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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권영심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0-12-23 13:35
ㆍIP: 223.xxx.208
아시타비의 시대에 웃음을 잃다
아시타비의 시대에서 웃음을 잃다        

        권영심 (  2020 , 12 , 23 )

아버지는 참 잘 웃는 사람이었다
목소리가 울림이 좋고 큰데다가 요즘 말하는 리엑션이 뛰어났다고 할까, 큰 손짓 몸짓과 함께 웃는 웃음소리는 주변을 환하게 밝히는 힘이 있었다
마리아 아버지 웃음소리만 들으면 없던
기운도 절로 난다고 사람들이 말할 만큼
그렇게 웃음이 기운차고 밝았다
특히 무언가를 나눌 때, 어려운 사람들 과 함께 할 때, 가족과 함께 이야기 할 때
아버지는 많이 웃었다
최불암씨가 웃을 때 온 얼굴로 웃는 것
처럼 아버지의 웃음은 온 몸에서 터져
나왔다
그런 아버지가 웃지 않을 때가 있었는데
다른 사람의 호의나 호감을 필요로 할 때, 높은 무언가의 직책을 가진 사람과 만날 때라든지  그럴 때였다
가끔 그런 사람들이 찾아 왔고 그럴 때 의 아버지의 표정은 언제나 굳어 있어
평소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가구쟁이들이나 상이용사들과 술을 마시며 춤도 추고 노래하며 껄껄껄껄
웃는 아버지인데 웃지 않고 냉엄한 얼굴
로 사람을 대하는 것을 보면 나는 많은
생각을 하곤 했다

나중에 아버지와 단 둘이 있게 되면 그
사람에게 왜 그랬나를 물었다
아버지는 또 호탕하게 웃으면서
-내레 와 웃어야 하니?
그 사람이래 아바지하고 웃을 사람이래
아니야, 그 사람이래 아바지에게 웃은
것은 딴 마음이 있어서이디, 딴 마음 이래 가진 사람하고 웃는 거이는 사나
대장부래 할 짓이 아이디.-
딴 마음을 가진 사람이 내게 좋은 얼굴 을 하고 웃을 때 나는 같이 웃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배웠다
살아오면서 나는 잘 웃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나는 웃어야할 때 웃지 않은 적은 없었고 누구보다 웃음이 많은 사람
이다
나와 봉사를 같이 하는, 몇 몇 사대가 맞는 이들은 나처럼 잘 웃고 재미있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이야기를 잘 하고 소녀 처럼 꺄르르 와하하 , 손뼉치고 몸을 흔들며 웃는 나를 엄청 신기해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때는
웃지 않는다
그들은 내게 그럴 수 없이 환한 웃음을
던지며 내게도 웃자고 하는데 나는 웃음
이 나오지 않는다
아버지를 닮아서가 아니라 아버지가 왜
웃지 않았는지 알기 때문이다
자기들의 소기의 목적이 달성하면 그 때
부터 그들은 나를 향해 웃지 않고 명령 하고 지시하고 큰소리 친다
특히 자신을 향해 웃어준 사람들에겐 더
딱딱거리고 외면하고 심하면 버린다
그리고 또 필요해질 때 자신을 향해 웃어줄 사람을 찾아 웃는 얼굴로 고개
숙이며 다닌다
그것이 인간사이며 삶의 질서 중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 질서에 충실하지 않은 사람은 낭중 지추가 되어 결국 외돌토리가 될 수도
있음을 안다
그럼에도 나는 웃지 않을란다

올해의 사자성어가 아시타비라고 한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
내가 하는 모든 것이 옳고 바르며 , 변절
을 하든지 조삼모사를 하든지, 나라법을
어기든지, 그 무엇도 내가 하는 것은
옳다는 아시타비, 참으로 절묘하다
이 작은 한반도엔 그런 사람들이 너무나
많고, 그래서 우리는 욕을 하면서도 매번 비슷한 정치인을 뽑는다
그러니 욕할 필요가 무에 있겠는가?
나보고 웃자고 하는 사람이 우선 친근하
고 ,같이 웃으면 즐거우니 웃으면서 한
바탕 어울려서 굿판을 벌인 뒤에 정신 차리고 나면 기차는 떠나고 없다
허둥지둥 쫒아가서 이미 판이 짜여진
곳에 가서 같이 웃자고 들이밀지만 돌아
오는 것은 차디찬 비웃음 뿐이다
견고한 판은 나에게 웃기 전에 짜여져
있었고 내게 웃은 이유는 총알받이나
꽹가리가 필요했기 때문임을 처절하게
깨닫게 된다
토사구팽이라고 노여워하며 길길이
뛰어 본들 스스로가 더 참담해진다
그러니 같이 웃자고 누군가가 나를 부르
면 조심할 일이다

예전에 내로남불이란 말이 마치 밥의
반찬 처럼 우리 사회에 붙어 다니던 때
가 있었다
아마 수 백 년이 지나도 그 말은 생명을
지니고 유령처럼 부유할지도 모른다
인간이란 그만큼 뻔뻔스런 얼굴을 가진
존재이고 그 천연덕스러움이 오늘날
만물의 영수가 되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내로남불을 하건 , 아시타비를
금과옥조로 삼고 살건 스스로의 선택일
뿐, 탓할 일이 아니다
단지 내가 조금, 아주 조금의 지혜와
이성과 판단력을 가지고 웃지 않아야 할
때를 분별하면 된다
남을 탓하고 욕 하고 죽일 놈, 살릴 놈
해봤자 이미 떠난 남행열차일 뿐.
소용이 없음을 너무나 많은 장면에서
보았다
그 장면의 곳곳에 내가 있지나 않았는지
생각해 보면서 숙연해진다.
아시타비이건 내로남불이건 그대들이
원하는 대로 하시라.
단지 나만 아니면 된다가 아니고 나만
안 하면 되는 , 나만 웃지 않으면 되는
것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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