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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심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0-10-18 17:37

ㆍIP: 223.xxx.98

아버지의 가장 큰 유산

아버지의 가장 큰 유산

권영심 ( 2020 , 10 ,18 )

내 글을 읽은 어느 독자가 말하기를 부잣집에서 자라서 참 부럽다고 댓글을
올려서 심각하게 가난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남달리 풍요로운 집에서 태어
났을까?
그런데 나도 우리집이 부잔줄 알았는데 오 학년 때 짝지 집에 가 보고 아닌 것을 알았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ㅎㄱㄹ이란 이름 을 가진 짝지였는데 좀 아픈듯이 보일 만큼 기운이 없어 보이는 아이였다
어느날 하교 시간에 책상에 엎드려 몹시
힘들어 했고 나는 짝지의 가방과 물건을 들고 부축해서 그 아이의 집 까지 갔다
대문부터 남다른 그 집은 넓은 마당이
있었고 현관 앞 까지 판석이 깔린 이층
양옥 집이었다
예쁜 홈드레스를 입은 엄마가 반갑게 맞이해 주었고 나는 홍차와 비스킷을
대접 받았다
생전 처음으로 홍차를 마셨으나 나는 그
독특한 맛이 싫지 않았다
ㄱㄹ의 엄마는 아마도 자랑하기 좋아하
는 성격이었는지 이 잔은 영국 황실에서
쓰는 것이며 홍차는 최고급이라고 내게
말했다
보통 엄마들은 오 학년 아이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었다
ㄱㄹ이 평소에 내 말을 자주 했다면서
부모님의 직업을 물었다

시장에서 장사한다고 하자 표정이 몹시 묘해지던 것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ㄱㄹ의 방에도 가 보았는데 예쁜 침대에 레이스 천지의 이불과 커튼과 피아노 등이 있었다
저녁을 먹고 가라는 것을 그냥 나오면서
나는 바로 시장에서 장사하는 아버지에
게 뛰어 갔다
그 시간은 매우 붐비는 시간이어서 가게
는 복잡했고 나는 그냥 내 방으로 와서
방 안을 둘러 보았다
옷장과 책장, 그리고 목재소에서 맞춘
침대가 있는 내 방은 ㄱㄹ의 방과 완전
달랐고 집은 비교할 수도 없었다
저녁을 먹은 뒤 아버지를 붙들고 나는
정말 심각하게 물었다
-아부지, 우리집 가난해요? -
- 가난한 거이 뭐이니? 어찌 그런 생각 을 했니? 우리집이래 가난하다고 누가
그랩서? -
나는 짝지의 집에 갔었던 이야기를 상세
하게 말하고 그런 집에서 살고 싶다고
투정하듯이 말했다
아버지는 내 손을 꼭 쥐고 잠시 가만히
있더니 입을 열었다
-우리 딸래미레 부러웠구나야, 암 그럴
수 있지, 그러나 말이야, 이 아바지는
그딴 집 열 채도 살 수 있는 돈을 벌었지
만 사지 않았서리, 왜냐하믄 아바지 집은 이북에 있거든 -

아버지의 목소리가 낮아지며 눈빛이 먼
곳을 향했다
- 너도 외가집에 재작년까지 갔었으니
그 집이 얼마나 큰 집인지 알지 않네?
별채 마당까지 있는 집은 흔치 않아야,
그러나 이북에 있는 할아바지 집은 그
집 보다 다섯 배는 더 큰 집이야,
그런 집을 놔 두고서리 어찌 집을 사갓네?
이제 곧 통일이 되믄 우리는 거기서 살
수 있는 거이야, 암 그렇고 말고.
여기서는 그저 불팬하지 않고 팬안히
살 수 있으믄 되는 거이야, 마리야
알갔네? 그런거 부러워 하지 말라우 -
그럼 우리는 가난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아버지는 크게 웃었다
-무에 가난하니?
가족들이 함께 있고 쌀독에 쌀이 그득하
고 니가 먹고싶은 거 무에든지 사 줄 수 있고, 입고싶은 거 갖고싶은 거 아바지 가 다 사줄 수 있는데 어찌 가난하니?
진짜 가난한 거이 뭔지 아니? -
아버지는 내 눈을 똑 바로 바라보았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 우리 딸래미레, 자꾸 친구의 집을 부러
워 하믄 거그이 바로 가난한 거이야,
알갔네?
내가 뭘 갖고있는 부잔지 살펴 보지도 않고서리 남에 것에만 침 바르는 사람이
가난한 사람인 거이야,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가난뱅이란 거이
야, 그런 가난뱅이는 못 쓰는 거이야
우리 딸래미, 그런 가난뱅이가 되고 싶네? -

