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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권영심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1-06-18 15:45
ㆍIP: 223.xxx.104
이 시대의 장수, 늙음
이 시대의 장수, 늙음

            권영심 ( 2021 , 6 , 18 )

인류사가 시작된 이래 이 세기가 아마
최초로 맞이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장수, 즉 인간의 늙음이다.
어느 세기도 인간이 이토록 오래 사는
것을 용납한 적이 없었다.
인간은 어떤 계급에서 태어나더라도 환
갑을 넘기는 사람이 극히 드물었고 모든
것을 갖춘 노인은 존경과 애정속에서
아름다운 노후를 보내었다.
모든것을 갖춘다는 것은 부귀와 건강과
명예가 그 한 몸에 있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오래 살아서 장수하는
것은 축복이었다.
노비의 몸이라 하더라도 주인이나 마을
에서도 그 늙음의 지혜와 장수를 귀하게
여기며 편한 노후를 보내게 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30세를 넘기지 못 했고 태어나는 아이의 반 이상은 걷기도
전에 죽었다.
태어나기도 전에 뱃속 죽음을 당하는
태아들 또한 많았다.
본처나 본궁이 잉첩들이 가진 아이를
용납하지 않았고 오래 전 옛날에도 태어
나지 못할 아기들은 언제나 존재했다.

어떤 시대, 어느 나라에 태어났어도 많
은 병마를 이겨내고 무사히 자라서 약관
에 혼인해서 자식을 낳고 삼 십이 못 되어 죽는다 해도 그다지 흉사는 아니었
다.
전쟁이나 기근이 일어나면 백성들의 3/1은 죽는다고 봐야 한다.
그래도 풀뿌리라도 씹으면서 아이들은
태어났고 살아지는대로 어른이 되었으
나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죽음의 가장
강력한 덫이었다.
앞장서는 장수들은 나이 많은 노장들
이었으나 창과 방패를 들고 나아가는 병
사들의 나이는 십오륙세에서 삼 십을
오고 갔다.
젊은이들은 인류사의 수많은 전쟁터 에서 풀뿌리가 뽑히듯이 목숨을 잃었다.
동남동녀, 순결한 처녀나 청년을 제물로
바치는 믿음을 가진 나라도 많아서 이래
저래 무탈하게 나이들어 노인이 된다는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기근과 전쟁, 병마와 각종 믿음에 의한
제물이 되지 않고 살아서 백발의 노년기
를 맞이하는 것, 자체가 경이였다.

오랜 시간을 살아온 노인의 경험은 젊은
이들에게 중요한 지식이 되었고 삶의
지혜가 되었다.
그런 룰이 수 천 년 동안 인류사에 고정
되었고 노인과 늙음은 귀하면서 존중받
았다.
그러나 그런 시대는 이제 막을 내리고 오늘 이 시대는 늙음이 끔찍한 시대다.
가장 가치있는 덕목이 늙지 않음이고
동안의 얼굴이 숭배되는 세상이다.
제 나이를 보면 여자고 남자고 화를 내며 보톡스라도 맞아야 하지 않을까를
심각하게 생각한다.
티비에 나오는 중견 연기자들 일부는
마치 귀신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가면 을 쓴 것 처럼도 보인다.
연기를 하는데 얼굴의 아무것도 움직이
지 않고 입만 움직이면서 목소리만 높낮
이가 있는 것을 보는 것은 끔찍하다.
나이 드는대로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
여주는 몇 몇의 배우들이 얼마나 아름다
운지 모른다.
마치 피터팬 처럼 영원히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살고자 기를 쓰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서 백발은 감추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무력한 모습으로 그저 연명
하는 길 밖에 없는 노인들을 보는 것은
더욱 숨 막히는 일이다.
노인들이 너무나 많아서 스스로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앞으로 노인은 더욱 늘어갈 것이고 이
사회가 당면한 이 문제는 감당하기가
버겁다.
나이가 들면, 늙어지면 그저 노인이 되는 길 밖에 없는 걸까?
젊어질려고 아등바등거리며 얼굴에 별
짓을 다 하고 청년들이 입는 옷을 입어
도 늙음은 드러난다.
그 늙음을 피해야만 하는 걸까?
얼굴에 주름이 지고 머리가 희어진들
어떠랴?
노년의 시기가 삶의 시간 중 가장 길어
졌으니 한탄하고 두려워한들 소용이
없다.
아무리 도망쳐도 백발이 먼저 와서 기다
리고 있으니 우리에게 주어진 노년을
두 팔 벌려 환대하고 즐길 일이다.
나이는 먹으면 그만이고 변해가는 외모 는 내가 먼저 사랑하고 받아들이면서
두 가지를 늙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해야
한다.

머리와 가슴.
머리와 가슴을 늙지않게 하는 일은 얼마 든지 가능하고 본인의 노력에 따라 푸른
상록수 처럼 살아갈 수 있다.
얼굴에 검버섯이 피고 목의 주름이 쭈글
거린다 해도 가슴에 채워진 푸르름은
어느새 나의 행동을 달라지게 한다.
걸음이 느려지고 허리도 약간 굽어져도
상관이 없다.
삶의 길에서 만나는 젊은이들을 존중하
고 언제나 미소와 경청의 자세를 가질
일이다.
양보할 줄 알고 함부로 큰소리치지 않으
며 무엇에나 호기심을 잃지않고 알기 위해 공부하면서 아이에게도 존칭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나이먹어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볼멘 소리를 한다면 당신은 죽을 때 까지 독거 노인으로 살면서 혼밥과 혼잠
과 외로움에 쌓여 살아야 한다.
나 자신을 위해 , 내 주머니와 마음과
머리를 기꺼이 열고 아이와 같은 호기심 으로 나에게 남은 시간을 기뻐해야 한다
마음을 닫고 주머니를 닫고 문을 닫고
사는 것은 무덤 속에 갇힌 것과 다름 없다
지금 살아있고 이 삶을 기뻐한다면 늙음
이 무엇이 두려우랴!
꼰대만 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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