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홍성기
ㆍ작성일	2024-03-29 12:51

ㆍIP: 180.xxx.252

불쌍한 내 동생!

홍 성 기

오늘은 문득 수년 전 하늘나라에 간 바로 내 아래 동생 생각이 떠올라 울컥하게 한다. 한없이 눈물이 난다.

어릴 적 서로 키 재기 하며 문지방에 금 긋고 매일 매일 키재기 한 너, 그런데 어느날 키 재기 하니 나보다 훌쩍 더 커 버렸다지. 그다음부터 우리는 키재기를 안 했다. 어느 때부터인가 동생이 바둑을 두었다. 나도 바둑이 두고 싶어 동생에게 같이 바둑을 두자고 제안했고 이때부터 나와 동생은 바둑을 재미있게 두었다. 그런데 어느새 동생은 바둑 실력이 늘어 둘 때마다 내가졌다. 나는 속이 상해 죄 없는 동생을 몰아세웠다.
“나 몰래 속여서 네가 이긴 거야”
그리고 홧김에 동생의 뺨을 후려쳤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뒤 더 이상 바둑은 두지 않았다. 이제 내가 동생을 이길 수 있는 건 동생보다 먼저 배운 태권도다. 그래서 우리는 열심히 태권도했다. 동네 뒷산에 가서 소나무를 빽 삼아 발로 찼다. 어느새 동생은 나보다 발도 높이 올라갔다. 화가 나서 동생을 마구 공격하여 괴롭혔다. 그 후로 동생과 나는 자주 싸웠으며 동생은 나를 나는 동생의 얼굴을 할퀴기 시작했다. 동생의 얼굴엔 내가 할퀸 자국이, 내 얼굴에는 동생이 할퀸 자국으로 세계 지도를 그려 놓았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서로 정이 들고 사랑하고 있었다.

어느새 우리는 훌쩍 컸다. 그런데 동생은 공부를 싫어하고 놀러만 다녔으며 나는 동생을 이기기 위해 공부에만 열중했다. 물론 내가 동생을 이길 수 있는 것은 공부 외에 다른 것은 없었으며 농사일은 죽기보다 싫었기 때문이다.
이 당시 우리 집은 동네에서 속 부자라고 불릴 정도로 먹고 사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었다. 명절 때도 다른 집보다 이것저것 해서 맛있게 상차림을 하였다. 그런데 잘 나가던 우리 집에 불행이 찾아왔다. 경기도에서 지방공무원으로 일하시던 작은 아버지가 시골로 내려와 사업을 시작했는데 사업의 계속된 실패로 점점 가세가 기울었고 빚쟁이들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 와 괴롭혔다.
괴로우신 아버지는 노름판에 손을 대셨다. 할아버지와 나는 시골 사랑방에서 노름에 빠진 아버지를 작대기 들고 찾아갔다.
“이놈아, 날 죽이고 해라. 어서 나오지 못해!”
할아버지는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애절하게 하소연하셨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어린 마음에 ‘난 커서 절대로 노름은 하지 말아야지’ 다짐에 다짐했다.
어느 해 가을 착하게 일밖에 모르고 살아오신 할아버지는 지붕에 새로 이엉을 얹다가 떨어져 허리를 다쳐 그만 눕고 말았다. 여러 가지로 치료를 받아 봤지만, 연세가 많아 잘 회복되지 않고 누워서 고생만 하시다가 어느 날 새벽 우리 가족 모두가 보는 앞에서 북망산천으로 떠나셨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쓴맛을 눈으로 보았다.

할아버지가 떠나시자, 가세가 더욱 기울어 중학교 3학년 땐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려고 했지만, 농사일이 싫은 나에겐 공부밖에 달리할 것이 없었다. 어렵게 익산에 있는 고등학교를 진학한 나는 그때부터 담임 선생님과 상담사 선생님께 힘든 가정 사정을 알리게 되었고, 1년 후배들 가운데 말썽꾸러기들을 맡아가며 가정교사 생활을 시작하였다. 가정교사로 입주해 작은 용돈을 받으며 유학 생활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후배는 불량 써클에 휘말려 퇴학을 당하고, 또 다른 후배는 성적도 오르고 잘 지내다가 어느 날 담배를 부모 몰래 피우다 들켜 그 집을 그만두게 되었다. 상담 선생님은 내가 나오면 또 다른 후배를 붙여 주어 다시 가정교사로 들어가기를 반복하며 고2, 고3 시기를 힘들게 보냈다. 공부를 싫어한 동생은 작은 소도시(전북 정읍시 신태인)에 있는 학교에 다니며 집에서 농사일을 도우며 지냈는데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도박하고 술도 마셨다.

