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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심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0-06-17 16:34

ㆍIP: 223.xxx.43

모든 것은 달라진다

-모든 것은 달라진다 -

권영심

나는 참 성숙한 아이였다
국민학교를 졸업할 때 이미 키가 165센티.
나만큼 큰 아이는 없었다
그 때는 성인 남자도 내 키 보다 큰 사람이 거의 없었다
졸업식을 마치고 아버지와 안동의 종가집에 갔을 때 청혼이 들어왔다
노랑 저고리에 다홍 치마를 입고 머리채를 땋아내려 진홍의 댕기를 물린 나는 누가 봐도 나이가 찬 규수였고 , 그 마당의 많은 여인들중에 가장 컸다
내 절을 받고 난 어느 종손이 아버지께 며느리로 달라고 그 자리에서 말씀 하셨다
아버지는 크게 웃으면서 이제 국민학교를 졸업했다고 말했는데 믿지를 않으셨다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붉어진다

그런 나는 언제나 맨 뒷자리.
중2학년 초 여름 방학이 시작되기 전에 그 사건이 터졌다
남자 국어 선생님이 학기 도중에 전근 왔는데 여학교는 처음이라고 했다
곧 믿을수 없는 일들이 소문으로 난무했다
그러니까...요즘으로 치면 성추행이나 다름없는 일들을 그 선생님은 자행한 것이다
머리채를 어루만지고 언제나 들고 다니는 회초리로 가슴의 유두 부분을 찌르거나 뒤에 서서 브래지어를 잡아 당긴다거나...
사실 그 당시 중 2때 브레지어를 착용한 학생이 많지 않았었다
그러니까 그 선생님은 발육이 빠른 여학생들을 상대로 그랬던 것이다

우리 교실에 세 번째 수업에 들어왔을 때 선생님이 내 번호를 불렀다
-1번 오늘 수업장 읽어 봐 -
나는 일어서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회초리를 든 채로 교실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니며 뭔가를 발견했을 때 손등을 때리거나 책상을 치고는 했다
나는 맨 뒷자리에 혼자 앉아 있었고 선생님이 내 옆에 섰다
선 키가 아마 선생님보다 컸을 것이다
여름으로 접어들고 있었고 팔을 내민채로 책을 들고 있었기에 반소매 블라우스 위로 속옷의 선이 드러났을 것이다
선생님이 더 가까이 다가온다고 느꼈는데 두 손이 내 어깨 위로 놓여졌다
회초리를 놓고 두 손을 내 어깨 위에 놓은 것이다

낭독하던 내 목소리가 멈추고 높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어깨에 놓였던 두 손이 그대로 내려가 가슴 부분을 쥐었던 것이다
책이 떨어지고 나는 그대로 몸을 돌이켜 선생님을 밀쳐 버렸다
선생님은 나동그라지진 않았으나 거의 쓰러질뻔 했다
-뭐하는 짓입니꺼? 쌤예!-
-이 자식이 선생님을 밀쳐?
키가 하도 커서 놀래서 어깨를 건드렸는데 ! -
선생님도 무안했나 보았다
아무리 그 시대라 할지라도 선생님은 두 손으로 내 가슴을 쥐었으니까.
-어깨만 만진게 아이고 내 가슴을 손으로 쥐었다 아입니꺼?!!-
울면서 소리치고 가방을 싸서 누가 말릴 틈도 없이 뒷문으로 교실을 뛰어나가 버렸다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으나 나는 멈추지 않고 그대로 집까지 내달려 가게에 있던 아버지께 다 고해 바쳤다
남보다 성숙한 딸에게 아버지는 아주 어릴 때 부터 철저한 교육을 시켰는데 그 누구도 몸에 손대거나 만질려고 하면 용서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엄마를 불러 가게에 나오게 하고 그대로 학교로 가셨다
그 뒤 학교에서 벌어진 소란은 오랫동안 이야기꺼리로 떠돌았다
선생님은 교장실에서 나에게 사과했고 나는 일주일 동안 선생님의 수업을 거부했다
요즘 같았으면 방송에서 난리가 나고 선생님은 중벌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당시는 그렇게 큰일이 아니었다
그런 정도의 일들은 너무나 흔하게 있었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모든 의식과 모랄과 사고방식은 달라진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다
극도의 개인주의가 되어진 요즘은 모든 것이 나 본의로 판단하게 된다
누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행동하더라도 그것이 나에게 거부감을 일으키면 범죄가 된다
그래서 무언가를 할려고할 때는 나 보다 상대방이 어떨까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예전엔 그래도 되었던 것이 지금은 안되며 그것을 인지하고 살아가야 함이 그나마 실수를 덜하는 길이다
앞으로의 세상은 또 얼마나 달라질까...
지금 우리 세대가 겪는 일들은 예전의 사람들이 수 천년을 살더라도 겪지못할 일들이다
바뀌어지고 달라지는 것을 따라가기도 버겁다
-예전엔 안그랬어 ...-라는 말은 젊은이들의 비웃음을 살 뿐이다
모든 것은 달라진다
지금 이 순간도 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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