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 /대한문인협회 -시 (詩)

ㆍ작성자	김재덕
ㆍ작성일	2021-07-10 22:24

ㆍIP: 123.xxx.5

황당해진 비둘기

황당해진 비둘기 / 김재덕

장마철이라 햇살이 얼굴 내밀라치면 눈 따갑기도 하지만, 낮인데도 백내장으로 침침한 눈동자처럼 금세 어두워졌다가 또 비 내렸다가 잠시 밝아지다가도 먹구름 끼어 약속도 할 일도 미뤄져서 엉거주춤 출출하던 오후 4시경
'우리 돼지목살에 소주 각 1병만 마시고 올까요?' 하니
마침 기다렸다는 듯이
"좋지 나도 말할까 말까 하던 차, 네가 어찌 내 속 들여다보듯이 말하네!
그 집 고기 맛있더라~ 그래 가자.
그나저나 누가 사냐?"
'제가 대접할게요.'
"아따, 하마터면 고기 맛 떨어질 뻔했네. 나보고 사라고 했으면 큰일 날뻔했네."
기분 나쁘지 않을 너털웃음 지으시며 은근슬쩍 농담도 잘하시고 먹는 것엔 지갑을 자주 열 줄 아는 41년생. 큰형님이라 불러야 좋아하며, 안 지가 10년이 넘은 영감님. (참고로 영감님, 어르신 호칭은 기분 나빠함)
그 세월 지나서도 아직도 치마를 좋아하는 어지간히 밝히시는 정말 그것이 된다는 아주 이상하리만큼 50대 청년이 따지다가 뺨 맞고 울고 갈 정정한 청춘이신 큰형님을 모시고 가게 상호가 특이한
너 창살 무 봤나?
고깃집으로 희희낙락하는 발걸음엔 쓸데없이 힘만 붙었다.

아뿔싸!
창살이고 뒤통수 고기고 뭐고 문이 잠겼다.
이 시간에 영업하는 가게인데 이건 뭐지?
돌아가 말어 주저하는 동안
"전화해봐라! 전화하면 금방 온다더라."
잠시 마른하늘에 가랑비가 내리지만 이러다 멈추겠지. 생각으로 전화를 하니 "5분 안에 도착하겠다."는 가게 주인 말을 찰떡같이 믿고 기다렸다.
지금 하는 시행사 토지팀 일에 대해 어찌해야겠다는 의견을 주고받는 사이,
5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기다리면 오겠지라는 기대의 시간마저 30분이 지났는데도 주인은 나타나지 않고 출출하던 침샘은 말라가다 보니, 아니다 싶어 연락해보니 "진짜 5분 안에 도착하겠습니다." 답을 듣고서도 두 사람 얼굴이 먹구름 낄 것 같은 표정이다.

긴 눈썹 휘날리는 옛 스님 상 같은 가게 주인이 헐레벌떡 나타나
"아이고 늦어서 죄송합니다."
인사 끝나자마자 후다닥 준비한다. 늦게 도착한 탓을 피하고 싶었을 게다.
가랑비 맞은 연탄구이 깡통 탁자를 닦고 부랴부랴 준비하더니 소주 두 병과 야채 고기를 내놓은 자리에 플라스틱 의자를 물수건으로 닦으며
'아따, 시장기가 사라져버렸는데 넘어갈까요?'
"그러게. 출출할 때 먹어야 하는데, 이리 늦어가.. 그래도 구워봐라. 왔으니 먹어야지!"
유난히 고기를 좋아하시는 영감님, 고기 굽다가 내가 한점 먹을까 말까! 그새를 못 참고 벌써 너덧 점 소화하고서도 남 술안주 안 남겨놓고.. 덜 익은 뒤통수 고기를 쳐다보며
"고기 먹을 땐 말 거는 사람 제일 밉더라."
고개 들지도 않고 정신없이 드시는 식탐을! 같이 고기 먹어보지 않고선 모른다.

