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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이길옥
ㆍ작성일 2012-05-22 (화) 09:42
ㆍAutoPlay MediaPlayer
   
슬픈 기억 

    

<슬픈 기억>   
          - 시 : 돌샘/이길옥 -
                               

아버지의 귀가 시간이
자정 이전에서 자정 이후로 바뀐 것은
순전히 통금 해제 책임이다.

어머니의 눈시울이 노을에 젖기 시작하고
분통憤痛으로 내리기 시작한 어둠의 수렁에 빠진
아버지의 방황이
어머니의 억장을 무너뜨리고 있을 때

우리는
눈치로 양다리를 걸치고
아버지에서 어머니로
어머니에서 아버지로 널뛰기를 즐겼다.

어느 쪽에 승산이 있는 줄 분간 못 한 채
시계 불알처럼 흔들리다가
아버지의 끗발이 바닥을 치고 발기할 줄 모르게 되는 날
어머니의 투전에 합세를 하고 세를 키웠다.

풀죽었던 어머니의 기가 싱싱해지고
맥 못 추던 고개 빳빳이 세우게 된 것은
완전히 우리 탓이었다.

그 이후
역전패당한 아버지의 발목엔 족쇄가 채워지고
판정승한 어머니는
승냥이처럼 송곳니를 갈며 끈적끈적한 이물질을 흘렸다.

승자의 범위가 확대되는 만큼
패자의 영역은 좁아지고
승자의 목소리에 힘이 솟는 만큼
패자는 기가 죽어 꼬리를 사려야 하루가 편했다.

그렇게 변한 것에 길들여진 우리는
아버지의 한숨에 녹아든 짭짤한 눈물도 외면한 체
어머니의 독살에 힘을 실어주었다.

아버지가
갈수록 독기로 열 오른 어머니 발밑에 깔려
서서히 서서히 몸의 부피가 줄어들고
생각이 가늘어지더니
견디기를 포기하고 이승의 경계를 넘던 날

기쁨으로 동네방네 팔팔 끓게 날뛰다
좋아서 죽을 줄 알았던 어머니
가슴에 뭉친 체증 삭아 내리는 통쾌함에
넋을 잃을 줄 알았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가
송장처럼 누워만 있어도 좋은데 
작대기처럼 서 있기만 해도 좋은데
갔다고 허망하게 덜컥 가버렸다고
대성통곡하며 땅을 치는 것을 보고
어머니가 최고인 줄 알았던 우린
그때서야 뒤늦게
아버지 그늘의 크기를 눈치채기 시작했다.
후회의 수렁을 파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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