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 /대한문인협회 -시 (詩)

ㆍ작성자	박명갑
ㆍ작성일	2022-07-15 05:23

ㆍIP: 223.xxx.149

그냥 비진도라 하자

그냥 비진도라 하자 / 박명갑

가보고 싶은 섬
그냥 비진도라 하자

끓어오르는 열기는 이유도 없이
그 누군가를 향해 방아쇠를 당겨도
가슴이 답답함을 느낄 때
모세의 기적과도 같은 섬
비진도로 가자

.바다 굽잇길 돌고돌아
얼음같은 샘물이 솟아나고
이무기가 날아올라 용이 되었다 해도
팔손이숲 용담에 팔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했다 해도 의심하지 않는 곳

다시 오겠다 마음에 다짐해놓고
반세기가 지나고
여름이면 더욱 그리운 섬
마음 단단히 먹지 않고 나설 수 있을까

방갈로 앉아 청옥의 캔버스에 그려보는
빈센트 반 고흐의 수채화
미녀는 간 곳 없고
체조하고 물에 들어가는 훈련병 모습 뿐이다
물보다 시간이 무섭구나, 이제는
선그라스 속으로 힐끔힐끔
비키니 아가씨를 훔쳐봐도 되겠다

푸른 동백인들 그대로일까
둘이란 인연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태초의 신비로움을 간직한 백사장은
개미허리 잘룩한 모습 그대로일테지

그곳에서 만나고 싶은 사람
그냥 명자라 하자
뭍으로 나가 통영 새터에 살다가
울주에서 배농사 짓는다는
친정에 내려오면 만날 수 있을까
기약없이 어찌 만나고 어찌 알아볼까

또 한 여름을 보내야 하는 것인가
나무인형에 생명을 넣을 수는 있어도
떠나간 시절인연은 돌아오지 않는다는데

가보고 싶은 섬
그냥 비진도라 하자
슬픈 전설의 사량도라 해도 되겠다

*시작노트

노트란 어떤 내용을 기억해두기 위해 적어둔 것을 말하며 세세하지 않고 대체로 간단한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이 글은 노트라기보다 시상의 배경이나 숨은 이야기라 하겠다.

비진도는 한산면에 딸린 섬이다. 많은 섬 가운데 왜 <그냥 비진도라 하자> 했을까. 가보고 싶은 많은 섬들이 있다는 말이다. 윤선도의 숨결이 머무는 보길도, 뱃사람들의 애환이 담긴 흑산도, 변산반도 격포에서 떠나는 바다낚시터 위도나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이나 많다. 그곳들을 그냥 비진도라 하자.

더위는 사람을 짜중나게 하고 어디론가 떠나게 한다. 이유없이 아라비아인을 죽인 뫼르소는 무슨 이유를 댈만도 하지만 그는 침묵했다. 아마 세상의 반응에 대한 반응 아니었을까. 반응에 반응하는 것이 너무 지나치다면 참 바보같은 삶이다. 부조리한 세상을 바라보는 것에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 살인을 하고도 아무렇지도 않고 무더위 때문이라 그냥 핑계를 대고 싶은 날 우리들은 비진도로 가자.

그곳 바다 굽잇길에는 천년을 차가운 물에 살며 헤엄치는 것들을 모두 다스리는 이무기가 살고 있다. 1974년 여름 원영을 할 때 차가운 냉수괴를 만나 구조선에 구조되어 원영을 포기하기도 하고 쥐가 나서 혼이 난 사람도 더러 있었다. 원영이란 장거리 헤엄치기이다. 그곳에는 지금도 용이 되기를 바라는 이무기가 살고 있을 것이다.

비진도는 팔손이나무 자생지로 천연기념물 63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파리가 여덟가락이라 팔손이라 부르고 공주의 반지를 끼워본 시녀의 전설이 전하고 있고 꽃말이 비밀이다. 이곳에 밤이면 천상의 선녀가 내려와 지상의 용담에 목욕을 하고갔다고 해도 전혀 이상한 이야기로 들리지 않겠다고 본 것이다.

48년이 되도록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에 보통 마움으로는 떠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 기간에 한 번 가본 곳이라면 또 다른 48년에 가본다고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지나간 날들의 추억은 더 많은 시간이 지나면 그 기억마져 희미해지는 흑백의 수채화가 된다.

