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이경옥
ㆍ작성일	2021-01-14 10:25

ㆍIP: 39.xxx.225

시간을 거슬러 오를 수 없다면

시간을 거슬러 오를 수 없다면/ 이유희

꽃향기 파고드는 봄날처럼.

눈이 왔네요. 그녀도 왔나봐요. 살포시 내려앉은
그녀의 향기가 가슴을 파고드네요. 볼에 와닿던
그녀의 손길이 어느새 스며들어 눈물이 되었네요.
날이 지나도, 쌓인 눈이 녹아도 녹지 못하는
그녀와의 추억은 오롯이 나의 몫인가요.
흩어지지 말아요. 사라지지 말아요. 내 안에 고인
눈물 얼리어 그댈 만들 수만 있다면.
기다려요, 이 세상의 끝에서 눈빛 마주하는 날
그대를 꼬옥 안고 놓지 않을게요.
잊지 말아요 언제나 그대의 그늘에서 사는 나를.

금불 지펴 데워진 부뚜막엔 늘 나비가 자리잡고 있었다. 어디서 왔는지, 언제부터였는지 희뿌연 재를 뒤집어 쓴 들고양이 한 마리는 오래묵은 구식 부엌의 터줏대감으로 살았다. 평소 짐승을 좋아하던 엄마와 아빠는 소, 개, 흑염소, 사슴, 토끼 등의 가축을 키웠다. 동시에 여러 종의 가축류를 키운 적은 없던 것 같고 개만 집을 떠날 때까지
함께 산 것도 같다. 개는 새끼도 잘 낳고 잘 크고 온순한 편이어서 살찌워지기 무섭게 팔려 나갔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텅 비어있는 우리 안을 보고 한여름 소낙비 쏟아지듯 울었었다. 이깟걸로 운다고 등짝도 참 많이 맞았다. 당시엔 맞는 것도 서러웠다. 듬뿍 정이든 가축들이
하나 둘 사라져 갈 때마다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는 심경이 짠하여 마음이 아팠다. 물고 빨고 씻기고 밥 먹이며 같이 정든 시간이 그냥 아깝고 억울했다. 흑염소우리에 한 쪽 면은 돌담이 막고 있었는데
무슨 재주로 돌담 틈에 안착했는지 모를 금낭화가 골목으로 피어났으면 좋으련만 하필 우리 안쪽으로 꽃대를 키웠다. 송이송이 꽃종을 매달고 흔들어 댈 때면 8살 여자아이는 호기심 반, 욕심 반으로 염소우리 안에 발을 들여 조막만한 입으로 금낭화 꽃송이를 질겅거렸다. 금새 모여든 흑염소 서너마리는 쉼없이 나의 얼굴에 코를 박고 지분거렸다. 깔깔거리며 손사레를 쳐보지만 이미 우리를 침범한 이방인을 가만 놔두지 않았다. 맨 살에 스치는 털들이 간지러워 밀어내고 밀어내도 오물오물거리는 입술이 다가와 옷자락과 머리카락을 씹어댔다. 금새 침벅벅이 되어 번질거리는 얼굴과 팔, 다리를 하고 흑염소에 둘러쌓인 채 웃어대는 나를 바라보는 눈빛 하나가 있었다. 돌담 위에 앉아 있던 고양이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빤히 쳐다보는데, 왠지 그 둥굴고
영롱하지만 알 수 없는 반항적 눈빛이 그때 부터인가 좋아지게 된 것 같다.

