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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옥희 문학서재

ㆍ작성자	최옥희
ㆍ작성일	2004-05-27 03:17

ㆍIP:

동심으로 돌아가
벌써 서른 하고도 훌쩍 하나를 더 먹어 버렸다.
그러나 난 요즘도 가끔 만화를 뒤적이는 나를 바라본다.
어린시절 유난히도 만화를 좋아했었다.
남들은 진학문제로 벌써부터 수학과 영어에 열을 올리던 그때..고1
나에겐 왜 그런 현실이 가슴에 와 닿지 않았는지 지금도 잘 모를 일이지만 가방속엔 항상 그날 학교에서 읽을 만화책 한 권과 그 당시 여자애들에게 무척이나 인기있던(지금 읽어도 그건 너무 야한 내용이 많다)손바닥 만한 할리퀸 로맨스 소설들...어지간히 공부와는 담 쌓고 살았었다. 그래도 쉬는 시간에 짬을 내어 읽어내려가는 만화책은 그 당시 내 삶의 활력소였고 내일을 위한 재충전의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읽다가 조금 시들해지면 이젠 만화책에 나오는 그림들을 하나하나 스케치북에 옮겨 배껴 그리곤 했었다. 순수 창작은 자신없었으면서도 너무 오래 만화책에 빠져살아서 그런지 그 모습 그대로 배끼는것은 곧잘 해냈다.
한번은 아주 엉뚱한 짓을 한적도 있었다.
어머니께서 시집오며 장만해온 장농이 십년을 넘게 사용하다보니 이젠 너무 낡아 버려야 겠다며 아버지께서 중얼거리셨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머리속에 휙~ 스치고 지나가는 한가지..... 바로 실천에 옮겼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난 먼저 하고 싶은것이 있으면 저질러 보고 뒷감당을 하는 버릇이 있다.아주 못된 버릇이지!
목공소로 달려가 '그당시 아버지께서는 그것의 이름을 빼빠라고 하셨다'사포라는 이름이 따로 있는데도 으레히 빼빠주세요 해야지만 알아듣고 건네 주시는 아저씨 때문인지 바른 이름을 알면서도 난 갈때마다 빼빠라는 말을 썼다.그날도 여전히 그 빼빠를 샀다.
지금 기억으론 8자 장농이었다.
일단 눈에 보이는 문짝과 모서리 구석구석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건 락카를 칠해놓은듯 겉표면이 번들번들 거렸고 그것을 다 벗겨 낼 작정이었다.
몇시간이 걸려서야 겨우 문짝 두개가 반질반질 나무결을 드러냈다. 나머지는 동생몫으로 있는힘껏 밀으라는 주문과 함께 사포를 건네 주었고 4B연필을 들고 문짝에다 만화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물론 그것도 창작품은 아니었다.
지금도 기억이 난다. 한짝은 남자의 그림이었는데 긴 머리가 허리까지 내려오고 반 나의 멋진 몸매에 각진 얼굴엔 카리스마가 흐르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멋진 신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그림이었었다. 만화재목이 생각이 나면 좋으련만...그것까지는 기억의 저장소에 저장이 되지 않았나보다. 아무리 머리에 신경을 집중해도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그 만화책을 펴놓고는 1:300은 될듯한 비율로 문짝에 확대를 시켜 나갔다.
머리카락의 자연스럽게 흘러내림을 위해 지우고 지우기를 여러번 반복하면서 똑같이 그릴때까지는 거의 두어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아크릴 물감으로 바탕 그림을 완성했다.
내가 봐도 너무 똑같은 그림에 탄복을 했었다.
그러나 미쳐 생각지도 않았던 뒷감당..... 아버지의 불호령이었다.
무어라 정확히 화를 내셨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주 노발대발 하셔서 화내시던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아~
아직 버리지도 않은 장농인데 무슨 짓을 해 놓은거냐며 이제 저 장농은 도저히 못쓰겠다는 말씀은 기억이 난다. 그래도 흐뭇한 마음때문인지 그날은 아버지의 불호령도 들뜬 기분을 망쳐놓지는 못했었다.
그날 이후로 친구들과 동생친구들 사이에서는 한동안 우리집이 명물이 되었다.