우리가 해양훈련을 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관객이 있다면 마치 동물원 원숭이같이 보이지는 않았을까. 비키니 아가씨를 바라보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어느 한 순간 스치는 눈빛이 있었다면 그날 밤 팔선녀의 구운몽을 꿈꾸었을 것이다. 지금은 선그라스 속으로 힐큼힐큼 쳐다본들 그저 한 폭의 풍경화로 볼 수 밖에 없다.

그런 곳에서 만나고 싶은 친구가 있다. 이름이 명자다. 현자 가운데 공자 맹자 순자는 있어도 명자는 없다. 내 이름의 명자를 빌려 그냥 명자가 된다. 이는 시인 본인의 친구의 대명사쯤으로 이해해주기 바란다. 섬에서는 뭍으로 나가는 것이 꿈이었고 새터는 통영의 서호동일 수도 희망의 땅 새터민의 땅일 수도 있다. 배농사라 함은 배는 물이 많아 인심 좋고 베풀며 사는 친구를 지칭한다. 그 친구를 이곳 비진도에서 만나고 싶다고 말한다.

제7연에서는 자신의 조각상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피그말리온을 보다 못한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조각상에 생명을 부여하여 인간으로 만들어주었다는 그리스 신화를 인용하며, 이보다 더 어려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때가 되어 일어나는 시절인연이란 그저 일어났다 지나간 시간이다고 말한다.

마지막 연에 시인이 말한 슬픈 전설은 무엇인가. 사량도의 옥녀봉 전설이다. 이 전설은 부녀간의 이야기라기 보다 남여간의 애정행각 그 자체이다. 아버지와 딸과의 비정한 스토리는 예의의 나라에서 다룰만한 소재 자체가 못된다. 전설에 담긴 구절구절을 음미해보기 바란다. 사량도는 시인 자신의 고향이며 비진도와 동일시 되고 있다.

이 시는 자신의 성장과정과도 같은 섬을 마음에 두고 현실적으로는 가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이라 하겠다. 세월이 지나도 그 추억만은 젊은 날 해양훈련 하던 모습으로 돌아가서 만날 수 없는 명자를 기다리고 있다. 추억의 먼빛이라고나 할까.

빈센트 반 고흐가 돌아와 비진도를 그린다면 과연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다.

황영칠

2022-07-15 08:10

`박명갑`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존경하는 박명갑 시인님
저의 서재에 이른 아침에 들러 주셔서 잰 걸음으로 시인님의 모습을
뒤따라 왔습니다.

비진도에 가셔서 느끼신 아름다운 서정을 제가 느끼는 듯
드론을 타고 시인님의 마음까지 내려다 보는 것 같은
무척 아름다운 시를 발표하셨습니다.
저는 비진도에 가본 경험이 없습니다 만 시인님의 시를
감상하고 나니 비진도에 여행하고 싶은 마음이 납니다.

"또 한 여름을 보내야 하는 것인가
나무인형에 생명을 넣을 수는 있어도
떠나간 시절인연은 돌아오지 않는다는데

가보고 싶은 섬
그냥 비진도라 하자
슬픈 전설의 사량도라 해도 되겠다

특히 마지막 연에 마음을 두고 앉아 있으니
'떠난 인연은 돌아오지 않는다' 는
구절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좋은 시 감상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다음을 기약합니다.
고맙습니다.


박명갑	존경하는 황영칠 시인님 산문도 아니고 시는 더욱 아닌 보잘 것 글에 깊은 관심과 희망을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배우는 자세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7/17 18:25

염규식

2022-07-15 15:11

`박명갑`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시인님 건안하시죠
곱게 지피신 고운 시향 머물다 갑니다
오늘도 하시는 일 항상 감사하고 승리하는 한 주 되십시요
항상 고운 시향으로 서로 서재의 좋은 교분 되었으면 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향필하십시요


박명갑	예 존경하는 염규식 시인님 자주 찾아뵙고 배우며 교감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혹독한 하절기 안녕히 계십시오.	7/17 18:28

해바라기 사랑

별일 없제 / 박명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