그로부터 며칠 뒤, 흑염소 우리는 비었다. 또 팔아버린 것이다. 마지막으로 키웠던 가축이었는 듯 싶다. 나무로 만들었던 우리에 거미줄이 잔뜩 끼고, 돌담 틈엔 더이상 금낭화가 꽃을 틔운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한동안 주인 없는 우리가 점점 허물어져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왜 이리 방치하는지 궁금조차 하지 않았지만 돌담 위엔 언제나 고양이가 있었다. 그래서였는지도 모르겠다. 허전했으나 고양이가 대신한다는 알 수 없지만 눈동자를 볼 수 있어 허전하지 않은 마음. 어리다고 비웃는 듯한 고양이의 눈빛이 괜스레 좋았다.
살그머니 다가가려 하면 '너같이 어린 것은 상대하기 싫다'란 눈빛으로 그 자릴 벗어났다. 뻗었던 손이 무안해지는 횟수가 늘어갔다. 주말이면 아침부터 돌담 앞에서 고양이가 오기를 기다렸다. 시간 개념 없는 이 녀석은 제 기분에 따라 등장했다. 아침 9시에도, 오후 5시에도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돌담에 앉아 있다 사라지곤 했다. 일정치 않은 고양이의 행적에 몸이 달았다. 땟구정물 흐르는 털이라도 자르르 윤기는 흘렀다. 느긋하게 좁은 돌 위에서 세수라도 할라치면 바라보기만 해야하는 나의 마음은 고양이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안고 싶었다. 맘껏 예쁘다 예쁘다 쓰다듬고 싶었다. 혼자서 애태우는 짝사랑, 난 이미 8살에 첫사랑을 터득했다. 짝사랑도 사랑은 사랑이니까. 이름도 나이도 모를 들고양이에게 마음을 빼앗긴 죄로 밤마다 잠을 설쳤다. 이제나저제나 내 마음이 전달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엄마의 새벽기도 소리에 맞춰 두 손을 포개어 기도까지 했다. 시간은 흐르고, 늦가을에 접어들었다. 금불을 때는 아버지 주변을 맴도는 고양이가 있단다. 혹시나 하는 기대에 심장이 콩닥거렸다. 제발 제발 돌담 고양이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리고 그 기도는 통했다.

하루를 데피던 햇살이 뉘엇뉘엇 서산의 뒤안길로 사라지면 아궁이 속 장작이 타들어 가며 저녁이 오는 것을 알린다. 어김없이 아빠의 다리 사이를 차지하고 그릉그릉 대는 고양이. 봄의 끝자락에서 만난 고양이는 한 해를 새침한 여인네처럼 손길 하나 내어주지 않은 채 이듬해 초겨울을 맞았다. 고양아 고양아 부르려니 눈길조차 주지 않던 무심함에 울상짓던 날들이 쌓이고, 밤마다 문풍지에 들러붙은 말라버린 국화무늬만 긁적이며 혼잣말을 하는 시간도 쌓여갔다. 그 모습을 보며 엄마는 '가지가지 한다' 라고 했고, 아빠는 '그 노무 들괭이가 뭐가 좋아 초상집 맹키로 침울하냐'라고 말씀했다. 엄마, 아빠는 8살 어린소녀의 감정을 모른다고 확신했다. 짝사랑을 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라며 못도 여러개 박았다. 눈을 떠도 감아도 손에 잡히지 않는 사랑이 이리도 마음을 들썩이게 할 줄은 몰랐다. 수시로 변하는 장마철의 날씨처럼 가슴 속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나의 마음이란 것이 고양이가 받아주지 않기 때문인지 완전한 내것을 만들지 못해서인지 하루에 한 번도 제대로 볼 수 없는 날들 속에서 강가의 갈대만큼 쉬이 흔들렸다. 그리 속앓이를 하는동안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실 하나, 고양이는 이미 엄마와 아빠와는 안면을 텄다는 것이다. 먹을 것을 챙겨주다보니 자연스레 우리집은 하루를 거쳐가는 일과의 길목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일년이란 시간을 허비했다. 고양이는 이미 '나비'란 이름까지 가지고 있었다. 흑염소우리 안에서 마주쳤던 돌담 위의 고양이 나비는, 그때도 가족의 일부였다. 그때 그녀의 눈빛이 그리도 심드렁했던 이유가 그 때문일까? 네 주인들은 이미 널 가족처럼 대하는데 처음보듯 대했던 내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애타게 기다리던 고양이 나비는 암놈이었고, 세 마리의 새끼도 있었다. 뒤꼍 장독대 주변에 먹을 것을 놓아두면 새끼들을 데려와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또 얼마나 행복했는지. 나의 짝사랑은 곧 끝날는지 몰랐다.

