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이도연
ㆍ작성일	2020-07-20 00:54

ㆍIP: 61.xxx.139

성북동 걷는 길 1

성북동 걷는 길
성북동에는 비둘기가 없다.

1. 길상사

밤새 비가 내렸다
창밖에서 바람소리와 빗소리는 서로 뒤엉켰고 가끔 새벽 어둠을 달리는 차바퀴에서 요란하게 물마찰을 일으키는 소리가 서로 엉켜서 비의 존재를 알렸고 귀밑 머리에서 내리는 빗소리는 끊임없이 베개를 적시며 들렸지만 시끄럽게 느껴지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빗소리는 마치 조용한 리듬을 타고 새벽이 되도록 꿈속과 메마른 현실을 연결하는 길처럼 오가며 더위에 지친 들판과 산에 살아 있는 것들에게 생명수를 뿌렸다.

밤사이 내린 비로 흙과 초목은 갈증을 해소하고 싱싱하게 살아났으나 새벽녘에 까무륵하게 잠들다 요란하게 지저귀는 새소리에 깨어 눈을 떴다.
빗소리에 노닐어 윤기 없이 까슬하게 젖은 몸을 일으켜 창밖을 보니 어느새 비는 소리없이 물러가고 흔적을 남긴 흐릿한 비구름 사이로 아침 햇살이 드문드문 젖은 땅 위로 빛을 튕겨내며 환하게 아침이 열리고 있었다.

들판의 초목과 꽃은 밤사이 내린 비로 싱그럽게 피어나고 아직도 물기를 머금어 깔끔하게 정리된 시야는 저 멀리 보이는 북한산에서 암 청색 빛으로 반짝이며 선명한 능선을 온전히 드리우고 있으며 동공 가득 풍경을 끌어안고 꿈에서 깨어난 나는 상쾌함에 들떠 있었다.
세면장에서 어지러워진 머리와 아직 선잠에서 헤매는 얼굴과 몸을 씻고 간단한 복장을 갖추고 문을 나서니 개구장이 장난하듯 여기저기 몰려다니며 비를 뿌리는 구름을 바라보며 우산을 챙겨 들고 집을 나선다.

출근 시간보다 조금 늦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버스는 제법 복잡하고 전철역에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으나 용산 행 직행전철이 5~6분 간격으로 지나가면서 수많은 승객을 숨가쁘게 실어 나른다.
용산 직행을 타고 가다 환승을 해서 서울역까지 달려갔지만 별로 지루하다는 생각이 안들은 것은 오늘의 여행 계획에 달뜨는 즐거움일 것이다.
4호선으로 한번 더 환승을 한 후에 한성대입구에서 내려서 길상사행 마을버스를 타고 길상사 일주문 앞에 도착한 것은 집을 출발 한지 두 시간 만이 였다.

삼각산 길상사

일주문 앞에 피어난 꽃들이 선명한 보랏빛으로 반겨주는 느낌을 받으며 경건하게 일주문을 들어선다.
길상사는 원래 대원각이라는 고급 요정이었던 것을 주인인 김영한님이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접하고 감동을 받아 1987년대지 7000평 건물 40여동 부동산 전체를 기증할 의사를 오랫동안 청하여 1995년 법정스님께서 그 뜻을 받아들여 그해 6월15일 대한불교조계종 송광사 말사의 대법사로 등록하여 공덕주 김영한에게 길상화 라는 법명을 내리고 절의 이름도 길상사라 바꿨다.

길상사의 내력과 법정스님께서 말씀하신 무소유를 다시한번 새기며 대웅전(극락전)으로 바로 올라가는 계단을 돌아 천천히 언덕길을 오르다 보니 종교 화합의 염원을 담았다는 특이한 모습의 성모 마리아 상과 비슷한 관음보살상이 우선 눈에 들어오고 우측으로 길상 7층보탑이 단아하고 기품 있는 모습으로 서 있다.

