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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권영심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1-04-03 14:51
ㆍIP: 211.xxx.180
그 때 그 시절 그렇게...
그 때 그 시절에 그렇게... ( 33 )

          권영심  ( 2021 , 4 , 3 )

어렸을 때 좋은 집에서 못 살았어도 먹고 입고 쓰는 것은 어느 부잣집 못지
않았던 것을, 어른이 되어 갈수록 알게
되었다
특히 먹는 것에 굉장히 신경을 쓰고 잘
먹었던 아버지 덕분에 먹는 호사는 남 부럽지 않았다
시시때때 절기 음식이며 특산물들을
빼놓지 않고 먹었고 그런 것들이 집에
항상 있었다
지금의 미식 여행자처럼 아버지는 맛있
는 것을 구하러 여러 곳에 다녔다
특히 팔뚝만한 굴비는 사철 떨어지지 않고 집에 있었는데 지금까지 굴비를 그
렇게 보기 좋게 뼈를 발라내는 사람은 울 아버지 외에 본 적이 없다
단언하건대 정말 팔뚝만한 굴비를 먹었
고 분명히 존재했었다
백화점에서 몇 백 만원짜리도 있다고 하
는데 나는 그런 것은 모르고 아버지가
법성포에서 사 온, 그 굴비의 크기는 지
금의 대장대라고 내세우는 굴비와는
차원이 달랐다
한 마리면 우리 식구가 다 먹을 수 있었
고 우리들은 제비 새끼 처럼 숟가락을
내밀고 아버지가 발라주는 굴비살을 받
아 먹었다

달고 졸깃거리면서 입 안에 고소하게
퍼지던 그 맛, 비린내 하나도 없이 혀에
감기던 굴비의 맛을 나는 하나도 잊지
않았다
아버지는 살은 거의 우리에게 주고 굴비 전체에서 살과 내장, 알을 발라 먹었는 데 볼 때 마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가시 하나 흐트리지 않는 그 기술을 나는 전혀 전수받지 못 했으니 아쉽다
어릴 때 먹었던 그런 굴비가 이젠 없어 서 나는 굴비를 먹지 않는다
마치 단절된 것 처럼 지금은 찾을 수 없는 음식이나 식재료가 있다는 것을
요즘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순채도 사라져서 찾을 수가 없는데 순채
라는 말 조차 모르는 사람이 허다하다
외갓집에서 해마다 보내 왔는데 실은 맛
을 기억하지 못 한다
순채 나물이라고, 정말 깨끗한 연못에서
아주 조금 생기는 귀한 것이라고 해서
먹은 기억외엔 없는데 지금은 아는 사람
이 없다

곰피라고, 겨울에 많이 먹었던 해초류가
있는데 지금 곰피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 때 그 시절에 먹었던 곰피와 는 전혀 다르다
지금의 말만 곰피인 해초는 대체 무엇을
보고 곰피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진짜 곰피는 두꺼운 육질에 우틀 두틀한
돌기가 선명했고 쌈을 싸서 먹으면 입
안에 가득한 바닷내음이 일미였다
그 곰피는 이제 없다
홍합은 또 어떤가?
지금은 자연산이 거의 없이 양식을 한다
는데 예전의 그 특유의 맛을 전혀 찾을
수가 없다
몇 개만 삶아도 우러나던 그 짙고 하얀
국물의 맛을 무어라고 표현할까?
부산에선 담치라고 불렀는데 홍합과 담
치는 다르다고 한다
큰 담치를 삶아 긴 꼬치에 꿰어 간장 양념을 끼얹어 가면서 몇 번이고 말려서
졸여내는 그 풍미와 맛을 이젠 볼 수 없다

어느 식당에서 생태탕을 판매한다고 해
서 고개가 갸웃거려 졌다
우리나라의 바다엔 이제 명태가 없고 수입된 동태 뿐이라고 알고 있는데 생태
탕이 정말 있다면 먹어보고 싶다
부산서 자랐지만 해물을 거의 먹지 못 하는 내가 잘 먹는 생선이 명태였다
시장엔 지천으로 명태가 있었고 가격도
얼마나 헐했는지 모른다
무우를 깔고 명태를 손질해서 위에 올린
다음 대파 마늘 양파 당근을 많이 넣은 뒤 쌀뜨물에 국간장만 넣어서 푹 끓여
내는 맑은 탕을 식구들이 다 좋아했다
그런 생태탕을 이젠 먹을 수가 없다
제주도에선 오분자기가 사라져 간다고
하는데 아주 어릴 때 제주도에서 먹은
된장찌게엔 오분자기가 가득 들어 있었다
나는 새끼 전복이라고 했는데 조개보다
흔했던 오분자기가 이젠 전복보다 귀해
진다고 하니 할 말이 없다

내가 식견이 좁고 몰라서 그렇지 얼마나
많이 사라졌는지 누가 정확하게 알 수
있을까?
설령 있더라도 많이 달라졌음을 느끼는
것은 나만의 감상일지도 모른다
계란의 향도 없어졌고 김, 녹두,팥의 향도 못 느끼는 것은 내가 나이를 먹어
후각의 기능이 떨어진 탓일까?
진짜 정말 참기름, 국산 참기름이라고
믿을만한 곳에서 시중의 세 배의 값을
치루고 산 참기름의 향내도 예전같지
않다
그 때 그 시절에 뜨거운 쌀밥에 간장 조금 치고 계란 하나 깨서 노른자 얹고
참기름 딱 한두방울이면 그 고소한 냄새
가 길거리까지도 풍겼다
그 참기름, 참깨는 어디로 갔나?
여름날 난전의 과일 가게에 넘치던 배꼽 참외는 오늘 날 찾아 볼 수가 없다
배꼽 참외의 달콤한 향기... 어디로
사라져 버렸나?
비 내리는 널, 도가에서 사 오던 토마토
의 그 짙은 향기... 어디로 가 버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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