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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심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0-10-20 17:40

ㆍIP: 223.xxx.147

내가 말하는 것이 나의 운명이 된다

내가 말하는 것이 나의 운명이 된다

권영심 ( 2020 , 10 ,20 )

아버지가 소천하기 삼 년 전에 남동생이
죽고 우리집은 남자가 모두 사라졌다
엄마가 변한 것은 그 즈음이지 싶다
남편도 없고 아들도 없으니 믿을 것은
돈 뿐이라고 거의 강박적인 심리 상태
가 된 듯 하다
엄마는 원래 쪼잔하고 좀스럽게 돈을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영향이 가장 컸겠지만 한 번
마음먹고 음식을 하면 그 규모가 놀랄
만 했다
우리집은 옷가게를 하기에 명절 전후가
제일 바빴는데 식재료를 며칠 걸려 잔뜩
사 놓기만 할뿐, 너무나 바쁜 탓에 바로 음식을 만들지는 못했다
명절 오후가 되어서야 한가해진 엄마는
그 때 부터 식구들이 먹을 음식을 만들
었고 우리들은 명절을 잘 보내었다
엄마가 음식을 마음껏 장만하는 명절은
바로 정월 대보름이었다
찰밥과 묵은 나물을 하는데 전 날 오전 부터 밤새도록 만들었다
아홉 가지 나물을 큰 다라이로 한 다라 이 씩 만들고 찰밥을 밤새도록 쪄냈다
보름 아침이 되면 큰 소쿠리에 밥과 나물을 그릇에 가득 담아 가게 매대와 집 입구에 내놓았다

거지 식구들이 가져 가도록 하기 위해서
인데 해마다 거르지 않았다
내놓자 마자 그릇들은 비워지고 빈 소쿠
리와 그릇들을 거두어 엄마는 보따리들 을 꾸렸다
찰밥과 아홉 가지 나물이 담긴 보따리는
여러 집에 전달되고 그 심부름꾼은 바로
나였다
전라도 태생인 엄마는 나물의 맛을 내는
데 일가견이 있었고 찰밥 보따리를 받은
사람들은 정말 좋아했다
그 좋아하는 모습이 기뻐서 나는 신이
나서 힘든 줄도 모르고 다녔다
엄마는 그렇게 일 년에 한 번, 정월 대보
름에 찰밥을 나누는 것으로 여러가지
기원을 마음에 담은 듯 하다
가게 문을 닫은 밤에 여름에는 수박 잔치, 겨울엔 전골을 해먹는 술 잔치를 자주 하는데도 엄마는 짜증 한 번 내지
않았다
그런 엄마가 무섭게 달라지며 우리들을
볼 때 마다 주문을 외듯이 말했다
- 딸 년들은 하나도 소용이 없어야, 인자
나는 돈 밖에 없다
나는 돈을 모을랑게 니들은 한 푼도 가져 갈 생각 말그라!
내는 너거들 필요없이 이 돈, 병원비로
다 쓰고 죽을란다! -

엄마는 젊은 시절에 결핵을 한 번 앓았 고 그 병을 고치기 위해 아버지의 강권
으로 개고기까지 먹었다
그 외는 별다르게 아픈 기색을 안 하고
건강하다고 생각했는데 엄마는 나름
몸이 아팠는지 말 끝 마다 병원비를 들먹였다
딸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살겠다는 의지
를 말하고 싶어서 그런 말을 했겠지만
꼭 병원비를 붙이는 것이 참 싫었다
시설 좋은 실버타운도 아니고 입버릇이
되어 딸들만 보면 같은 주문을 외워
댔으니 우리들도 그러려니 했다
세 딸이 있으나 아무도 엄마와 살지 않았고 혼자 장사를 하며 나름 씩씩하게
살아가던 엄마는 어느 겨울 쓰러져 응급
실로 실려 가서 중환자가 되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 하던 일이었다
엄마가 저 세상으로 건너갈 때 통장의 돈은 거짓말 처럼 사라졌고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엄마는 자신이 항상 하던 말 그대로를
이루었고 주문은 완성되었다
열심히 벌어 개미 처럼 모아서 그 돈을
병원비로 다 쓴 다음 다른 세상으로 홀
가분하게 건너 갔으니 울 엄마는 염라
대왕 앞에서도 큰소리칠 수 있겠다

흔히 말에 언령이 있다고 한다
그 말이 맞는 것임을 살아가면서 너무나
강렬하게 체험하곤 하는데 때로는 소름 이 돋을 정도다
아주 예전에 내 스승님은 돌에게도 나쁜
말을 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 때는 그냥 웃었다
그러나 많은 것을 겪으면서 너무나 절실
하게 깨닫는 것은 내가 평소 중얼거리는
대로 결국 되어간 것이라는 사실이다
힘들다를 입에 달고 살았을 때는 언제나
힘들었고 그래도 감사하다고 억지로 라도 입에 담았더니 어느새 나는 모든
것에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엄마는 부잣집 셋째 딸로 태어 났으나
여자는 글을 알아서는 안된다는 외조부
의 생각 때문에 무학으로 살게 된 자신
에 대한 한이 너무나 깊은 사람이었다
그런 엄마는 결국 아들을 잃게 되자 딸이 셋이나 있건만 다 소용없는 출가
외인으로 밖에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몸은 늘 아팠고 나중에 정말 힘이 다해 쓰러졌을 때 딸들이 돌봐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엄마는 그런 자신
을 위해 병원비를 입에 달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생각이 말이 되어 나오고 그 말이 결국
엄마의 운명이 된 것.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다
그러니 지금 내가 무슨 말을 입에 달고
사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로마를 비롯한 모든 제국들이 멸망하기 전 징조가 있었다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이 모이면 이 놈의
나라 망할거야라고 했고 아이들은 망조
의 노래를 떼를 지어 불렀다
결국 입을 모아 나라의 망국을 재촉한 것이고 그대로 이루어졌다
두렵지 아니한가?
이 세상 어떤 곳에 피난가더라도 내 나라 내 땅에서 사느니만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너무나 쉽게 이 나라 망해라!
이런 나라 망해 버려라고 악을 쓰는
그대들, 제발 그 입 좀 다물라!
이런 나라 망해서 유리걸식하는 난민들
이 되어 사해를 떠도는 꿈을 꾸고 있지 않다면 제발 그 입에 망국을 올리지 말라!
그대들이 다른 나라에 둥지를 틀어 놓고
정작 일이 생기면 옮겨 가더라도 이런
나라가 없으면 그 보금자리는 종이로
만들어진 집에 다름 아니다.
나라는 언제나 위태로웠고 백성들은
힘들었으며 악독하고 무능한 위정자는
항상 있어 왔다
그럼에도 힘겨운 탈피를 거듭하여 여기
까지 왔다
대한민국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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