내 친구들은 장농에 그림 그렸다는 말에 자기들은 죽었다 깨나도 그런짓은 할수 없을거라며 굉장한 구경거리인듯 학교가 마치기 무섭게 내집을 들락거렸고 동생들 또한 친구들에게 어떻게 소문을 내어 놨는지 '놀러왔어요~' 이러며 힐끗힐끗 장농을 보고 갔다.
물론 한마디씩 건네는 감탄은 빼놓을수 없었다.
한달이 넘게 그 장농은 숙녀들의 방에서 애지중지 받들여지며 그렇게 한공간을 살았다.
그렇게 있을수 있었던건 어머니의 힘이 많은 작용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버지와는 다른 열린 사고방식을 가지고 계신 어머니는 잘그렸다는 한마디와 함께 어차피 버릴 장농인데 예쁘게 꾸며놓은것도 좋지 하시면서 정작 본인이 시집올때 가져온 장농이면서도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시며 칭찬해주셨었다.
그후 그 장농은 반년정도를 우리와 동거동락하며 살다 아버지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마당에서 잘게 부셔져 나무토막으로 변하는 장농을 바라보며 그림이 그려져있는 문짝만은 남겨달라고 사정했었다. 지금생각해도 그 그림은 내 생애 최고의 걸작이었다.
여직 남겨져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렇게 사정해 광에다 남겨놓았던 그 그림이 그려져 있던 문짝은 그후 삼년정도를 그곳에서 조용히 묻혀 지내다 대학을 들어가면서 동아리 모임이다 학교 MT다 뭐다해서 쫒아다닐동안 우리집에서 조용히 자취를 감췄다.
아랫채를 수리하면서 광은 보일러실로 바꼈고 그속에 있던 잡다한 물건들은 쓸만한것을 빼놓고는 다 아버지의 손에 의해 버려졌다. 그림이 그려진 문짝도 자리만 차지할뿐 별 쓸모가 없다는 생각에 버리셨다고 하셨고 난 그걸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렇게 간직하고 싶었으면 좀더 신경을 썼었어야 하는데 알다시피 대학 새내기 생활은 말 그대로 별천지 였기에 작은 광에서 잠자는 그림까지 신경을 쓰지 못했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아까운 일이다.
한동안 그렇게 만화에서 멀어지는가 했는데 취직을 하면서 또 내 손에는 만화책이 들려지기 시작했다. 개인 병원에서 근무해서인지 환자가 뜨문 뜨문 올때는 지루하기도 하고 잠도 쫒을겸 원장님 몰래 만화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또 시작된 만화책과의 인연.......
그 이후로 아직까지 만화책은 내 생활의 일부다. 취미라고도 할 수 있겠다.
남의 눈에는 혹여 정신연령이 낮은것은 아니냐는 생각으로 비춰질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난 생각을 달리한다.
자기 맞춤식 생각이라 할지도 모르겠지만 난 만화책이야말로 어린시절 읽던 동화책이나 동요처럼 마음에 현실에도 썩지 않는 동심을 자리하게 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무조건 어려운 문법책과 경제학 서적을 읽고 대단한 문구를 사용해서 글을 써야만 참다운 어른이 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린시절 그 초심으로 가끔은 돌아가 그리움도 맛보고 가끔은 어리숙했던 그 시절을 회상해보면서 현실의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것이... 물론 나 스스로의 변명일수도 있지만 생각이다.
오늘 인터넷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얼마전 tv에서 방영해주던 만화영화의 그림을 보게 되었다. 바탕화면에다 하나 깔아뒀더니 초등학생이 쓰는 컴퓨터처럼 요란한 만화 바탕이 탄생했다. 며칠동안은 이렇게 놔둘까 생각중이다.
앞으로도 가끔은 시간이 허락되면 만화가계를 기웃거리게 되는 나를 발견하게 될것이다.
그러나 난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을 작정이다.
다만 그것보다는 만화를 읽으면서도, 동요를 들으면서도 어린시절을 회상할수 없을만큼 내마음이 더 삭막해질까봐 그것이 더 두려움이다.
마흔이 넘고 일흔이 넘고 하얀 백발에 뒷정수리에 은빛 비녀를 꼽게되더라도 마음에 작은 동심 하나 쯤은 간직하고 있었으면 하는것이 앞으로의 내 작은 바램이다.
오늘 난 아주 작은 동심으로 돌아가본다.

