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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심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0-09-20 17:16

ㆍIP: 223.xxx.204

사는 맛이 사람을 살게 한다

#권영심의글
사는 맛이 사람을 살게 한다

권영심( 2020 .9 . 20 )

새벽 다섯 시에 문을 닫으며 날이 훤히 밝아 오는 시간에도 손님이 있는 때가
많은 우리 가게는 참 다양한 손님들이
방문한다
한 가지 공통점은 나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온다는 것.
한 사람이 자주 오진 않지만 대부분 한
달에 두어번은 온다
그 중 ㅇㅁ씨는 한 달에 한 번 오는데
기초 수급의 돈이 들어오는 날이다
그런 돈으로 술을 사먹으면 안된다고
아무리 말해 봐야 그에게 소 귀에 경 읽기나 다름없고 그는 죽기 위해 술을
마신다고 어느날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내가 암으로 죽은 후 두 아들과도 헤어져서 혼자 살아 가는데 이 세상을
살아야할 그 어떤 이유도, 재미도 없어
죽고 싶다고 말했다
이것은 너무나 위험한 시그널인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냥 입버릇 처럼 하는 말로 치부해서
아무도 들어주지 않으면 순식간에 그는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 버릴 수도 있다
나는 그와 마주앉아 진심을 다해 모든
이야기를 들으면서 상황을 자세히
알아 보았다

부부 금슬이 유난히 좋았으며 바람 한
번도 피운 적이 없고 집과 공장만을 오가면서 은퇴 후에 귀농하여 살아갈
희망을 가지고 소박한 삶을 살아온
성실한 서민이었다
그러나 부인은 암을 앓게 되고 전이를
거듭하는 심한 병세는 결국 단 하나의 재산인 아파트까지 팔게 만들었다
사 년의 시간이 흐르고 결국 부인은 죽고 그와 함께 ㅇㅁ씨는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그의 마음은 죽은 아내와 함께 땅에 묻혔고 빈 껍데기만 남아 이승을 유령
처럼 배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어떤 음식도 맛을 모르고 그 무엇도
좋은 줄을 모르며 오로지 술만 마셨다
술에 취하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가
없으며 아무도 없는 방에서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고 지내는 날이 오늘까지
이어져온 것이다
죽을 방법이 없다고 했다
약을 모아서 한꺼번에 먹어도 소용없고
소주를 깡으로 열 병을 마셔도 살아났다 고 했다
겁이 많아서 칼로 찌르거나 높은 데서
뛰어 내리는 것은 너무나 무섭다고
결국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엉엉
울었다

어느 주점에 가도 아무도 말을 걸거나
들어주지 않는데 내가 따뜻하게 대해
주어 여기만 오면 말을 하게 된다고
부끄러운듯이 약하게 웃었다
지독한 외로움이, 너무나 참담한 고독이
영혼을 어둠으로 물들여 한 인간을 저
아득한 심연으로 끌고 가려하고 있었다
취미도 없고 친구도 없고 두 아들과는
명절에도 얼굴을 보지 않으며 전화 통화를 하면 일 분도 되지 않아 아들이
끊어 버린다고 했다
복지사의 권유로 노인 회관이나 복지관
에도 가봤으나 한 번으로 끝났다
책을 권유해 보았으나 세차게 고개를
흔들고 무엇을 배우는 것도 노!
철벽의 은둔 고독남이었다
이런 류의 사람은 젊어서도 사교성이
거의 없어 자신만의 취미를 만들지 못
하면 나이들수록 살아갈 의지처가 없어
져 버리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무엇을 물으면 두 마디도
못 하고 화부터 내는데 나와 이야기하는
자신이 너무 신기하다고 했다

두 시간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래도 원하는 것을 알아내었다
영화를 아주 어릴 때 부터 보고 싶었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거의 본 적이
없다고 하는 그의 말에 나는 진정을 다해 가르쳐 주었다
일부러 영화를 보러 가지 않아도 하루 종일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
다행히 그의 집의 유선 방송이 울 가게와 같은 것이었다
그는 티비를 하루 종일 틀어 놓지만
놀랍게도 몇 개의 지상파 방송만 볼 뿐
아예 다른 번호는 돌리지도 않았다
우리 두 사람은 티비 앞에 서서 십 오분
이상을 보내었다
그도 티비에서 영화를 볼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돈을 내야 되고 , 또 하는
방법을 전혀 몰라서 아예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리모컨을 누르는 내 손과 화면에
열중하면서 무료 영화를 볼수 있다는
것에 정말로 놀라움을 나타내었다
무료 영화, 할인영화, 각 장르별로, 가나다 순서별로 찾는 법을 다 가르쳐
주자 그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 주 만에 오늘 온 것이다
표정도 달라지고 목소리도 생기가 있어
놀랐는데 그의 이야기는 나를 더욱 놀라
게 만들었다
그는 죽을 사람을 살려 주었다면서 내게
너무나 고마워 했고 영화뿐만 아니라
다시보기를 통해 뭐든지 찾아 보면서
여행 프로에 완전히 빠졌다고 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해외 여행을 하고
있다면서 잠도 잘 자고 티비를 보면서
밥도 잘 먹고 이렇게 좋아졌다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그는 작으나마 이제 자신의 사는 맛을
찾은 것이다
새벽마다 공원을 돌면서 걷는 운동을
하고 운동 기구도 사용하면서 술이
많이 줄었다고 활짝 웃는 ㅇㅁ씨가
정말 고마웠다
사는 맛이 생긴 그는 이제 또 다른 사는
맛을 찾아낼지도 모른다
봉사를 하면서 만난 어르신들에게 나는
여러번 취미를 찾아 주었는데 그 중
한 가지가 티비를 재밋게 보는 방법 이었고 그 방법은 항상 성공했다

살아갈 아무런 재미가 없다는 어르신들
에게 어쩌고 저쩌고 훈계하는 봉사자들
을 많이 보았는데 진심 말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의외로 건강이 좋은 어르신들이 많이
있고 그런 사람들에게 사는 맛이 없는
무료한 나날이 바로 죽음보다 더한
고통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주름이 고랑을 이루고 허리가 굽은
시골의 90대 어르신이 허름한 입성으로
새벽 밭둑을 걷는 모습이 위대하게 보이
는 이유는 할 일이 있는 늙음이 그 무엇보다 찬란한 훈장이기 때문이다
땅이 생업이고 취미이고 사는 맛인 늙은
농부는 은퇴한 정치인보다 빛난다
다른 사람들에겐 하찮게 보이는 취미 일지라도 당사자에게 사는 맛이 되고 낙
이 되면 살아갈 원동력이 된다
아무것도 할 일도 없고 아무도 말 걸어
주지 않고 언제나 혼자인 삶.
생각해 보면 너무나 끔찍하지 않는가?
지금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앞으로
홀로인 삶은 점점 많아질 것이다
그 때 나를 지탱해줄 취미를 , 살아갈 낙을, 사는 맛을 지금부터라도 찾아두어
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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