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박목철
ㆍ작성일	2016-08-20 21:36

ㆍIP: 118.xxx.100

살생유택, (殺生有擇)

학창시절 두 분의 석학(碩學)을 모시고 열린 강연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한 분은 연세대학교 교수이시고 유명한 수필가 셨는데 기독교 입장에서 사랑이라는 주제로 강의하셨고,
다른 한 분은 동국대학교 교수이시며 형법계의 최고 권위로 알려지신 분인데 불교의 윤회(輪廻)를 말씀하셨다.
사랑에 대해 말씀하신 교수님은 수필가답게 논리 정연한 강의로 우리를 매료시키셨지만,
윤회 사상을 말씀하신 교수님은 말주변이 없으셔서 윤회 사상을 들으며 아닌데,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개나 돼지나 사람이 다 같은 가치를 가진 생명체라는 말씀에 선뜩 동의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그때를 회상해 보니 말주변이 없으셔서 우리에게 비록 감동은 주지 못했지만,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 모든 생명체는 인간과 더불어 살아갈 나름의 권리가 있다는 쪽으로 이해되었다.
사람은 한평생을 살며 많은 생명체를 죽이게 된다. 하지만 내가 뭘 죽였다는 의식은 거의 하지 않는다.
사람은 일단 모르는 생명체가 주변에 보이면 무조건 죽여야 한다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이런 본능은 아마도, 원시 시절 주거 환경이 온전치 못할 때 주변의 해충이나 동물에게 입은 피해가
축적된 결과가 아닌가 생각된다.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시라, 모기, 파리, 날파리, 개미, 바퀴벌레는
그렇다 쳐도, 해를 주지 않는 생명체도 주변에 있으면 그대로 두고 보지 못하는 게 사람 아닌가?

소운도 살면서 참 많은 살생을 한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살기(殺氣)도 나이가 들면 조금씩 가시는 것 같다.
가능하면 직접 해가 되지 않는 생명체는 죽이고 싶지 않다는 심정으로 바뀌게 된다고 할까,
지금 사는 곳이 시골이다 보니 내 생활영역에 벌레들이 자주 침범한다. 아침에 욕실에 들어가 보면 욕조에
돈벌레가 빠져 있을 때가 많다. 욕조가 미끄러운 탓인지 개미지옥처럼 한번 욕조에 빠지면 다시는 올라오지
못하고 인기척이 나면 어쩔 줄 모르고 바닥을 우왕좌왕하는 게 징그러워 구해 주기도 그렇다.
며칠 지나다 보면 추가로 빠진 놈들까지 합세해서 인기척에 부산을 떨기도 한다.

예전 같았으면 당장 살충제를 뿌렸을 테지만, 왠지 내 손으로 죽이고 싶지 않다는 게 요즘 심정이다.
그렇다고 마냥 두고 보기도 그래서 큰맘 먹고 상자를 찢어 얘들을 올라타게 한 후 창문을 열고 털어 버리기를
시도해봐도 놈들은 내가 살려 주려 한다는 것을 모르니 순순히 종이에 올라가지 않고 애를 먹이기도 한다.
녀석이 달아나려 하다 보면 내 손 쪽으로 오기도 하고, "녀석들 죽게 내버려 둘까 보다." 짜증이 확 올라온다.

강원도 산골에나 있는 줄 알았는데 양평에도 흡혈 진드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느 날 보니 집에서 기르는 진돗개의 눈두덩에 까만 콩 같은 것이 매달려 있는 게 보였다. 녀석이 백구라서
더욱 눈에 두드러져 보였을 것이다. 처음에는 뭔가 하고 의아했다. 설마, 흡혈 진드기가 양평에도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 줄을 당겨 자세히 보니 흡혈 진드기가 얼마나 피를 빨았는지 몸이 탱탱하게 불어 있었다.
개를 밖으로 끌어내 진드기를 떼어내 돌에 올려 죽이며 진저리를 쳤다.