김 수미: ㅎㅎㅎㅎ 너무나 즐거운 마음으로 글을 보았습니다~~*^^*
저도 오빠들 과 자라서 재미있는 추억들이 많답니다.
최옥희 시인님의 어린 시절이 참으로 맑고 예쁘네요~
저는 국민학교때(초등학교를 그당시엔 국민학교라 했음)
소설을 쓰겠다고 "사랑의 울타리"란 소설을 쓰고는
반 친구와 돌려보면서 평을 들었거든요. 획기적인 일이지요.
늘 오빠들과 병정놀이하는 저 였는데 우연히 친구가 그림을 공부하면서
저도 자극을 받아서 한다는게 소설 과 시 쓰는거였어요.
지금도 그때 그 소설 보면서 얼마나 웃는지 몰라요.
지금보면 참으로 기막힐 일이지요....소설이라고 이긍....졸작이지만,
그래도 그때는 대단 한일 한것 처럼 얼마나 우쭐했던지..ㅎㅎㅎㅎ...
오늘은 최옥희 시인님 덕분에 피곤에 지친 하루가 동심으로 돌아가서
무척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셨네요. 고맙습니다~~
오늘은 더욱더 행복한 날 되세요~*^^* -[05/27-17:28]-

오세철: 최옥희 시인님도 그렇고, 김수미 시인님도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오늘 이 자리에 계시는군요.
저 또한 책 읽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작은 형님 친구분 책을 빌리려고 했더니
빌려주지는 않고 약을 올려서 몰래 가져다가 소 외양간에 넣어 두었다가
소가 밟아서 어머니가 책값 물어준 경험이 있습니다.
전 글이 써있는 종이라면 사족을 못쓸 정도로 좋아 했다고
작은 형님 만나면 가끔 듣습니다. -[05/27-21:14]-

윤영지 : 만화 좋아하는 사람이 선한 사람이레요
동심의 마음이 늘 함께 하기 때문이지요
그러고 보면 난 만화를 좋아하지 않았으니 ....선한 사람이 못되는군요
이상하리 만큼 전 만화보는 것을 싫어하고 어른들이 좋아하는
연속극을 즐겨들었으니 말입니다

최옥희 시인님 .....시가 아니고 수필을 보고나니
더 정겨워지는 느낌이에요 . 얼마나 좋아요
나이가 젊으니 좋은 글 쓸 기회도 많고 ..건필하세요
오늘밤도 행복한 밤이 되고 고운 꿈 꾸세요 .....빠빠이~~~~!! -[05/27-21:37]-

성은경: 같이 동심으로 돌아가 보았습니다
잔잔한 수필...글 잘 보았습니다
건필하십시요^^* -[05/27-22:17]-

조동목: 최옥히 시인님
나를 나의 그시절에 빠뜨려버리는군요
한참 그속에서 헤매다가
깨어보니,,,,반백이네요
ㅎㅎㅎㅎㅎㅎㅎ
감사합니다
늘 건필하시고 행복하세요 -[05/27-22:23]-

한승수: 최옥희 시인님.
아무리 만화를 좋아하셨어도 그렇지 장롱만화는 너무 과감한 기획 아닐까요?ㅎㅎㅎ
엉뚱한 데가 있는 분 같습니다.
그리고 옛날 아버지들은 왜 모두들 그렇게 엄하셨는지.....
만일 우리딸이 그랬다면 나는 이뻐서 껴안아줬을텐데...
재밌는 글 즐거웠습니다. -[05/27-23:15]-

전영애: 수줍은 듯한 얼굴
고운 마음씨
옥희님의 그 모습이 떠오르는 밤 입니다
어릴적 동심~그세계가 그리울 따름입니다
좋은 글 제마음에 담고 갑니다...고운 밤 되세요 -[05/27-23:19]-