아궁이에 타오르는 불길을 쬐며 잠이 들고, 코까지 곯아대던 나비는 불길이 점점 사그라들자 솥이 걸린 부뚜막 위로 올라간다. 쇠죽이 펄펄 끓는 솥 주변으로 김이 빠져 나오자 뜨거웠는지 요리조리 적당한 온도의 바닥을 살피며 어슬렁거린다. 도망칠 때는 참 잽싼데 딴 때보면 느려터진다. 난 나비가 뜨거운 김에 데일까 맘 졸이며 등을 잡아들려하니 캬-악하며 성질을 낸다. 내 맘도 몰라주고. 내가 널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데,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할건데, 너는 그러면 안되는거다 아무리 외쳐대도 퉁명하게 뚱하다. 아 저리 무뚝뚝한 가시내를 봤나! 사랑은 언제까지 기다리기만 해야하는 걸까.
그녀의 손 한 번 잡아보기 어렵다. 그렇게 요염하기 짝이 없는 나비가 여러마리의 새끼들을 키워 내보내고, 또 다시 낳고 떠나보냈다. 털끝 하나 만지지 못하고 바라보기만 한 6년이란 짝사랑의 시간은 하늘에 그어진 비행기 지나간 자욱처럼 깊게 새겨졌다 쉽게 흩어져 버렸다. 어느새 나는 6학년이 되었다. 흘러가버린 시간 동안에도 나비는 여전히 얼룩무늬에 재를 뒤집어 쓰고 부뚜막에 등을 지졌다.

그리고 6학년 졸업식 날 하루 전, 하루종일 고양이 나비가 오기를 기다리다 낮잠에 빠졌다 깨어났다. 아랫목이 뜨끈해진 것을 보니 아빠는 오늘도 어김없이 장작을 지피신 모양이다. 여닫이 문을 힘주어 열자 차가운 바람이 순식간에 문턱을 넘는다. 뻥 뚫린 앞마당엔 소리없이 내린 눈이 쌓였다. 아침엔 보지 못했던 눈을 보니 한껏 들떠 장갑부터 찾아들었다. 해마다 눈이 오면 아빠랑 마당과 골목의 눈을 빗자루로 쓸고 다녔었다. 우선 아빠부터 불러댄다. 부지깽이로 아궁이 속을 뒤적이시던 아빠는 무슨 일이라도 났는지 부엌에서 급히 달려 나오신다. 부지깽이 끝에는 미처 꺼지지 못한 불씨가 살아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어인일인지 나비가 아빠뒤를 따라 걸어나온다. 세상에,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다. 불을 지필 때는 꼼짝도 하지 않고 아궁이 문지기 역할을 했던 나비다. 그런 나비가 아무 흔적도 없는 눈 위에 제 발자국을 먼저 찍는다. 어쩜 이리도 앙증 맞을까

