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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권영심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0-08-05 21:33
ㆍIP: 223.xxx.215
이불속에 숨어서 알수없는 꿈을 꾼다
이불 속에 숨어서,알수없는 꿈을 꾼다

      권영심

내가 어렸을 때에 부산엔 적산 가옥이 많았다
적산 가옥은 거의 나무로 만든 이층집에 다다미 방이었다
낮은 철대문에 나무 몇 그루가 있고 담장을 따라 화단이 이어진 작은 마당이 있는 적산 가옥은 몇 가구가 세들어 살기도 했다
우리가 적산 가욱에 살 때엔 집 구조가 좀 복잡했다
일층의 가게와 부엌과 안방은 부모님이 쓰고 이층엔 층계참에 방 한 개와 부엌 이 있고 세 개의 계단을 더 올라가면 좁은 복도를 마주보고 방이 네 개가 더 있었다
층계참의 방과 부엌과 계단을 올라간 첫 번 째의 방은 다른 집이 살았고 나머지 방은 우리 4남매가 살았다
방 3개에 나와 남동생이 하나씩, 나머지 방은 여동생 둘이 함께 썼다
방이 다다미 방이어서 보수를 못하는 다다미는 많이 상한듯 했다
잘 기억이 나진 않는데 아버지는 어떤 방법으로든 보수는 했지만 온돌을 넣는 등 난방을 하지는 못했다

부산 영도는 바닷바람이 유난히 센 곳이어서 겨울에 담요같은 것으로 방 전체를 막고 이불 안에 밤마다 유담뽀를 넣어 주셨다
유담뽀는 지금의 럭비공만 했는데 헌 옷으로 빈틈없이 감싼 그것은 아침까지 식지 않고 따뜻해서 우리는 추위를 모르고 잠들었다
그 유담뽀가 긴 겨울 밤 식지 않았던 비결은 이불에 있었다
- 이불이래 차지 말고 꼭 덮고 자라우
무겁다고 , 덥다고 차 내믄 감기걸리지 안카서?-
유담뽀를 품에 안겨 주시며 이불을 귀 까지 덮어주고 아버지는 불을 끄고 방을 나갔다
계단의 삐걱거리는 소리는 아버지가 우리를 지켜주시는 증표였다
나는 아버지가 안겨준 유담뽀의 온기가 너무 좋아서 , 무거운 이불이 온 몸을 기분좋게 누르는 느낌이 좋아서 꼼짝도 하지않고 그대로 있었다
우리집 이불은 유난히 두껍고 무거웠다

해마다 솜을 타서 새로 이불을 만드는 것은 엄마가 해야할 일 중의 큰일이었다
해마다 안해도 된다고 엄마는 투덜 거렸으나 아버지는 문에 창호지를 새로 바르고 벽지를 바르는 일과 함께 겨울 채비로 요지부동이었다
새로 만든 이불에 한 가지 더 하는 일이 있었으니 밍크 담요를 이불에 붙이는 것이었다
담요와 이불을 덮으면 자다가 둘 중 하나는 벗겨져 추워서 잠을 깬다고 아버지가 손수 만들었다
두터운 이불에 두툼한 밍크 담요를 붙이는 일은 일반 바늘로 어림도 없어서 아버지는 어디서 길다란 공업용 바늘을 구해서 질긴 털실로 이어 붙였다
그러니 이불이 얼마나 무거웠겠는가?
부모님 이불은 그렇게 안하고 우리들 것 만이었다
어려서부터 그런 이불에 길이 든 나는 추워지면 지금도 무거운 이불을 찾는다

요즘은 침구들이 너무나 좋아지고 난방이 잘 되어 이불도 새털같이 가볍지만 나는 그러면 잠을 못 잔다
특히 힘들고 뭔가 고통스런 일이 있었거나 외롭거나 두려울 때는 무거운 이불속에 파고 들어 숨듯이 있어야 안정이 된다
다른 계절엔 잠을 안 자고 밤을 새우면 그만이지만 겨울의 차거운 바람은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그 무거운 이불속 의 따스함이 몸서리치도록 그리워진다
보통 3월이 되면 침구 전체를 좀 가볍고 산뜻한 것으로 바꾸는데 나는 아직도 무거운 토퍼를 깔고 덮은 사이에 웅크리고 누워 있다
이러다가 4월이 되어도 토퍼를 못 벗어 날지도 모르겠다
그 옛날 남동생 처럼...

몹시 병약했던 남동생은 자다가도 경기를 일으켜 엄마를 병원으로 뛰게 만들던 아이였는데 신기하게도 겨울이 되면 잠도 잘 자고 아침에 기분좋게 일어났다
지독히도 장난꾸러기였는데 이불을 차 내지말고 자라는 아버지 말씀은 꼭 지키던 동생은 어린 나이에도 알았었나 보았다
그렇게 따뜻하게 두터운 이불을 덮고 잘 자고 나면 몸이 개운하고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을.
그래서 엄마는 봄 늦게까지 남동생의 이불을 치우지 않았었다
겨울 밤마다 솥에 물을 끓이고 유담뽀를 만들어 안겨 주고 이불 자락을 여미어 주던 아버지...
나는 아버지가 그리운 것일까?
아니면 나라안에 만연한 감염병이 무서워 이불 속에 숨어 밖으로 나오고 싶지않은 것일까?
잠을 자지 않아도 이불 속에 있는 일이 많아진 요즘 자주 꿈을 꾼다
깨고 나면 내용을 전혀 알수없는 꿈 처럼 이 현실도 그저 오리무중이다.
꿈인 듯 현실인 듯...
이 황망한 사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정말 누군가에게 애타게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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