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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심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0-09-19 22:00

ㆍIP: 223.xxx.70

엄마와 설탕

#권영심
-엄마와 설탕 -

권영심

요즘 명절 선물은 참 다양하기도 하다
벼라별 것을 다 선물하는데 그 선물 중에 요상한 것을 보았다
스테비아라고 설탕 대용품인데 식물에서 추출한 순 식물성으로 값도 만만치 않았다
당도가 설탕보다 몇 십 배는 더하다는데 먹어보지는 않았다
사카린이나 신화당같이 우리 어릴 때 설탕을 사먹을수 없는 사람들이 먹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고급의 설탕 대용품인 모양이다
옛날에는 설탕 3키로 선물이 대단했다
누런 봉지의 설탕을 손에 들고 명절 거리를 활보하던 그 수많은 사람들.
울 엄마가 가장 반기던 선물이기도 했다
옷장사를 크게 했던 우리집은 명절 오후부터 손님들이 찾아 왔는데 도매상의 사장이거나 그 부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열흘이 넘던 대목의 물건들을 대주었던 도매상인들은 결산을 보기 위해 찾아 왔는데 보통 두 개 정도의 선물을 들고 왔다

과일 상자거나 굴비 상자와 함께 설탕을 꼭 들고 왔다
울 엄마는 아무리 좋은 것을 들고 와도 설탕이 없으면 표정이 시큰둥했기에 그렇게 두 개씩을 들고왔나 보았다
명절이 지나면 다락에 설탕 포대가 엄청 쌓여졌다
그 설탕을 울 엄마는 줄기차게 사용했다
팥칼국수를 끓이면 상 한 가운데에 설탕보시기가 놓였고 엄마는 큰 숟가락으로 몇 개나 넣어서 맛있게 먹었다
부잣집에서 자라서 사카린을 먹어본 적이 없노라는 것이 엄마의 자랑 레파토리중의 하나였다
찐빵을 잘 쪄서 먹었는데 팥소에 설탕을 잔뜩 넣어 만들었기에 우리집 찐빵은 맛있기로 소문났었다
그리고 여름이 오면 설탕은 그야말로 진가를 발휘했다
정말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울엄마는 설탕국수를 매일 먹었다
전라도 사람중에는 아마 고개를 끄덕일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맹물에 얼음과 설탕을 잔뜩 넣고 소면을 삶아 넣어 먹는 것인데 나는 이것만은 도저히 먹어지지 않았다
떡 때문에 쓰러지기 전 까지 이 음식은 엄마의 변치않은 사랑이었다
여름에 하루라도 먹지 않으면 소태가 솟는다고 했다
저녁엔 수박 화채를 거의 매일 만들어 먹었는데 엄마는 설탕을 한 그릇씩 내와서 거기다 부었다
사람들은 그 화채 국물까지 다 마셨다
또 비가 내린 뒤에는 과일 도가에 가서 토마토를 한 다라이씩 사가지고 와서 설탕에 버무려 큰 대접으로 우리에게 강제로 먹였다
병약한 동생에게 밥을 먹이기 위한 엄마의 노력은 정말 눈물겨웠다
뜨거운 쌀밥에 설탕과 프라이한 계란을 비벼주면 그나마 좀 먹었기에 그 희한한 조합의 밥은 지금까지도 나를 진저리치게 만든다

요즘의 사람들에게 이렇게 먹게 했다간 범죄 수준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설탕의 해악이 알려질대로 알려진 요즘 누가 명절 선물로 설탕을 주었다가는 미친 사람으로 오해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과 사오십 년 전에 설탕은 명절의 대표적인 선물이었다
엄마가 깊이 감추어놓은 설탕 한 숟가락을 몰래 훔쳐 먹던 아이들이 있던 시절이 있었다
울엄마는 설탕이 몸에 좋은 귀하고 비싼 것이라고 굳게 믿던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엄마가 어렸을 때는 더했을 것이다
외할아버지도 우리 집에 오시면 설탕물을 맛있게 드시곤 했다

기억할른지 모르겠으나 국민학교 때의 바른생활 책에 온가족이 겨울 김장하는 이야기가 실렸는데 모든 일이 끝나고난 뒤 아버지가 다락에 소중히 넣어두었던 사탕을 가족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힘든 일을 한 뒤엔 당분을 섭취하는 것이 좋다는 내용이었는데 내 기억의 오류가 아니라면 분명히 그런 내용이었다
지금은 당분 섭취가 몸에 해로운 것으로 되어 있으나 당분은 몸의 활력을 도와주는 고마운 성분일 때가 분명 있었다
지금은 음식이 넘치고 넘치는 시대여서 당분이나 탄수화물은 자칫 해로운 (?) 성분으로 오인되기 십상이다
그 때 그 시절...
명절의 선물로 설탕이 쌓이는 모습에 웃던 엄마의 얼굴이
그리움으로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사는 맛이 사람을 살게 한다

악플의 밤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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