눈 위에 찍힌 나비의 발자국이 늘어갈수록 나의 눈이 쫒는 속도도 빨라졌다. 나비의 흔적 위에 나의 흔적을 새겼다.
만질 수 없는 그녀의 손과 발의 촉감을 왠지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리저리 천방지축으로 날뛰던 그녀는 지쳤는지 다시 부뚜막 위로 올라섰다. 아빠와 골목의 눈까지 다 치우고 아궁이 앞으로 다시 돌아올 때까지 그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언 손을 남은 불씨에 녹이고, 은근한 열기에 부자연스럽던 몸동작도 여유를 찾아간다. 나비야~ 매번 불렀지만 번번히 듣는 척도 하지 않던 그녀가 반응한다. 고개를 들고 팔 다리를 쭉 펴 기지개를 켜더니 슬슬 부뚜막 아래로 내려선다. 그리고는 나의 곁으로 다가와 다리에 얼굴을 비빈다. 이게 무슨 일인지 어리둥절. 6년동안 그리도 바랬던 순간이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낯익은 낯설음이 손끝에서 느껴진다. 그녀가 비벼댄 부뚜막이 매끈하게 광이 나는만큼 그녀의 털은 먼지를 뒤집어 썼다. 씻지도 않는 것 같은데 그녀의 털은 늘 윤기가 흘렀다. 두어번 등을 쓰다듬으면 비단처럼 부드러운 털들이 한 방향으로 눕는다. 너무 코끝이 찡했다. 고맙다.
정말 이제이라도 마음을 알아줘서 고맙다는 말을 가슴 속
울음으로 뱉어냈다. 나비도 아는지 무릎 위로 폴짝 올라와 내려가지 않았다. 엄마가 저녁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나비를 품에 안았다. 행여 꿈일까봐 손등을 살짝 꼬집어도 봤다. 아프다. 드디어 내 사랑을 나비가 받아줬다. 금방 끝낼 줄 알았던 짝사랑이었다. 그런데 6년이 걸렸다. 어렵게 얻은 그녀의 마음을 절대로 놓지 않겠다고 나비의 등에 얼굴을 기대고는 다짐했다.

신나는 초등학교 졸업식. 들뜬 아이들의 얼굴엔 기쁨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다른 중학교로 간 친구끼리는 언제 다시 보냐며 울기까지 했다. 여기저기 사진 찍느라 바빴다. 제각기 한아름 꽃다발을 들고 예쁘게 웃고 있는 친구들. 내 손에도 후리지아 꽃다발이 쥐어있었다. 들에 꽃만 보다가 처음으로 후리지아란 꽃을 알았고 보았고 느꼈다. 향이 너무 좋았다. 어제 저녁 나비 행동에 행복한 꿈도 꾸었었고,
짠내가 소금 못지 않은 엄마가 후리지아 꽃다발을 사주셨다는 것에도 놀랐다. 국회의원이 누군진 모르지만 국회의원상이라며 영문사전도 상품으로 받았다. 운수 좋은 날이 따로 있을까. 계속되는 행복한 일들에 얼굴 근육이 펴질 새가 없었다. 이 모든 게 나비로 인해 생긴 일들인 것만 같았다. 행복했다. 엄마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왜이리 긴지 모르겠다. 얼른 이 소식을 그녀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나비야~나비야~이리 달려오너라. 신이 난 나는 노래를 불러대며 대문을 들어섰다. 군데군데 쌓인 눈을 빼고는 바닥은 거의 녹아버렸다. 질퍽해진 길 위로 발자국이 새겨진다. 나비가 보고 싶다. 아직 집에 오진 않은 모양이다. 이제 해가 지붕 꼭대기에 올라섰으니 금불을 지피려면 좀 기다려야한다. 잠시 방으로 들어가 언 몸을 녹인다. 소담스런 샛노란 후리지아 꽃향기가 좁은 방안을 가득 채운다. 스르륵 기울어지는 고개, 잠깐 졸았나보다. 밖이 소란스럽다. 남자들의 고함소리가 방문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다. 마루에 나서려니 옆집과의 담벼락 앞에 아빠가 서 계신다. 옆집은 일본식의 집 구조를 가지고 있고, 주인 남자는 어쩌다 한 번 집에 온다. 그 사람과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바짝 다가서려니 아궁이 앞에 있던 엄마가 가지 말라며 붙잡는다. 어디가셨나 했더니 일 다녀오신 아빠를 대신해 불을 지피고 계셨다. 나무타는 냄새가 굴뚝으로 퍼져나간다. 씩씩거리시며 부엌으로 들어오시는 아빠에게 엄마는 이미 죽은 걸 어떻게 하냐 하신다. 이미 죽다니? 깜짝 놀란 나는 물음표를 띄운 얼굴로 엄마를 마주본다. 그제서야 그녀가 오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빠가 부엌문을 여는 소리만 들리면 잽싸게 찾아들던 그녀였다. 장작이 붉게 열을 올리는데도 그녀를 볼 수 없었다. 눈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슬픔을 눈은 먼저 깨달았다. 엄마는 별일 아닌듯 나비가 쥐약을 먹고 죽었다 말한다. 장작을 뒤적이던 부지깽이 끝에 불이붙자 옆 빈 아궁이에 콕콕 찍어가며 죽어서 담벼락 밑에 묻어 줬다고 아빠까지 거든다. 숨이 턱 막혔다. 붉어진 눈이 초점을 잃고 탁해졌다. 물 속에 빠진 것처럼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눈을 질끈 감았다. 머릿속에 온통 암흑만이 존재했다. 나비의 모습을 떠올리려 했지만 그럴수록 나비는 멀어져갔다. 입새로 울음이 터져나왔다. 이미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떼를 쓸 수도 없었다. 쥐약 놓은 건 옆집 남자였다. 아빠는 나를 위해 그 남자와 싸우셨던 것이다. 조용히 일어나 뒤꼍으로 향했다. 담벼락 한 구석에 흙이 묻은 눈이 쌓인 곳이 있다. 이곳에 나비가 누워있다. 먹을 것이라면 부족하지 않게 주었다 생각했는데 뭐가 부족해서 쥐약까지 먹어야 했는지 바보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어디까지나 인간의 생각인 것을. 내 집처럼 드나들었다 해도 묶어 놓고 키운 것이 아니니 들고양이와 다름 없었다. 들고양이에겐 향기로운 먹이였겠지, 그 향기를 무시할 수 없었겠지. 더이상 따뜻한 부뚜막을 오를 수 없는 나비는 그렇게 영원의 집을 얻었다. 뚝뚝 떨어지는 뜨거운 눈물은 쌓인 눈을 녹였다. 그 눈물은
땅에 스며 그녀에게 닿을 것이다. 왠지 운수가 좋던 날이였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안았던 나비는 혹시 알고 있었을까? 한 번 정을 주면 떼는 것이 이토록 아픈 날로 되돌아 온다는 것을. 그래서 다가오지 않았던 것일까. 그랬다면 끝까지 오지도 말지. 그냥 짝사랑이나 실컷 하게 두지. 부엌 안에서 엄마의 고함소리가 들린다. 죽은 놈이 뭘 아냐고. 추우니 그만 들어가라고. 그래, 엄마 말이 맞다. 죽었는데 내 말이 들릴리 없다. 발길을 돌렸다.