나는 고개를 마구 저으며 친구를 부러워
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실제 그렇게 부럽거나 우리집이 초라하
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나는 언제나 우리집이 좋았고 편안했으 니 말이다
그 뒤 ㄱㄹ이 우리집에 놀러 왔을 때
아버지는 참 다정하고 따뜻하게 대해
주었고 이야기도 많이 했다
ㄱㄹ은 나보다도 우리 아버지 때문에
집에 자주 놀러 왔고 그 얘는 나를 너무
부러워 했다
알고 보니 ㄱㄹ의 아버지는 외항선의 선
장이었고 일 년에 한 달도 집에 안 온다
고 울먹이며 말했다
나랑 바꾸어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울기도 많이 울었던 ㄱㄹ은 가난이 무엇
일까를 처음으로 생각하게 해준 아이다
그러니까 나는 누가 뭐래도 풍족한 어린
시절을 보냈음이 틀림없다
남다른 아버지 덕분으로 좋은 집에서
살지는 못 했어도 의식주의 필요한 것은 전혀 부족함 없이 살았던 것은 축복이다
한 달에 한 번 씩은 가족들이 놀러 갔었
고 토요일이면 영화 구경을 했다
우리와 영화를 보지않는 토요일은 성장
을 한 엄마와 데이트를 즐겼고 절기며
기념일을 잘 챙긴 아버지는 그 시절에
정말 드문 가장이었다

살아오는 동안 수 많은 일들을 겪고 살았으나 나는 한 번도 내가 가난하다
는 실감을 하지 않았다
절박하게 어려웠던 때 조차 나는 가난을
모르고 절망하지 않았으니 이것은 아버
지께 물려 받은 큰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그 때는 감사란 말을 흔히 쓰던 시대가
아니었으니 아버지는 감사라는 표현을 하지 않았으나 아버지가 내게 말해 준
그것 전체가 감사임을 이 딸이 아는 것을 그 분은 기뻐해 주실까?
사랑받고 사랑하는 유년이 인간의 생애에 얼마나 중요한지 살아가면서 더
실감하게 되는데 그 기억이 바로 삶의
고달픈 길을 헤쳐가는 절대 무기가 되기
때문이다
절대 반지와도 같은 , 그 누구도 내게서
앗아갈 수 없는 절대 무기,
내게 주어진 이 절대 무기는그 무엇에도
지지 않으니 나는 이 생이 두렵지 않다.
내가 처음 가는 길 바로 앞을 비춰주는
등불이 바로 내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
이고 , 그 추억으로 오늘도 나는 감사하
면서 걸어 간다.

내가 말하는 것이 나의 운명이 된다

이 현실에서 함께 있어 기쁜 그대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117	내가 말하는 것이 나의 운명이 된다		권영심	2020-10-20

116	아버지의 가장 큰 유산		권영심	2020-10-18

115	이 현실에서 함께 있어 기쁜 그대		권영심	2020-10-16

114	목요일 오후, 청춘 카페의 차 이야기		권영심	2020-10-16

113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	3	권영심	2020-10-13

112	야아, 마리아 아부지		권영심	2020-10-11

111	한 쪽 눈을 감고 보면		권영심	2020-10-10

110	남을 향해 돌을 던질 때 나만 참아라		권영심	2020-10-09

109	목요일 오후, 청춘 카페의 차 이야기		권영심	2020-10-09

108	달구 수제비		권영심	2020-10-07

107	딸래미야 딸래미야		권영심	2020-10-07

106	마스크 완장		권영심	2020-10-05

105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방		권영심	2020-10-04

104	사람은 늙는 것이 당연하다		권영심	2020-10-03

103	비대면의 효도		권영심	2020-10-02

102	내가 만드는 맛의 이야기		권영심	2020-09-25

101	결혼, 그 붉은 실로 묶이는 것은		권영심	2020-09-22

100	이 삶에서 내 역할은?		권영심	2020-09-21

99	사는 맛이 사람을 살게 한다		권영심	2020-09-20

98	엄마와 설탕		권영심	2020-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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