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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심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1-09-27 17:24

ㆍIP: 58.xxx.124

잔혹한 가족

잔혹한 가족

권영심 ( 2021 , 9 , 27 )

언젠가 내 남자의 여자라는 드라마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친구의 남편을 뺏은 화영이라는 여자의
케릭터가 참 복잡미묘했다.
그녀의 남자는 그만두고 나도 화영이
비슷한 여자를 알고 있다.
지금은 비구니가 되어 어느 깊은 산 속의 작은 산사에서 살고 있는데 아무도
그녀의 진짜 행방을 모른다.
극 중의 화영의 가족들은 그녀를 뜯어
먹는 고약한 사람들이었으나 실제의
그녀의 가족들은 정말 잔인하게도 그녀
를 이용해 먹었다.
친 부모와 오빠들이었는데 정말 뼛 속
골수조차 우려 먹었다.
타고난 미모에 착하고 고운 성품이어서
복 받은 삶을 살아도 될 것이었는데 그
가족들은 그런 그녀를 놔두지 않았다.
그녀는 부모의 강권으로 세 번 결혼했는
데 세 번 다 이혼했다.
세 남편 모두 나이 많고 자식이 있는 부자들이었고 그녀는 부모와 남편들의
거래에 의해 결혼하고 이혼했다.

그 때 마다 순종했고 그녀는, 자신을 팔아 넘긴 돈을 가지고 싸우는 부모와
오빠들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네 번 째의 결혼을 시키려고 부모가 준비를 서두르자 그녀는 칼로 자신의 얼굴을 서너군데 그었다.
피투성이가 되어 거실에 누워있는 딸을
병원으로 데려갔으나 그녀의 얼굴은
원래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자취를 감춘 그녀를 부모도, 오빠들도 찾지 않았다.
걸인의 생활을 하던 그녀를 데려간 사람
은 작은 절의 주지 스님이었고 그녀는
비로소 천국을 만났다.
비구니 스님들만 있는 작은 절을 그녀는
절대로 벗어나려 하지 않았고 끔찍한
흉터가 있는 얼굴을 감추지도 않았다.
차의 인연으로 그 절에 가서 사흘을 묵었을 때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
었는데 원한이나 미움이 없었다.

머리를 깍고 마음 공부를 하면서 이 생
에서 자신이 겪어야할 당연한 업보임을
깨달은 순간부터 모든 것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걸인 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부모와 오빠
들을 저주했는지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절에 그녀를 데려온 스님은 그저
먹고 자고 산을 쏘다니는 그녀를 오래도
록 놔두었다고 한다.
자청해서 머리를 깍고 공부하고 울력을
함께 하면서 그녀는 대자유인이 되었고
모든 것에서 놓여 났다.
칼자국이 많이 희미해진 그녀의 얼굴은
예전의 미모를 짐작하게 해주었다.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를 잘 꺼내지 않는
데 내게 이야기하는 것이 참 신기하다고
다른 스님들이 말했다.
그녀는 자신이 만든 차봉지를 여러 개
주었고 작별 인사를 나누면서 참으로
묘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와 나는 무슨 인연이 있었을까?
그녀가 준 차를 마실 때 마다 나는 많은
생각들을 했었다.
몇 년이 지나서 그 절을 찾아가려고 했으나 주지 스님의 다비를 치르고 그녀
는 두 명의 스님과 함께 아주 깊은 산의
토굴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 삶을 택하는 스님들이 의외로 많다
고 하니 인간의 인연을 벗어나려는 고뇌
는 그렇게 깊은 것인가 보다.
금수저로 태어나는 자식들도 많지만 부
모를 금방석에 앉게 하는 자식들도 많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 그 돈으로 인해 종내는 원수가 되고 마는 모습들을 많이
본다.
어린 자식이 벌어들이는 돈 관리 때문에
부부 갈등이 심해져서 재판까지 하고
이혼하는 경우는 외국에도 많이 있다.
이미 돈귀신에 씌워 버리면 모든 인간의
길이 파괴되어 버린다.

얼마나 괴로웠으면 자신의 얼굴에 칼을
그었을까...
남다른 미모를 타고난 것이 본인에게 재
앙이 되었으니 그 가족에게도 복이 될
리가 없다.
어찌 살고 있는지 가족들을 위해 매일
기도한다는 그녀의 얼굴은 무심하기만
했다.
모든 것에서 놓여난 무심은 그렇게 평안
해 보였다.
차를 만드는 고된 울력들이 그렇게 행복
하다는 스님은 지금 어느 곳 깊은 산사
에서 차를 만들고 있을까?
또 만나고 싶다고 했더니 모든 인연은
낙엽이니 찾은들 뭐가 남겠냐던 그 대답
이 이렇게도 다가온다.
선연이든 악연이든 모든 연은 결국 낙엽
처럼 바람에 날아가 버리는 것...
자신에게 가장 잔혹했던 가족의 인연도
무심이라는 낙엽으로 떨구어 낸 스님의
얼굴이 아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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