어느새 삼 년의 세월이 흐르고, 나는 삼 년 동안 가정교사 생활을 하며 어렵사리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나 첫 번째 대학입시에서 낙방하고 서울로 올라와 큰집에 얹혀살며 재수했다. 그리고 동생은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서울에서 봉제 공장도 다니고 자동차 정비 기술도 배운다며 나름 노력을 했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다시 시골로 내려가 고향 친구들과 어울려 도박과 술로 세월을 보냈다. 어쩌다 고향집에 가면 어머니가 깊은 한숨을 쉬셨다. 동생이 장롱에 넣어 둔 돈을 훔쳐다 도박으로 다 날렸다는 가슴 아픈 사연이다. 도저히 동생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정말 밉기도 하고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때 아버지께서 공사판에 나가시며 번 돈으로 나는 서울 종로에 있는 학원에 다니며 부족한 과목인 물리와 화학을 열심히 공부했으며 어떤 날은 과로해서 코피를 많이 흘렸다. 세수를 하면 대야에 코피가 나와 빨갛게 되었는데 코피가 멈출 때까지 그대로 있으면 조금 있다 오히려 머리가 맑아졌다.

동생은 시골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해병대에 자진 지원했고, 입대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 있었다. 이때 나는 부족했던 과목에 자신이 붙었고 대학 진학 준비가 잘 마무리되어 꿈에 부풀어 갈 즈음 갑작스럽게 동생이 철로에 누워 자다 기차에 치여 죽었다는 비보가 전해졌다. 나는 숨이 멎을 뻔했다. 벽에다 머리를 얼마나 박아댔는지 모른다. 동생과 함께한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더욱 나를 괴롭혔다.
다시 전화가 왔다. 다행히 죽지는 않고 살아 있다는 것이다. 난 뛸 듯이 기뻤다. 죽은 동생이 살아났으니 더 이상 기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오른팔이 완전히 잘리고 뇌를 다쳐서 수술 중이라고 한다. 가슴이 답답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숨이 막혔다. 그래도 살아 있다니 그걸로 다행이었다.

우리 고향은 바로 동네 앞으로 호남선 철로가 지나고 있어 하루에도 몇 번씩 기차가 지나간다. 동생은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 술에 취한 체 철로 위에 누웠다가 잠이 들어 변을 당했다고 한다. 동생은 뇌를 크게 다쳐 수술받았고, 오른팔이 완전히 잘려 나가는 큰 사고를 당했다. 그리고 철로 위에서 난 사고는 신고하면 오히려 벌금을 물어야 해서 신고도 못하고 많은 수술비를 부담하며 의사들의 도움을 받아 기적적으로 동생이 살아난 것이다. 이 사건으로 대학 진학의 꿈은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었고, 우리 집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졸지에 우리 집은 빚더미에다 뇌가 상하고 팔이 없는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지체장애인을 둔 가정이 되고 말았다. 이후부터 나는 너무 괴롭고 마음이 아파 공부도 안 되고 오른팔이 없는 동생 흉내를 내보며 어떻게 하면 동생이 사회에 잘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 오로지 그것만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 당시는 국가나 사회가 장애인에 대한 관심도 별로 없고 장애인들은 남모르는 슬픔을 스스로가 지고 가야만 했다. 나는 우선 서대문에 있는 의수를 파는 가게에 찾아가 동생에게 의수를 맞추어 주었다. 그리고 좋은 신앙 서적들을 구입해서 갖다주고 열심히 읽고 새로운 삶의 의지를 가져보라고 틈만 나면 권하였다. 나는 믿음이 없었지만 교회에도 출석시켜 보고 유명한 기도원에도 데리고 가서 하룻밤을 지내며 정신이 온전해 지길 바라며 간절히 기도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동생은 꿈속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이상과 현실을 오가며 살았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고향에 갔다가 집에 오는데 동생이 내 가방 속에 보따리 하나를 넣어 놓았다.
“형, 내가 가방에 돈 넣어 놨어, 필요할 때 꺼내서 써”
“아니 네가 뭔 돈이 있어서”
가방을 열어보니 가짜 돈다발이 가득 들어 있었다. 기가 막혔다. 대통령 딸이 자기 애인이라 말하고 나를 교육부 장관으로 임명하기도 하였다. 때로는 제정신이 돌아왔다가 어느 때 갑자기 제정신이 아니다.