최옥희: 김수미시인님..국민학교때 소설을 쓰셨다니 정말 대단하세요.전 일기 잘쓴다는 선생님 칭찬에 마냥 일기만 줄기차게 썼던 기억이 있어요 ㅎㅎㅎ.그리고 저도 대단한 말광량이 였답니다. 학교마치면 긴 막대기를 들고 벼베고 난 꾸불꾸불한 논에서 남자애들과 야구놀이를 하곤 했거든요 ㅎㅎㅎ.항상 고운 마음 감사합니다~~~*^^*

오세철시인님..그러게 하필이면 왜 외양간이었어요 ㅎㅎㅎ.전 만화책을 못읽게 하는 엄마때문에 집뒤 배나무 위에다 몰래 숨겨뒀었는데 그날밤 비가 오는바람에 홀딱 젖었던 기억이 있어요 ㅎㅎ.오늘 또 비가 오네요.행복한 하루 되세요~~~*^^*

윤영지 시인님....만화를 좋아하지 않는다고해서 선하지 않는건 절대로 아니에요.만화가 되었던 그 무엇이 되었던 어린시절 그 행복하고 선하고 착했던 그리고 꾸밈이 없었던 시절을 회상할수 있다는것만으로도 마음에 그때 그 선함이 남아있다고 생각해요.그리고 윤영지 시인님은 제가 보장해요~~~~너무 선하시고 뵐때마다 소녀같으세요 ^^*.항상 그 고운마음 간직하세요~~~~~*^^*

성은경시인님...오랜만에 발걸음 하셨네요. 그런데 글이 너무 길어서 혹여 지루하시지는 않으셨죠? ㅎㅎㅎ.자주좀 오세요~~~.이글 쓰기전에 시인님의 서재에 잠시 들렀답니다. 조금 답답한 일이 있으신가봐요. 내일은 훌훌 털어버리시고 행복한 날들 가득하시길 바래드릴께요.*^^*

조동목 시인님....반백이라는 말은...에고 잘 모르겠당 .그거 혹시 새치보고 반백이라고 하는건 아니죠?ㅎㅎㅎ.나이와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내 마음이 늙지 않고 세파에 찌들지 않으려 열심히 살면 될꺼같아요. 좋은하루 보내세요~~*^^*

한승수 시인님....그래도 덕분에 아버지께 혼은 났지만 이렇게 좋은 추억거리가 남겨졌잖아요 ㅎㅎㅎㅎ.혹여 딸이 무슨 엉뚱한 짓으로 시인님을 서운하게 하더라도 이쁘게 봐주세요 ㅎㅎㅎㅎ.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영애 시인님......잘 주무셨어요?조금전에 시인님의 고운 사랑 느끼고 왔답니다.가슴에 사랑을 항상 담고 사시는 시인님이 전 더 부럽답니다.항상 그렇게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둔다는것이 쉽지가 않은 일이니까요. 항상 좋은날들만 가득하세요~~~건강하시구요*^^* -[05/28-15:12]-

김지숙: 최옥희 시인님!!
예전에 우리 숙모님께서 조그만한 셋방 집에서
만화 가게를 했거던요 그래서 제가 종종 가게를 보았 주면서
외상 장부에 명단을 쭉쭉 나열을 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비밀인데요 그때에 성인 잡지책
선테이 서울이라는 잡지책이 있어거던요 그 잡지책을
살짝 읽어 보는 그 재미 짭짭 했습니다...하하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연예인 소식은 빠르게 듣고 있습니다...하하
시인님 덕분에 옛 기억을 되살려 보고 갑니다
비가 오는 금요일이네요
편안한 금요일 저녁이 되십시요
-[05/28-17:46]-

고덕 :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제가 젊을 때 고지식한 면이 있었는데
그 바탕이 만화였다면 이해가 되시겠습니까? -[05/30-03:12]-

김락호: 최옥희 시인님 안녕하세요.
요즘 작품이 째끔 올라온다 했더니 수필 쓰시는군요 ㅎ
좋은 작품 많이 기대할께요. 늘~~건강하세요. -[05/30-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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