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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권영심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0-08-07 18:37
ㆍIP: 223.xxx.182
의식의 자유
#권영심의글
의식의 자유

       권영심

오늘 늦어진 세금 신고를 하기 위해 세무서를 찾았는데 나로서는 대단히 충격적인 모습을 보았다
말일이 다 되어서인지 민원인들이 많았는데 모두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는 중에 놀라운 커플이 들어 왔다
남녀가 머리는 산발을 하고 잠옷 위에 외투만 걸치고 맨 발에 슬리퍼만 신은 차림으로 위풍당당하게 들어온 것 이었다
삼 십세는 안되어 보이는 커플의 차림새는 나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도 놀라운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남자는 그래도 잠옷임이 분명한 위 아래의 토끼 무늬 극세사 옷이어서 가릴 데는 다 가렸다
그러나 지나치게 풍만한 여자는 잠옷인지 란제리인지 모를 짙은 청색의 짧은 속옷이어서 허벅지며 가슴이 민망하도록 드러났다
그런데도 두 남녀의 표정은 너무나 발랄하고 아무 문제 없었다
도리어 사람들이 시선을 피했다

유추하건대 두 사람은 부부이거나 동거를 하는 연인들일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야간업소를 함께 하며 새벽까지 장사를 하고 낮엔 잠을 자는 그런 생활을 할 것임이 분명하다
아마도 저런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것이 절대 처음은 아닐 것이며 타인의 시선 쯤은 무시하거나 아예 의식 밖의 일 일지도 모른다
티셔츠 하나 위에 걸치고 나올 예의조차 없는 그들이 여름엔 어떤 모습으로 밖에 나올지 머리속에 그려진다
오늘 본 커플은 정말 심했지만 요즘 속옷 차림으로 길을 다니는 사람들을 가끔 본다
특히 아침에 엄마들이 아이들을 유치원 버스까지 데려다주러 나올 때 잠옷 위에 외투 하나 걸치고 나온 모습을 자주 본다

은행이나 시장에서도 보게 되는데 나는 볼 때 마다 연상되는 것이 있다
예전에 남자들이 런닝에 파자마 바지를 입고 동네 가게 평상에 둘러앉아 술을 마시거나 놀기도 했는데 정말 혐오 스러웠다
특히 여름에 거의 팬티스러운 짧은 바지 만을 입고 골목을 활보하는 사람들이 있어 여학생들을 놀라게 했다
나는 지금도 골목길을 가급적 가지 않는데 지독한 길치여서 골목길에만 들어가면 길을 잃는 데다가 봉변을 당한 경험이 끈질기게 나를 놓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자고 예전엔 그렇게도 바바리맨이 많았을까...
어쩔수 없이 골목길에 가게 되었을 때 갑자기 사위가 조용해지고 대문들은 다 닫겨 있으며 갈 길은 아리송해서 걸음은 바쁘다
그럴 때 어디선가 슥- 나타나는 바바리 사나이.
옷자락을 홱 펼치면서 활짝 웃는데 변변치도 못한 물건이 칠칠치도 못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다

언제부터 그런 것들을 무서워 하지 않았을까?
골목길엔 돌멩이들이 많았고 나는 심지어 연탄재도 들어서 던져 거시기에 맞춘 적이 있다
도망가지도 않았고 소리지르는 남자 에게 계속 돌을 던지면 결국 그가 도망 을 갔다
바바리맨을 마지막으로 본 지 십여년은 된 듯 하고 골목길을 말하다가 바바리 맨까지 와 버렸다
옷은 그 시대를 말하는 대표적인 아이템 인데 요즘의 젊은이들의 차림새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한 걸음도 걸을 필요없이 집에서 바로 차를 타고 움직이는 시대에 자신이 정말 원하는 곳에서의 멋부림이 아니면 어떤 모습도 상관없어지는 무관심은 어쩐지 무서워진다

나이든 여인이 짧은 치마를 입으면서 스타킹을 신지 않아도 되고 하의 실종 패션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놀라운 레깅스 패션이 있는 오늘날 나는 정말 구식의 구세대의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속치마 위에 외투만 걸친 패션을 본 오늘은 그저 어질어질할 뿐이다
혹시 속치마가 아니고 그런 모양의 티셔츠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봐도 너무 짧고 너무 깊에 파여 있었다
그렇게 자유로운 의식을 가지고 거침 없이 한 세상을 살아가는 것도... 좋은 것인가?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한 여름에도 반드시 스타킹을 신어야만 하는 나는 어쩌면 부러워 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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