앉은뱅이 책상에 앉아 졸업식에서 받은 후리지아 꽃을 바라본다. 그윽한 향기는 방 이곳저곳에 스며들었다. 제일 활짝 핀 꽃송이를 찾아 들고 밖을 나선다. 밖은 달빛으로 환하다. 터벅터벅 걷던 길 끝에 눈봉분이 있다. 툭- 봉분 위로 후리지아 꽃을 던졌다. 그리고 주저 앉아버렸다. 한심하게 바라보던 돌담 위의 들고양이 주제에. 복수라도 하려는 듯 한심하게 무덤을 바라본다. 금새 글썽거리는 눈 속에 눈이 내린다. 내일 아침이면 새하얗게 쌓이겠지. 그리고 더이상 나비의 발자국은 찾을 수 없겠지. 볼 위로 떨어지는 눈송이들은 금새 녹아 눈물이 되어 버렸다.
샛노란 후리지아 꽃 위에도 눈이 쌓인다. 솔솔~
눈꽃송이에서 은은하게 후리지아 향기가 난다. 따뜻한 바람이 분다.
꽃향기 파고드는 따스한 봄날처럼.

유병화 2021-01-21 19:11	오랜 기다림의 사랑이 눈물겹네요. 작가님! 살아가는 인생이라는 것이 무엇을 때어놓고 살 수는 없듯이 모두 어울리다가 가슴에서 아련히 추억이 되는 일인가 봅니다. 좋은 수필 한 점 접하는 기쁨으로 마음을 두고 갑니다. 늘 옥필 이루시고 또 찾아뵙겠습니다.

꽃눈 뜨던 날

잊지 말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