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한정서
ㆍ작성일	2022-09-26 17:47

ㆍIP: 182.xxx.9

엄마, 아버지의 재산

제목 : 엄마, 아버지의 재산

우리 엄마, 아버지는 6남매의 부모다.
자식들을 참 잘 키우신 분들이기도 하다.
우리 형제들은 아주 잘 살지는 않지만 자신들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가족들 건사하며 형제들과도 조화롭게 잘 지내는 우애 깊은 자식들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13살 때 돌아가셨다.
그런 아버지께서는 지독한 술꾼이셨다.
평상시 말수도 적으셨고 자상하게 자식들 챙기셨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무언가 불만이 많은 모습으로
무슨 하실 말씀은 그리 많으셨는지 콩알만 한 어린 자식들 중 그래도 조금 큰 자식이라고 맏이인 나를 앞에 앉히고선 미주알고주알 무슨 말씀(내 귀에는 알아듣지 못할 잔소리)들을 몇 번씩 하셨던 기억이 난다,

무릎 꿇고 아버지 앞에 앉아 있을 때면 오금이 저리고 졸음도 쏟아지고 쥐가 나는 것 같아도 꾸벅거릴 수도 다리를 펼 수도 없었다. 술 마신 아버지의 불벼락 같은 꾸중이 겁나서였다. 그 당시에는 아버지가 술을 왜 고주망태가 되도록 마시는 날이 잦는지 알지도 못했을 뿐 더러 궁금하지도 않았었다. 다만 집에 오시면 화를 먼저 내고 엄마랑 다투시는 모습이 두렵고 싫었을 뿐이다. 더군다나 엄마도 지지 않고 아버지에게 대들고 욕하면서 싸우면 그 여파는 고스란히 엄마 몫이 되고 한 번씩 눈이 퉁퉁 부어 있고 멍 자국이 보이면 그 때는 엄마의 지혜롭지 못한 대처 능력을 의심하기 보다는 그저 약한 엄마에게 손찌검을 하고 살림을 부수던 아버지가 밉고 싫어서 차라리 바다에 나가시는 날이 더 좋았었다.

그렇게 원망만 했던 아버지가 바다에 선원들과 배타고 고기잡이를 가셨던 그날은 11월 중순 가을을 넘긴 겨울 초입이라 쌩쌩 바람 불던 쌀쌀했던 날씨였다. 아버지가 집에 계시지 않아 그저 좋기만 했던 늦은 밤 동네 사람들이 와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잠결에 들렸다. “야야, 느그 아부지가 죽었단다.” “어쩌꺼나, 저 어린것들을...” 하는 소리도 들리고, 뱃속에 아기를 가진 엄마를 염려도 하는 것 같고...

그렇게 서로 다투기만 하더니만 아버지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늦은 밤 신발도 못 찾아 신은 엄마는 7개월째 만삭의 몸이 무겁지도 않은지 울면서 정신없이 뛰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워낙 아버지를 싫어했던 나는 ‘설마 우리 아부지가 돌아 가셨을라고’ 하면서도 혹시나 정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철딱서니 없이 종종거리며 엄마 뒤꽁무니를 따라갔었다. 선창가에서 처음 대한 아버지의 모습은 잠자는 사람 같았다. 팬티만 입은 채 잠들어 있는 사람을 다른 사람이 들춰 업고 오는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그 당시에는 그랬다. 슬프지도 않았고 눈물도 흐르지 않았고 아무런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 43살의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남기지 않으신 채 우리 곁을 떠나가셨고, 엄마는 36살 지금 생각하면 한참 곱고 예쁠 나이었던 것을 내 기억 속 엄마는 그냥 아줌마였다. 그때부터 우리 엄마와 나의 고생길의 서막이 되었던 것이다.

그토록 싫어했던 아버지가 엄마에게 물려준 재산이라고는 시골에 집 한 채와 자식들 다섯에 뱃속 유복자 하나 달랑 남기고 떠나시자 엄마는 그날로 ‘청상과부’가 되었고 그동안 아버지가 하셨던 가장의 자리까지 꿰차고 토끼 같은 어린 자식들 먹이고 입히고 키웠던 일들은 작은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성장하면서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더구나 엄마는 7개월 아기를 배속에 담은 배불뚝이 엄마였고 산모라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고스란히 가장의 짐을 짊어지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 엄마의 고생은 시작되고 얼굴에 화장도 못하고 주근깨투성이 얼굴로 생선 장사를 하시면서 살았다. 낙이 있으셨을까?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진퇴양난의 삶이었을 거라는 생각을 엄마 나이만큼 살아서야 어렴풋이 깨닫게 되고 적지도 않은 자식들 챙기랴! 먹이랴! 입히랴! 우리 엄마도 참 힘들었겠다.

우리 가족은 그렇게 아버지의 자리가 비자 엄마는 가장의 역할을, 나는 동생들의 엄마 역할을 하면서 가난을 달고 살았다. 그리고 유복자였던 막내 남동생은 학교 다닐 때 아버지 없다고 놀림을 받았다는 것도, 여동생들은 바다에서 제를 올리고 버린 과일들이 뭍으로 떠밀려 오면 그 과일을 주워다 먹었다는 말을 반평생을 살고 난 후에야 들으니
‘나도 힘들었지만 내 동생들도 정말 어렵고 힘들게 살았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 우리 엄마, 아버지가 우리를 오래도록 지켜 주시지는 않으셨다. 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우리 아버지의 부재는 자식들에게 생활력을 재산으로, 우리 엄마의 무던한 성격은 끈기와 인내력을 재산으로 남기신 것 같다.

그리고 더 큰 재산이 된다면 그것은 엄마, 아버지가 함께 할 수 없는 저 세상으로 가셨어도 우리들은 여전히 형제간에 우애가 있다. 엄마가 생전에도 늘 긍지를 가지셨던 자식들의 우애는 두 분이 계시지 않은 지금 더 끈끈하고 서로를 챙기는 애틋함이 있다. 아버지, 엄마가 만든 재산인 우리 형제들은 어느새 어른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들을 충실히 하는 중이다. 우리 집안의 재산이 된 셈이다. 나는 지금은 당당하게 말 할 수 있다. 우리 아버지, 엄마가 ‘우리 엄마, 아버지여서 감사하다’고...

엄마, 아버지 자식들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것 하늘에서 보고 계시죠?
그토록 미워했던 엄마, 아버지 두 분의 깊은 속 헤아리지 못한 철 없던 딸이 이제는 두 분께 전합니다.
'정말 사랑합니다.' 라고....

이세복 2022-12-10 18:08	곱게 집필하신 글 감사드립니다 아버지의 부재로 어머니께서 힘겨웠을 것에 가슴 아픕니다 모두 생활력이 강하고 행복하게 오손도손 잘 지내고 계시니 기쁩니다 앞으로 가족 모두에 건강과 행복이 늘 함께하시길 기도드립니다.

배정숙 2023-05-11 12:46	존경하는 한정서 작가님! 이 글을 올리시기까지 따스한 마음 뭉클한 가슴이 먹먹하셨을 작가님 읽는 내내 저 또한 가슴 뭉클하여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엄마 아버지의 재산 형제분들 굳건하고 우애 있어서 잘 사시는 모습에 저 하늘에서 웃으시며 응원하시겠지요 작가님 응원합니다 가족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두 손 모아 봅니다.

최하정 2024-01-02 20:49	안녕하십니까 한정서 작가님 반갑습니다 12월에 등단하여 작가서제에 머물게되어 인사차 작가님의 멋진글에 들려 인사드립니다 자주 뵈러 들어오겠습니다 좋은글 많이 집필하시고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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