의 산으로 특이하면서도 슬기롭고 지혜로운 산이란 의미에서 지명이 유래되었다. 별칭은 두류산, 방장산, 삼신산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예로부터 금강산 한라산과 함께 삼신산에 해당하고 민족적 숭상을 받아 온 민족 신앙의 영지다. 능선 사이사이 칠선계곡, 한신계곡, 대원사계곡, 피아골, 뱀사골 등 큰 계곡이 있어 계절마다 많은 등산객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필자는 1992년 10월에 (30년 전) 30대 젊은 시절 직장 동료 몇 명과 함께 무박 1일 지리산 천왕봉을 오른 적이 있다. 당시엔 새벽 2시에 중산리에서 올라 6시에 천왕봉(1,917m)에서 일출을 보고 장터목대피소를 거쳐 오후 2시경 다시 중산리로 하산(총 12km)한 적 있었다. 지리산 완전 종주는 최소 1박 2일 정도는 되어야 할 수 있는데 무박 1일 종주? 감히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번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거 같아 과감히 도전키로 했다. 30대 젊은 시절과 달리 세월이 흘러 60대인 지금 체력이 감당할 수 있을까? 34.9km(제한 시간 14시간)의 엄청난 거리의 산행이 낙오되지 않고 하루 만에 과연 소화할 수 있을까? 경험치 못한 것이기에 약간의 두려움도 있었다.

11월 27일 월요일 밤 12시 대구에서 드림산악회 백두대간 종주 팀에 합류해 버스로 새벽 4시경 전남 구례군 산동면 좌사리에 위치한 성삼재주차장에서 당도 드디어 일행들과 산행 시작이 시작되었다. 깊은 산속 고요한 밤 코끝으로 시원한 공기가 깊숙이 허파를 파고들었다. 이번 종주는 주기적 산행으로 단련된 정예 회원들로 감히 누구나 함부로 도전할 수 없는 당일 코스 34.9km를 14시간 만에 완주하는 것이다. 성삼재에서 산행 시작 주봉인 노고단(1,507m), 천왕봉(1,917m)을 오른 후 오후 6시까지 중산리주차장에 도착해야 한다.

출발점에서는 대부분 능선을 타고 가는 것이라 좀 수월한듯하다 하지만, 워낙 장거리이고 간간이 힘든 구간이 있는 데다가 세석평전 이후부터 천왕봉까지 5.1km는 갈수록 이어지는 오르막으로 특히 막판 장터목대피소에서 천왕봉까지 1.7km는 최고로 힘들 것이라 한다. 이후 천왕봉에서 중산리까지 5.4km 또한 급격한 내리막에 돌계단으로 이어져 각자의 체력과 페이스에 따라 다르기에 가다 보면 최종 시간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새벽 5시경 노고단(老姑壇: 지리산을 수호하는 성모신인 노고(할미)에게 제사를 지내는 터) 돌탑까지 오르니 주변은 왜 이리 밝을까? 하늘을 보니 중천에 커다란 둥근달이 떠 있다. 궁금해서 날짜를 보니 음력 10월 15일 보름날이다. 때를 낮추기도 어려운데 지리산 종주하는 날 이런 행운을 주다니~~~ 환하게 비치는 둥근달에 북쪽 하늘엔 북두칠성이 또렷이 보이고 무수한 별들이 반짝거리는 밤의 운치를 마음껏 만끽한다. 사방이 고요한 깊은 산속에서 본 밤하늘이 옛 어린 시절 시골에서 보았던 밤하늘이었다.

일행들은 대부분 라이트를 켜고 간다. 하지만 필자는 켜지 않고 그냥 간다. 숲이 없는 능선길이라 달빛이 가는 길을 환하게 밝혀주고 있기 때문이다. 키 작은 대숲이 길옆으로 길게 이어진다. 비교적 수월한 산행이 이어지고 있다. 새벽 6시가 지나자 밝게 빛나던 둥근달이 희끗희끗해지며 서쪽으로 기울며 산 능선에 걸터앉아 주변으로 연한 주홍색으로 덧칠 한다.

6시 20분경 삼도봉에 다다르자, 주변이 조금 밝아지는 느낌이다. 동쪽으로는 붉은 기운이 감돌지만, 이른 새벽이라 온몸이 덜덜덜 추워진다. 여기는 전라북도와 경상남도의 경계선이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아 표지석에 라이터를 비추며 기념 촬영을 하는 사람들로 바쁘다. 일출을 보려면 10분은 더 기다려야 한다. 다음 일출 장소는 화개재 1.8km 거리라 여기서 일출을 보기로 했다. 뒤따라온 일행은 바로 간다며 ‘보고 오세요.’하고 먼저 떠난다.

붉고 둥그런 불덩이가 솟아오른다. 와~~~ 기다리던 모든 사람이 환호한다. 부부끼리, 연인끼리, 동호인끼리~~~ 필자는 아가씨와 같이 온 젊은이에게 서로 사진을 찍어주기로 하고 열심히 찍었다. 같은 입장이라 산을 찾는 사람이면 산행 중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 망설임 없이 도움을 준다. 붉은 광채를 뿜어내는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는 장면을 첩첩산중 지리산 속에서 기록사진으로 남길 수 있는 기쁨과 또 한 번의 행운을 맛본다.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이곳에서 20분이나 지체했으니 앞서간 일행은 한참이나 앞서갔을 터 워낙 대단한 사람들이라 따라잡기도 만만찮을 거 같지만, ‘코로나19’ 이전 마라톤 풀코스 5번, 지난 10월 설악산 공룡능선 20.1km 종주 경험이 있어 가능하리라는 자신은 있었다. 해가 떠오르니 나니 날씨가 너무 좋다. 올해 들어와 북한산, 설악산, 두 곳 다녀왔지만, 오늘이 날씨가 제일 좋은 거 같다.

사실 백두대간 종주 멤버 30명은 지난 2년 6개월 동안 (21.04.01~23.10.29) 박종윤 산대장님과 매달 2회 이상 정기적으로 산행을 해오던 사람들로 진부령에서부터 지리산 천왕봉까지 북에서 남으로 종주를 시작하여 끝을 내는 누적 1,471km 백두대간 종주 마지막 날에 필자는 합류하게 된 것이다. 일정도 그렇고 필자 혼자로선 지리산 종주를 감히 계획할 수 없기에 박종윤 산대장님의 안내로 지리산 종주에서만 같이하게 된 것이다. 그러기에 필자는 일행과는 조금 다른 행보를 보일 따름이다.
<다음 2편 연속>

23.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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