이 탑은 부처님 오색 전골사리, 구강 사리와 제자들의 사리를 봉안하였다고 적혀 있다.
바로 옆 선방에는 묵언과 침묵 그리고 수행정진을 위한 행자들의 번뇌와 깨달음을 위한 바람이 내게는 입구에 써 있는 "조용히 하시오"에 모두 들어 있는 것 같았다.
보 탑 옆에 피어난 홍련은 우와 하고 기품이 있어 보였고 청련은 청초하고 싱그러운 절개가 느껴진다.

담장위로 짙은 녹음이 우거지고 능소화가 허공에 꽃송이를 매달아 놓은 듯 둥실둥실 피어난 길을 따라 오르자 산에서 맑은 물이 내려오고 그 옆으로 새파란 대나무숲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대나무가 공명하며 울리는 절개와 비움, 무소유의 소리가 들려온다.

법정스님의 마음과 가르침의 참모습을 모셔 놓은 진영각이 자리하고 있다.
진영각 한쪽에 얼기설기하게 생나무를 엮어 만든 낡은 의자가 놓여 있다.
평소에 스님이 앉아 계시던 의자로 스님의 청빈함이 엿보이고 내 눈에 들어온 의자는 이미 의자가 아닌 스님의 마음과 스님의 참 모습이 함께 보였다.
두 손을 합장하고 스님의 영정 앞에 고개 숙여 깊은 존경의 마음을 담아 예를 표한다.

진영각 안에는 스님의 영정과 함께 평소 스님이 사용하시던 몇 안되는 소품과 발우와 육필 원고 등이 전시되어 스님의 생전의 모습을 뵙는 것 같았다.
울타리 옆 화단에는 풀과 꽃들이 서로 어우러져 피어 있고 아무런 꾸밈도 장식도 없이 이름모를 들풀의 이름처럼 법정스님 유골 모신 곳이라는 표시 아래 한줌의 흙으로 묻혀계신 스님의 흔적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하게 한다.

영각을 돌아 우측 계곡을 따라 내려오면서 스님들이 거처하며 기도하는 선방이 있고 나무로 만든 다리 건너에는 길상사 공양주를 기리는 길상화 님의 사당과 공덕비가 있다.
스님의 무소유를 몸으로 실천한 여인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싯귀를 보며 지난날이 선명한 현실처럼 느껴지며 시인 백석을 사랑한 여인 김영환의 애칭인 김자야를 만날 수 있었다.
영원히 한 시인을 사랑한 절절한 순애보와 눈물과 이별, 사랑 조차도 무소유로 승화시킨 길상화 님의 숭고하고 맑은 정신 앞에 고개를 조아려 예를 표한다.

대웅전 옆에 아기 동자승 모습이 싯다르타가 보리수 나무아래에서 대각 견성을 이룬 것인가 나무아래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귀엽고 온화함의 염화미소를 보며 때마침 법회를 하는지 스님의 독경소리가 영내에 맑게 울려 퍼진다.

싯다르타의 가르침으로 영적 깨달음을 얻지는 못 하였지만 스님의 가르침을 조금이라도 귀 기울이고 싶어 스님이 만드신 (사)시민 모임인 맑고 향기롭게 재단에서 운영하는 판매점에 들러 스님의 책한권을 사 들고 기쁜 마음으로 길상사를 나선다.

장선희 2020-08-24 12:12	이도연 작가님의 글을 보며 길상사를 다시 둘러보는 듯 합니다 성북동은 저의 동네서 가까운 곳이라 잘 알고 있고 자주 가는 곳이지요 법정스님의 흔적을 처음부터 지켜보기도 했고요 요즘 같이 코로나19로 거리두기 하는 때에는 혼자서라도 조용한 의미있는 장소를 다녀보는 것도 좋을 거 같아요 더운 여름나기 잘하시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성북동 걷는 길 2

도명산(道明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