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종 덕

나에게 올해는 참으로 바쁜 한해가 되고 있다. 해결해야 할 연구 과제가 잡고 놓아 주지 않아 힘들지만, 그래도 견딜 만한 스트레스가 되고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은 몸이 사그라들어도 해보고, 해내는 일들이 보람스럽기도 하여 나를 존재하게 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새벽 일찍 일어나 헬스장에 가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는데, 이 행복이 코로나바이러스 덕분에 헬스장이 페쇄된 후, 멍하게 아침을 시작하는 것이 답답하여 마을 주위 조깅을 하기도 하고 맨손 체조를 해봐도 무언가 시원하지 못하고 목에 걸리는 느낌이 들었었다.

얼핏, 국가정원이 떠올랐고 거기서 조깅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동차로 가니 10 분정도 소요되었다. 그리고 아직은 차가운, 봄이 오려면 조금은 일찍은 정도로 나의 온도 센서는 아직 봄을 가리키지 못하고 있었다. 더운 것보다는 차가운 것에 적응이 되어온 터라 살갗에 닿는 차가운 기분은 은근히 살가운 느낌이 돈다.

정원 안에는 참으로 맑은 공기가 다가와 안개 서리게 하는 느낌이 좋다. 아직 차가운 지층에서 눈을 뜨고 있는 식물들은 많지 않아 보이고 조금 올라온 듯한, 아니면 심은 듯한 싹들이 약간의 땅을 헤집고 나와 있다. 이제 매일 와서 얼마나 자라는가하는 것은 보는 재미도 있을 것 같아 매일 아침에 출근을 한다. 아침 8시 이전에는 입장료를 받지 않아 은근한 재미도 더한다.

차가운 비가 쏟아져 아가들이 움츠리는 소리가 들리고, 봄은 아직 보이지 않는데 어찌하면 좋을까하는 생각들이 마음을 조르고 있다. 그리고 아가들은 매일이 다르게 키가 자라고 있었고 성급한 놈들은 꽃봉오리를 만들기도 하고 있다. 시냇가엔 차가운 바람으로 매를 맞고 있는 수양버들이 아프게 다가오고, 마른 바랭이 잎엔 아침 이슬이 실려 곱게 빛나고 있다. 놀기 좋은 연못엔 오리가족, 거위 자족이 아침을 노래하고 아기오리 엄마 좇아가는 모습이 그렇게 정겹다.

경사진 산 쪽에는 아직 철쭉이 잠을 깨지 못하고, 매화는 하나 둘 이슬 속에 피어나고 있다. 이 봄의 아픔이 피부에 느껴지는지 눈을 흘기듯이 조용조용 터뜨리고 있다. 실버들처럼 휘늘어진 매화 나무엔 꽃인지 눈물인지 가득 맺혀 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버들강아지 소식이 없었는데 하루 하루 다르게 눈이 터지고 자신의 자리를 잡으려 움직이고 있다.

어느 듯 수양버들에 눈이 트고 매말랐던 줄기에서 숨을 쉬고 있다. 참으로 아가가 자라는 모습이 이렇게도 귀여운지 말로써는 표현이 안된다. 소리내어 흐르는 시냇물 소리에 맞추어 작기만 했던 튜울립이 어느새 긴목을 내밀고 봉오리가 아주 생기 차서 올라오고 있다. 이제 데이지꽃은 노랑, 자주, 빨강으로 화단을 장식하고, 그 옆의 꽃잔디는 언제 왔는지 너무 귀엽게 펼쳐져 있다.

살구꽃이 공연 시간이 되었는지 매화와 구별 못하게 와있고, 그 곁에는 너무도 빨갛게 정열적인 처녀꽃이 자신도 보아 달라고 손짓하고 있다. 이젠 늦잠 잘 수도 없는 때가 되었나 보다. 200년이 넘었다는 목련은 그 높은 하늘까지 하얗게 꽃을 피우고, 역광으로 보이는 그 강렬함이 우리엄마 젊은 모습을 그대로 닮아 있다. 아침인데 눈물이 난다. 저렇게도 고운 삶을 살아 볼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너무 크다. 자목련도 햇빛을 곱게 받고 있고, 가로수로 늘어선 벚나무엔 꽃망울이 맺히더니 며칠사이 하늘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뒤덮고 있다.

봄은 이렇게 시간을 타고 나의 곁으로 왔다. 거의 한 달동안의 봄은 서서히 나의 곁에 와서 나의 가슴에 스며들었다. 여태껏 봄이 이렇게 착착 나에게 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 매년 봄이 왔기에 좋아 했고 꽃을 보아 가슴 뛰게 하였는데, 올해 지켜본 봄은 변하지 않는 고운 모습으로 왔다.

그 봄 속엔 아픔을 다하며 피어내는 꽃들을 보고, 봄은 그렇게 쉽게 오는 것이 아님을 생각했다. 사람 사이의 마음은 시간에 지배를 받아 서로 사랑도 하고 미워도 할 수 있지만, 봄이 오는 그 길은 너무도 아픈 길을 걸어온다는 것을 새기고 있다. 항상 다가와 주어서 고맙기도 했던 봄이 올해에 나에게 올 때는 그 실시간으로 아픔을 중계하면서 왔다. 봄은 건강하게 출발하여 나에게 오면서 생전 처음 겪는 역병에 걸려 숨도 홀짝 쉬지 못하고 기침을 하며 왔다.

최선을 다한 봄꽃이 지는 이유는 시간이 흘러서 지는 것이 아니라, 아픔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여 지는 것을 보았다. 그 아픔은 사랑으로 해결되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 백신도 시간이 지나야 해결될 것 같은데, 해결하기엔 너무 시간이 걸려 내년엔 건강하게 올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봄은 아픔을 삼키며 나에게 왔는데, 나는 봄을 위하여 해줄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어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그래도 내년엔 자연 면역의 혜택을 입어 건강하게 돌아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