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천(歸天)하신 아버지와 막걸리
귀천(歸天)하신 아버지와 막걸리
글/홍대복
아버지 아버지께서 귀천(歸天)하실 때 연세보다 이제 이 자식 나이 셋이라는 숫자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아버지께서 귀천(歸天)하시기 얼마 전 일이었지요 예비군 훈련차 집에 잠시 들렀을 때 아버지께서는 실직으로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 그 어려움에 부닥쳤고 초라하게 움츠러든 초췌한 모습으로 반겨 맞으시던 가여운 당신 모습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무일푼에 허기진 배 움켜잡고 땔감조차 없어 추위에 떨며 그나마 땔감으로 가시 돋친 아카시아 거두어 도끼로 다듬으시다 온통 가시에 찔리고 찢겨 움켜쥐지도 못하시고 터지고 갈라져서 핏자국 선명하게 퉁퉁 부은 손 가만히 뇌리를 스쳐 지나갑니다 유난히도 추웠던 그해 겨울 거칠어진 입맛에 추위와 허기 달래기 위해 아버지께서는 제게 이렇게 말씀하시었죠 대복아! 막걸리 한 되 받아주고 가면 안 되겠니?
중독에 가깝도록 과도한 음주의 부산물로 흐트러진 당신 모습 그 모습이 너무도 밉고 보기 싫어 퉁명스럽게 쏘아붙이고 야멸차게 종종걸음 돌아서고 말았었지요
아버지 삼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 당신께선 얼마나 서글프고 또 섭섭해하셨을까 이제야 아버지의 그 마음 조금은 이해하고 알 것만 같습니다 나는 왜 추위에 떨며 허기에 지친 아버지께 따뜻하게 맘 녹일 그 막걸리 한 되 받아 드리지도 못하였을까
아버지 이 자식이 받아 드릴 수도 없게 된 그 막걸리에 덩그러니 혼 적셔 앙금으로 남겨 놓으시고 뭐가 그리 급하시다고 바람 따라 구름처럼 다시 올 수도 없는 머나먼 길 새처럼 훨훨 날아가셨습니까
아버지 앞산에 부엉이 소리 구슬픈 오월이 오면 짙은 아카시아 향 뒷산 가득 피어나듯 마치 당신의 체취처럼 집 주위 감싸듭니다 오늘따라 더욱 그립고 보고 싶은 당신 생각 간절하여 그렇게 좋아하시던 막걸리 받아 들고 아버지 뵈러 찾아왔네요
아버지 산소로 오르는 가파른 길에 하얀 찔레꽃 흐드러지게 피어 넓고도 높은 당신의 마음처럼 화사하게 웃음 지며 사랑으로 반겨 맞으시더이다
아버지 너무 많이 보고 싶고 그립습니다 불효한 못난 자식 많이 꾸짖어주십사 라고 무릎 꿇고 두 손 모아 막걸릿잔 올리고 뜨거운 눈물 첨잔하여 용서를 빌고 또 빕니다
2017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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