흡혈 진드기에 관한 나쁜 기억이 있다.
언젠가 강원도 속사에 놀러 갔다 온 후 체육관에서 운동을 끝내고 샤워를 하는데 코치가 내 등을 보더니
놀라서 소리쳤다. "관장님 등에 흡혈 진드기가 붙어 있어요," 녀석의 호들갑에 "사마귀인 인데?"
등에 사마귀가 난 것을 보고 나이가 드니 별것이 다 생긴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기에 대수롭지 않게 받았다.
코치는 강원도에서 군 생활을 해서 잘 안다며 진드기를 떼어내 나에게 보여주었다.
살을 파도 들어 며칠이고 피를 빤다는 진드기의 다리가 꼬물거리는 게 소름이 돋을 지경으로 기분 나빴다
신문에 보니 살인 진드기라는 놈도 있는 모양인데 아무리 윤회가 어떻고 해도 진드기를 살려주기는 어렵다.

강원도 속사 이승복 기념관 주변에 다녀오신 분 중에는 진드기가 붙어 오는 분이 많았다.
어떤 분은 관자놀이 주변에 여러 개가 붙었지만, 검버섯이 생겼다고 생각했고 같이 간 분들도 그렇게 생각할
만큼 진드기가 붙어도 본인이 느끼기 어렵다. 이 분도 병원에 갔다가 진드기인 것을 알고 기겁을 했다 한다.
진드기는 떼어내려 해도 정말 사마귀라고 착각할 정도로 떨어지지 않는다.
(억지로 떼어내면 살 속에 박고 있는 머리나 다리가 잘려 살 속에 남는다고 한다.
과산화 수소를 바르면 스스로 떨어진다고 하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살생 없이 사는 게 생각보다는 어렵다. 집안에도 자세히 살펴보면 생명체가 많이 있고
공존해야 한다지만, 그게 쉽지 않다. 소운은 이렇게 마음을 정했다. 사람에게 해를 주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밖으로 쫓아 내던지 아니면 그대로 두기로,
신라 시대 화랑도에 가르쳤다는 살생유택, 참 오래전 조상분들도 소운과 같은 고민을 하신 것 같다.
죽이지 않고 세상을 살 수는 없지만, 최소한 잘 살펴서 살릴 것은 살리려는 마음은 있어야겠다.
인간만이 지구 위에 살아남는다면 그 또한 살벌하지 않겠는가?

새벽에 소변을 보려고 화장실 불을 켜니 뭔가가 후닥닥 문 앞에 깔아놓은 깔판 밑으로 몸을 숨긴다.
녀석, 내가 살생유택 하기로 착해진 것을 모르나 보다.

백낙은 2016-08-21 09:09	소운 작가님. 살생유택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모기나 파리는 때려 잡습니다. 그렇지만 발 밑에 개미를 일부러는 밟지 않으려고 피해가곤 한답니다. 하물며 인격을 가진 사람이겠습니까? 아무리 큰 죄를 지었다고 해도 사람을 죽이는 일은 절대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생명은 천부의 것이고 신성불가침이거든요. 그가 비록 권력을 손에 쥔 국가라도 사람의 생명을 해처선 안된다는 것을 주장합니다. 그래서 사형제도 폐지를 위해 요로에 진정도 하고 글도 쓴답니다. 어떤 나라는 사형제도를 폐지하고 100년 200년 형은 언도하는 것을 봅니다. 우리나라도 사실상 사형폐지 국가이긴 합니다만 법을 고쳐서 영원히 사형 제도를 없애야 할 것 같습니다. 살생유택 말씀 고맙습니다.

