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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심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0-10-10 17:04

ㆍIP: 223.xxx.97

한 쪽 눈을 감고 보면

#권영심의글
한 쪽 눈을 감고 바라보면
권영심 (2020 , 10 , 10 )
근래에 사귀게 된 ㅎㅅ이라는 동생이 있는데 참 명물이다
알기는 수 년 전 부터 알았지만 첫 만남 이 워낙 강렬한 인상을 주어서 그 후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한 살 차이로 친구 처럼 지내는 지인의
오랜 이웃이었는데 같은 빌라의 몇 몇이
모여서 ㅎㅅ을 빼고 가끔 우리 가게에 왔다
그 사람들이 앉으면 이야기의 반은 ㅎㅅ
의 험담과 비난이었다
그 내용이 너무나 망칙하고 엽기적이어
서 실제 그런 일이 있었을까 의아할
지경이었다
대부분 주사에 관한 것이었는데 우리 가게에서 한 짓은, 이야기에 비하면 새발의 피나 마찬가지였다
ㅎㅅ이 처음 가게에 온 날, 푸짐한 몸매
에 잘 웃고 애교가 많아서 나도 같이
많이 웃었다
말도 잘 하고 재미난 화법에 무엇보다
술을 시원하게 잘 마셨다
그런데 소주 두 병을 비우자 데리고 온
지인이 더 이상 못 마시게 하면서 그
때 부터 다툼이 시작되었다
ㅎㅅ은 화장실을 다녀 온다면서 우리가
못 본 사이에 소주를 꺼내 맥주컵에 부
어서 가지고 와서 마셨다
혀가 꼬이고 눈동자가 흐려지면서 육두
문자가 나오기 시작했고 내게도 반 말을
하기 시작했다
지인은 진저리를 치면서 갈 것을 종용 했고 그 실랑이는 한 시간을 넘도록
이어졌다
아마 퇴근한 신랑이 오지 않았으면 어떤
일이 생겼을지 지금 생각해도 암담하다
여자 손님의 그런 주사는 흔치 않았고
나는 지인이 데려온 사람이라 안심했기
에 말릴 생각을 못 했었다
남편은 빼빼 마른 사람이었는데 취중에
도 예 예 하면서 몸을 꼬는 ㅎㅅ의 모습 은 우습기도 하고 신기했다
그 뒤로 몇 번 혼자 가게에 왔으나 일절
상대해 주지 않았다
이웃들이 와서 그녀에 대해 늘어 놓는
이야기들은 주사 뿐만이 아니고 나로서
는 정말 놀랍기만 했다
그렇게 삼사년이 지나서 올 초 부터 다시 지인과 오기 시작했는데 이유가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지인이 낮의 일을 끊겨
서 오후 늦게 출근하기에 놀 시간이 생긴 때문이었다
ㅎㅅ이 꼬리처럼 붙어 따라 다니니 뿌리
칠 방도가 없었다
나는 데리고 오라고 했고 약속을 받았는 데 술을 마실 때 절대로 못 마시게 말리 지 말라는 것과 타박하지 말라는 두 가지였다
ㅎㅅ은 여전한 모습으로 너무나 즐겁게
술을 마셨는데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몇 가지의 칭찬을 했다
그녀는 놀랍도록 긴 머리채와 풍성한
모발을 가지고 있어 처음 본 순간부터 참 부러웠었다
손도 단풍잎 처럼 작고 예뻤고 치아는
희고 단정했다
모두 내겐 없는 것들이어서 나는 진심으 로 칭찬하며 술자리가 길어질수록 내가
들은 말들을 반대로 말했다
남에게 쓴 커피 한 잔 안 사는 지독함은
살림을 잘 하는 것으로, 술을 마신 다음
날 어떤 전화도 받지않는 것은 연거푸
술을 마시지 않을려는 결심이라는 등,
내 말에 ㅎㅅ은 술이 취한 상태에서도 많이 놀란 듯 했다
그리고 별다른 주사없이 비틀거리고
쓰러지면서도 집으로 돌아갔다
빌라는 우리 가게에서 50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어서 나는 따라가서 들어가
는 것을 지켜 보았다
지인은 오후 4시에 출근하기에 먼저
보냈었다
ㅎㅅ은 며칠 후 혼자 가게에 와서 커피 를 마시면서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이제 오 십이 되어 가는데 삶의 많은 부침을 겪으면서 씩씩하게 살아온 동생
의 이야기에 나는 아낌없는 칭찬을 했다
ㅎㅅ은 기어이 눈물을 흘리더니 살아 오면서 누가 칭찬을 해준 것은 처음같다
고 말했다
남편을 비롯해서 누구든지 꾸짖고 충고
하고 비웃고 같이 술을 마시면서도 계속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혼나고 지적질
당하는데 그럴수록 자신은 더 막 나간다
고 고백했다
나는 ㅎㅅ의 손을 잡고 앞으로도 자신이
하고싶은 대로 하라고 했다
고치거나 바꾸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고
상대방이 하는 대로 해주라고 말했다
- 언니, 그래도 돼요? -
-그럼, 상대방이 너를 대하는 태도를 고치지 않는데 네가 왜 고치니?
우리들은 큰 오해를 하나 하고 있는데
내가 달라지면 저 사람도 달라질거야 하는 것이지.
사람은 내가 스스로 변하지 않는 한 누가 뭐래도 달라지지 않아, 내가 지금
너에게 이러저러하게 바꾸라고 한들
네가 달라지겠니?
그러나 넌 지금 놀랍게 달라졌어,
그거 느끼겠니? -
ㅎㅅ은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 너는 내게 아무런 실수도, 잘못도 하지 않았고 술이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거야
그러나 너는 스스로 집까지 잘 갔고 내게 어떤 피해도 주지 않았어, 내가
동생으로 인정했으니 난 언니가 되어
만나는 시간 동안 할수있는 일을 해줄
거고 돌봐 줄거야.
술 마시고 싶으면 양껏 마셔, 그런데
집엔 갈 수 있을 만큼. 알았지?-
현재 그녀는 여전히 주사를 부리고 욕도
잘하고 이기적이고 엽기적이다
그러나 내게는 너무나 착하고 재밋는
동생이고 빌라의 사람들은 이제 내게
ㅎㅅ의 험담을 하지 않는다
ㅎㅅ과 술을 마실 일이 있으면 무조건
우리 가게로 온다
전혀 주사를 부리지 않는 그녀를 보고
신기해 하고 내게 비결을 묻는다
- 두 눈 부릅뜨고 노려보지 말고 한 쪽 눈을 감고 잘못을 보지 마세요, 그 잘못 들이 우리에게 작은 불편을 주더라도
인연을 만들었기에 즐겁게 감수해야 할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예요, 아무것도 고치려 하지 말고
봐 주는 것, 그게 비결입니다. -
나의 대답이다.

야아, 마리아 아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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