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생각해 봅니다.        소운/박목철

날은 저무는데 둥 둥 둥 북소리는 죽음을 채촉 하네, 저승 길에는 주막도 없다는데 오늘 밤은 어디서 묵어 갈까,

어떤 충신이 처형 직전에 지었다는 싯귀의 부분 입니다.

역적 으로 처형 받는 죄수에게 시 쓰라고 기회를 줬을 리 만무 하지만, 죽음을 앞두고도 삶에 연연하지 않는 선비의 꼿꼿한 모습이 사실 여부를 떠나 후세의 우리에겐 감동 스런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죽음 이란, 온 곳이 어딘지를 모르는 까닭에 갈 곳이 어딘지를 모르는 인간 에겐 원초적 불안과 공포를 주게 마련입니다.

죽음 앞에 초연한 사람을 보면 존경심이 절로 생깁니다. 국적이 어디 이든, 심지어는 적일 지라도 존경을 받습니다.

우리가 영웅 이라 존경 하는 모든 이들은 죽음 앞에 초연한자세를 보인 분 들이 대부분 입니다. 삶에 연연한 사람은 후세에 경멸을 받게 됩니다.

중반의 나이가 지나면 주변에서 세상을 떠나는 이들이 하나둘 생기게 마련입니다. 가족 일수도 친지 일수도 있습니다. 가까운 이웃의 사별은 커다란 충격으로 닥아 옵니다. 그 죽음에 자신을 비춰 보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린 시절 죽음을 대할 때와는 사뭇 다른 까닭은 자신도 죽음 앞에 예외일수가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일 겁니다.
가까운 분의 죽음을 보았습니다. 내가 모시던 직장 상사로 내 인생에 많은 영향을 주신 분 입니다.
그 분은 오십대 초반 무렵 에도 대장암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병문안 을 갔을 때 사모님께서 복도에서 울고 계셔서 우리는 아주 숙연한 마음으로 긴장되어 병실문을 열었습니다. 병문안의 경우 상태가 심각 하면 문병하는 사람도 난감한 법입니다.
뜻밖에 본인께서는 남에 말을 전하듯 아주 태연하게 병세를 우리 에게 설명 하셨습니다.
“야, 대장 한 30cm 짤랏 다는데, 밥 먹으면 똥 빨리 나오는 거 아니냐, 장이 짧아져서,”
우린 다함께 웃었고, 숙연하고 어색하던 분위기는 한 번에 가셨습니다. 그리고 그분 대단하신 분 이라는 인상이 깊게 새겨 졌습니다.
나 같으면 죽을까봐 엄청 겁 먹었을 거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 분 십 여년 세월을 우리와 더 함께 하시곤 돌아 가셨습니다. 췌장암으로, 돌아 가시기 전 몇 번을 찾아 뵈웠습니다. 직장도 고만두시고, 췌장암이 얼마나 경과가 좋지 않다는걸 아는 우리는 무거운 마음으로 생전에 그분을 한번이라도 더 보자는 착잡한 마음이었지요,
죽음 앞에 당당하던 예전 모습을 그렸습니다. 그분은 젊던 시절 내 맘속에 자리한 작은 영웅이었기 때문 입니다
사람이 그렇게 마를 수 있을 가, 웅크리고 계신 무릎은 정강이뼈가 앙상했습니다. 배에는 호수가 박혀 있었고 연결된 링겔 병에는 노랑 액체가 고여 있었습니다.
아 얼마 못 사시겠구나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는 그분을 보니 위로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상상 밖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조카딸이 미국에서 의사로 있다 귀국했는데 너무 비관하지 말라 했답니다. 삶에 대한 애착이 간절했습니다. 긍정적인 나의 답을 바라는 맘이 가슴 아프게 닥아 왔습니다.
담즙을 뽑아내는 호수가 막혀 세 번씩이나 수술해서 이젠 더 이상 할 수도 없다는데, 배에 호수와 링겔병을 매달고도 살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그 분이 예전의 그 분이라니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한 보름을 더 사시고 그 분은 돌아가셨습니다. 죽음 앞에 인간 이란 어떤 존재인지 의문을 남기신체, 한동안 그 충격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습니다. 죽음을 전혀 두려워 하지 않던 맘 속의 작은 영웅이 그렇게 허무 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가시다니, 내 끝은 어떤 모습일까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