고기 몇 점에 소주 반병을 비우니 슬슬 술시가 안된 술이요. 출출하다고 아우성치던 내장의 부르주아가 입맛을 끊어가는 찰나,
비둘기가 날아와 애처로운 눈빛과 배 주린 구슬픈 노랫가락에 난, 그만 노릇노릇한 고기 한 점을 던져주고 말았다. 좋다고 쪼아대는 그 고깃점을
"그리 주면 안 된다며 전번 삼락공원에서 네가 빵조각 던져주니 참새가 잘 먹고 물고 가는 것이 보기 좋더라. 이번엔 복 받게 내가 잘해줘야겠다며," 그 고깃점을 빼앗아도 도망가지 않고 갸웃거리던 비둘기한테 가위로 잘근잘근 잘라주니 날름날름 혼자 잘도 먹는다.
"이놈의 새끼는 물고 가지도 않고 지만 배 채우네."
재미를 붙이셨는지 한 점을 더 잘라주면서
"아따, 이놈의 새끼 잘도 먹는다. 너, 오늘 힘이 솟겠다. 얼른 가서 빠구리해라"
한순간 우물거리던 내 입에서 고기 수류탄 터질 뻔했다.
얼마나 웃기던지. 어찌 그 순간에 사람도 아닌 비둘기한테 얼굴색도 안 변하고 저리 뻔뻔스레 말할 수 있을까?
역시 빠구리 좋아하는 대장님 같았다. (빠구리는 경상도 말로 좋은거라 함.)

그런데도 가지 않고 한 점 남은 고기마저 달라는 것인지. 영감님만 쳐다보는 비둘기, 식탐이 닮아서 싫었던 건지는 몰라도 비둘기를 향해
"ㅇㅇ놈아 나도 한 점 먹자. 가서 빠구리나 해라~ ㅇㅇ놈아."
빵~~~ 빵~~~
또 한 번 웃음보 터지고..
터뜨리지 못한 수류탄이 정말 아쉬웠던 것은, 입안에 음식, 술이 없어서이지
솔직히 영감님 하얀 티에 파편 자국 남겨 두고두고 기억될 추억을 만들고 싶었다.
이래저래 한참 웃다가 마지막 잔 짠하더니
느닷없이
브르륵~ 브르륵~ 빵빵아~
나온다 나온다 외치는 희야~
그 느낌 그립다고 붉어지는 영감님만 아는 은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영감님의 딸 같은 연인은 천생연분인지 성만 틀리고 이름이 같다.
어찌 됐든, 장마철 궂은날에 이리라도 보내면서 두 바탕 웃을 수 있어서 좋았다.
먹다 남은 고기랑 뒤통수를 더 주문하여 비닐봉지 쥐여주고 헤어졌는데, 그 순간의 여운이 지금까지 미소를 머금게 한다.
간혹, 일하면서 투덕거리기는 해도 세월을 거스른 친구 같은 존재감, 과히 나쁘진 않았다.

박희홍 2021-07-11 04:41	`김재덕`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존경하는 김재덕 시인님 ”너 창살 무 봤나? 고깃집으로 희희낙락하는 발걸음엔 쓸데없이 힘만 붙었다.“ 직장 선배와 오고 가는 맛깔스러운 정담과 함께 한 잔 술에 추억을 쌓아가는 ”황당해진 비둘기“ 글향에 즐감하고 마음에 새겨 갑니다. 시인님의 시향처럼 유쾌한 마음으로 긍정하며 늘 좋은 생각 속에 좋은 날들이길 빕니다. 고맙습니다. 주말 행복 충전하시는 좋은 시간이길 빕니다.

박상현 2021-07-11 22:00	`김재덕`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두물머리 연꽃 속에는 정화수처럼 깨끗함이 담겨있습니다 한 웅덩이마다 각기 다른 깨끗한 이슬처럼 피어난 꽃들이 하늘 속을 날아오르는 듯합니다 존경하는 시인님 안녕하세요 그동안도 건강하셨는지요 비가 오락 가락 하는 가운데 양평의 하늘엔 연꽃으로 가득했습니다 흐릿한 마음을 씻고 온 휴일이었습니다 조금은 하얀 마음을 담고 시인님의 뜨락에 인사드립니다 시인님의 곱게 집필하신 시에 연꽃 닮은 시향을 느껴봅니다 시인님 늘 감사드립니다 시인님의 뜨락에 인사드리는 것도 영광이고 이슬 닮은 시 한 줄 한 줄 배람하는 것도 영광입니다 시인님 무덥고 습한 여름에도 힘든데 코로나의 지칠 줄 모르는 습격이 4단계로 격상되어 힘겨운 여름입니다 시인님 늘 건강 유의하시고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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