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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심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0-10-07 19:24

ㆍIP: 223.xxx.160

달구 수제비

#권영심의글
달구 수제비

권영심 (2020 , 10 , 7 )

우리 집은 밀가루 음식을 참 잘 먹었다
부모님이 다 좋아했고 편식이 심한 나
도 밀가루로 만든 것은 모두 좋았다
만두, 수제비, 빵, 국수, 칼국수... 우리집 부엌 옆 작은 광에는 밀가루 포대가 항상 두어 포대 있기 마련이었다
아버지는 수제비와 국수를 특히 즐겼고
나는 얇은 수제비 떼는 것을 아버지에게 배웠다
얇고 넓게 , 떼어서 냄비에 넣으면 수제 비 조각은 마치 춤을 추듯 공중돌기를
하다가 살며시 밑으로 내려 갔다
지금도 나는 아버지 만큼 얇고 넓게
떼지 못 한다
엄마는 반죽을 묽게 해서 스뎅 쟁반에
부어 젓가락 두 개로 떼어 넣는 수제비
를 좋아 했는데 나는 흉내도 못 낸다
어떻게 떼어 넣든지 우리 집은 반드시
고기를 넣었는데 닭이나 쇠고기다
때로 돼지고기 전골을 끓여 먹는 도중
에 반죽을 떼어 넣는 경우도 있었는데
수제비만 건져 먹을 정도로 맛있었다
그런데 나는 이 고기 수제비로 인해
친구와 부등켜 안고 운 기억이 있다

두 학년을 같은 반이었으나 한 번도 집을 가 보지 못 했는데 그 아이는 아주
가끔 저녁 나절에 우리 집에 놀러 왔다
훗날 중학교도 진학하지 못한 그 아이가
공장으로 일하러 가면서 말해준 진실에
또 한 번 목을 놓아 울었었다
술에 취한 아버지가 사정없이 때려서
도망치고, 길을 걷다가 불이 환한 시장
으로 오게 되면 자연스럽게 우리 가게에
오는 것이다
내가 가게에 있으면 가게에서 놀고, 집에 있으면 집에서 놀고, 늦게 놀아도
우리 부모님은 꾸중하지 않았다
가게 문을 닫고 우리들을 살피러 이 층으로 올라온 아버지는 친구를 시장 골목 끝 까지 데려다 주곤 했다
집이 어디냐고 묻는 아버지에게 친구는
고갈산 꼭대기의 루핑집에 사는 것을
숨김없이 말했다고 했다
- 니는 몰랐제? 너거 아버지가 낭중에
학교 마치고 오라캐서 갔는데 내복하고 양말하고 억시로 마이 줏다 아이가, 내는 새 양말을 그 때 처음 신어 봤다, 내복도 첨 입어 보고, 우리 엄마 갖다 줏는데, 엄마가 억수로 울더라-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친구는 그런 고백
을 하고 불과 열 네 살에 공순이가 되기
위해 내 인생에서 사라졌다

어느 초가을 저녁에 닭 수제비를 해서
먹고 있는데 그 아이가 왔다
엄마는 큰 그릇으로 떠서 가게로 가져
가고 남동생은 엄마를 따라 가서 큰
두리반 상은 자리가 넉넉했다
아버지는 크게 반기면서 친구를 앉게
했고 나는 솥에서 한 그릇 떠서 내밀었 더니 그 아이는 숟가락을 든 채로
가만히 있었다
솥에 남아 있던 닭고기를 많이 얹어 보기에도 푸짐한 한 그릇이었다
-와 그러고 있네? 밥 먹고 완? -
- 이게 뭡니꺼? -
- 뭐이? 수제비 아니가? 수제비 모르네
? 수제비에 닭고기를 넣어서 끓인 거이야, -
친구는 숟갈을 넣어 한 수저를 떠서 입에 넣더니 그 다음은 요즘 말로 빛의
속도로 먹었다
솥에 좀 남아 있어서 더 줄까 하고 물었 더니 그릇을 내밀었다
정말 맛있게 두 그릇을 먹어 치운 친구 의 머리를 아버지는 말없이 쓰다듬고
밖으로 나갔다
그 즈음 외가에서 보내준 물밤이 있어
간식겸 쟁반에 가득 담아 내 방으로
왔는데 친구는 말이 없었다

우리가 노는 방법은 수수께기 맞추기
놀이를 하거나 끝말잇기를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각자 그림을 그리든지
책을 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날 따라 친구는 말이 없었다
침대에 기대고 앉아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는데 물밤 먹으라고 하자 고개를
들었다
얼굴이 온통 눈물 자국이었다
왜 우냐고 묻자 본격적으로, 어깨를
들먹이며 울었다
나는 울음을 그칠 때 까지 가만히 놔
두었고 친구는 힉힉거리며 말했다
- 아까 있제, 그 달구수제비, 너무 맛있어 서 내는 정신이 나가는줄 알았다
내는 달구수제비 첨 묵어 본데이,
아무것도 안 넣은 수제비는 얻어 묵어
봤는데...-
-집에서 수제비 안 끓여 먹어 ? -
-밀가리가 을매나 비싼데, 우리는 됫박
으로 사 가지고 사카린 넣어서 죽 끓이
묵는다 . -
- 그걸 어떻게 먹어? 그거 풀이잖아 ? -
- 우리 집은 풀떼죽 끓이서 먹는다
그래도 끓이 놓으믄 없어서 못 묵는다
달기도 오늘 처럼 마이 무은 거 첨이다
진짜 햇바닥이 없어지는 것 같더라 -

12살이 되도록, 밀가루로 죽을 끓여 먹
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들은 나는 친구 를 부등켜 안고 엉엉 울었다
왜 울었는지 그 심정을 지금도 모르겠
는데 울다가 둘이서 까무룩 잠이 들었나 보았다
우리를 깨운 사람은 아버지였다
집에 안 들어가도 아무도 안 찾는다고
친구는 가기 싫은 눈치였으나 아버지는
가야 한다고 했다
물밤 보따리를 들고 친구는 방을 나갔고
한 참 지난 뒤에 아버지가 돌아왔다
나는 풀떼죽 이야기를 했고 또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는 두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며
깊은 눈빛으로 말했다
-저 고갈산 꼭대기에 사는 사람들 거의 가 그런 사람들인 기야, 굶는 사람도
있지, 너네 반에도 도시락 못 싸오는
아아들 여럿 있지 않네?
아주 옛날에는 보릿고개에 굶어 죽는
사람 많았지 않니... -
거지들이 아침 저녁으로 밥을 얻으러
다니던 시절이었다
그랬었다
같은 반의 친구가 밀가루로 죽을 쑤어
사카린을 섞어 끼니를 잇는, 그 시절에
나는 고기를 넣은 수제비를 먹을 수
있었다
그 후 나는 닭 수제비를 먹지 못 했고
지금도 먹지 않는다
14세에 돈 벌러 공장으로 간 그 아이는
달구 수제비를 끓여 먹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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