박목철 2016-08-21 12:50	《Re》백낙은 님 , 바쁘신 날인데, 글을 읽으셨군요, 댓글까지 주시고, 사람도 주변 생명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데 그게 쉽지않습니다. 양평에 오고 난 후 유난히 곤충과 자주 접촉하게 됩니다. 종아리에 진드기가 붙은 이후로 터밭에 나가기도 싫어 버려두다 보니 잡초가 장난이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 만 지구에 살아야 한다는건 오만이겠지요, 사형제도 폐지에 적극적이시군요, 김영삼 대통렬이 임기전에 사형 대기중인 사형수를 대량 교수형에 처했지요, 그 이후로는 사형 집행 실적이 없어서 사실상 사형제도 폐지국에 해당 된다고 하더군요, 저는 지금까지는 사형제 찬성 쪽이었지만, 깊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정찬열 2016-08-23 15:43	소운 작가님 !" 殺生有擇" 뜨깊은 글 감명깊에 배독하며 어쩌면 나도 똑같은 마음으로 생각해본 입니다 젊은 시절 최신형 공기총으로 꿩이며 비들기며 더나가서는 불가에서 금기시하는 낚시까지도 즐기며 살아와서 내가 그죄를 받아 지금 오른손 장애자가되버린 살생유택의 결과라며 나이가들고 사고이후 더욱 절실하게 느끼는 부분입니다. 참 흡혈 진드기가 어릴적 소풀뜯기를 할때 피마자 열매 또는 검은 콩처럼 붙어 피를 빨아 먹는 진드기 말입니까? 너무 좋은 글 잘 배독햐며 가슴에 간직합니다. 늘 편안 하시고 시원한 나날 되시길 기원 합니다.

주응규 2016-08-26 10:54	수필 서재에 모처럼 들러 좋은 글에 머물러 봄이 행복합니다 모처럼 수필을 쓸려니 맘같지 않습니다 이제 간간히 수필 서재에도 불을 밝히겠습니다 무더운 날 건강하시고 늘 행복을 깅원합니다.

임정수 2016-08-27 19:56	눈치 빠른 백구가 작가님의 등장에 반가움 보다는 몸서리치던 진드기의 생각이 먼저 떠올랐던가 봅니다. 아주 짧은 찰라의 순간일지라도 무언가 충격적이면서도 뇌리에 깊이 박힌 것은 오래도록 가는 법이거든요. 살생유택의 의미를 되새기며 고운 글밭에 머물다갑니다. 건강한 여름 나시길 빌면서 즐겁고 행복한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박목철 2016-09-07 18:08	《Re》정찬열 님 , 나이가 들면 내 탓이요 하는 마음이 드나봅니다. 저도 의미없이 한 살생들이 후회될 때가 많습니다. 삼국지의 제갈량도 남만 정벌시 화공으로 죽어가는 것을 보며 한탄 했다지요, 이 벌로 자신의 명이 짧아 지겠구나 하고, 진드기는 정말 기분 나쁘더군요, 소운은 한 세번 정도 진드기가 붙어 있는 걸 나중에 떼어낸 적이 있습니다. 떼어 낼 때도 꼭 검버섯이나 사마귀를 떼어내는 것 같이 느껴 지더군요, 그런게 며칠씩 살을 파고 들어 피를 빨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소름이 돋지요, 요즘은 서늘해서 잠 자기가 한결 편하더군요,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박목철 2016-09-07 18:11	《Re》주응규 님 , 항상 바쁘신 주 작가님께서 제 방까지 찾아 주시고 감사합니다. 남다른 주응규 작가님과의 인연을 소운은 늘 소중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활발하신 활동에 응원의 박수도 친답니다. 늘 감사합니다.

박목철 2016-09-07 18:15	《Re》임정수 님 , 임정수 작가님 서재에 찾아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작가님 말씀대로 말 못하는 개이긴 하지만, 답답하긴 했을겁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도 참 가지가지 입니다. 남의 피를 빨고 사는 진드기를 보면 호감이 가지 않습니다. 더위가 많이 가셨습니다. 행복한 계절 좋은 글 많이 지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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