가을이 깊어지는 어느 날이었다.
농사일로 바쁘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동생한테 폭행당해 어머니는 가슴이 멍들고 아버지는 눈이 탱탱 부은 체 서울 우리 집에 올라오셨다.
“더 이상 네 동생과 같이 못 살겠다.”
나는 그럴 때마다 어찌해야 좋을지 막막하기만 하였다. 그래도 부모님을 잘 설득해 드린 후 시골로 다시 내려보내 드렸다. 나에겐 여동생이 둘 있는데 훗날 여동생들도 수시로 오빠에게 폭행당해 지금까지도 그 후유증으로 머리가 아프고 가슴도 답답하다며 울먹이곤 하였다. 온 가족이 늘 공포 속에 사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가슴 아픈 사연이지만 빨리 저세상으로 가주기만을 고대하였다. 그런데도 내 말만은 크게 반발하지 않았으며 고분고분 잘 들어 준 동생이었다.

이러한 삶을 살다가 동생은 47살 되던 어느 봄날, 무단 가출하여 부산 시내를 배회하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하늘나라에 갔다. 세월이 어느덧 흘러 동생에 대한 기억을 잊은 지 오래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유명한 목사님 설교를 듣고 있는데 “가평에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만들어 장애인들이 사회에 잘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할 계획”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 대한 예화도 들려주었다. 그 얘기를 듣던 중 갑자기 수년 전 떠난 내 동생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때도 지금처럼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배려가 많고, 좋은 시설들이 있었더라면 내 동생이 그렇게 불행하게 살다가 죽지는 않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복받쳐 눈물이 펑펑 흘렀다. 그리고 동생에 대한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나 이 글을 적는다. ‘아, 그립고 보고 싶구나. 불쌍하게 살다 간 내 동생아!’

황영칠

2024-03-30 12:12

존경하는 홍성기 작가님
작가님의 지나온 날들이 놀랍기도 하고 눈물이 나서
몇 번을 쉬어가면서 읽었습니다.
시인님의 아픈 날들을 가감 없이 그대로
적으신 놀라운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어린 시절 어려우셨던 이야기는 듣기는 했지만
이렇게 속속들이 알게 된 것은 처음입니다.
어려운 과정에서도 공부를 포기하지
않으신 작가님의 의지에 찬사를 보냅니다

워낙 의지가 강하고 총명하신 덕분에 지방 고등학교를
다니시면서 가정교사도 하시고 어렵다는 서울교대를
합격하신 수재 중에 수재셨으니 놀랍습니다.

동생의 일과 어려웠던 일은 너무 나도 눈물이 나고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바르게 살고열심히살아오신 덕분에
화목한 가정에 자녀 잘 되시고 행복한 노후
생활을 하시는 모습에 다시 한 번 더
찬사를 보냅니다.

이제 여행과 글을 즐기시면서 건강만 잘
지키시면 되십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신앙 생활 하시면서
가끔 시와 수필로 황혼의 아름다운 인생을
색칠해 가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홍성기	존경햐는 황영칠 작가님 늘 잊지 않으시고 저의 서재를 찾아 주시고 부족한 글에 공감의 말씀으로 격려해 주심에 감사와 고마움을 전합니다 황작가님께서도 많은 힘든 과정을 멋지게 극복해 오신데 대해 존경 스럽습니다 저의 젊은 교사 시절은 가정보다도 장애인이 된 저의 동생을 생각하며 매우 우울하고 늘 부정적인 가운데 힘들게 보냈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도 제가 신앙을 갖게 되고 신앙의 힘으로 무난히 잘 극복 하게 됨을 감사합니다 선배 작가님 앞으로도 많이 이끌어 주시고 좋은 가르침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만사형통하시길 기원드립니다.	4/4 07:07

정연석

2024-03-30 23:07

존경하는 홍성기 작가님
글을 읽으면서 눈물이 납니다
작가님의 가족사를 들으며 마음이 아픕니다
대부분 비슷한 가족사가 있지만 너무 슬픈
사연이 마음을 아프게합니다
마음속에 남아있는 동생에 대한 생각에
마음 아파할 작가님을 떠올려 봅니다
영원히 잊을 수는 없지만 이제는 아픔을
내려 놓으시길 바랍니다
작가님 건강하시고 남은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홍성기	존경하는 정연석 작가님 귀한 걸음으로 저의 서재를 찾아와 주시고 공감으로 귀한 말씀 주심에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부끄럽지만 글로라도 위로 받고 싶어서 적어 보았답니다 정작가님께서 어여삐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환절기 감기가 유행입니다 늘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기원드립니다.	4/4 07:09

신안 증도 기행

아카시아, 꽃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