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고향(故鄕) 여자친구 

그러니까 내가 광주에서 긴급 후송차에 실려 의식을 잃은 체 서울의 모 병원 병실 침대에 누워 2~3회의 장시간 수술 후 가까스로 일어나 앉지도 돌아눕지도 못한 상태다. 그 상태에 항생제며, 무통 주사며, 혈액공급주사까지 주렁주렁 꽂은 체 어린애 몸처럼 굵어진 오른팔을 감싸고 병원 침대에 누워 오른쪽 등 뒤마저 기차 화통처럼 커다란 구멍 난 상처다. 감각이 잔 돌멩이 바닥 위에 맨살로 누어 느끼는 통증을 견뎌야 한다. 급한 팔의 수술 때문에 정확히 92일 동안 병실에서 환자 침대째 밀고 다니며 대소변을 집사람의 구원으로 의지하며 바로 누워있으면 팔만 아픈 환자처럼 보이며 얼굴은 멀쩡한 상태로 치료 중일 때 일이다. 날마다 머나먼 고향에서 광주에서 혹은 서울에 지인들이 나의 중환 소식에 입소문을 듣고 병문안이 이어지는 사람들의 고마움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지마는 유독 잊히지 않은 고향 마을 여자 친구의 방문은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는 잊지 못할 이야기 중의 하나였다.  

어느 날 단정하게 올린 머리 스타일에 눈이 부리부리한 미모의 중년이 넘은 아줌마가 병실에 들어와 침대에 환자의 명찰을 두리번거린다. 그 여자분은 가깝게 찾아와 얼마나 고생이 많으시냐며 말끝을 흐리면서까지 자기를 모르겠냐며 반문을 한다. 그때 눈치 빠른 집사람은 살짝 저만치 앞자리 보호자 쪽으로 자리를 비켜 주는데 말이다. 분명 본 듯한 얼굴인 것은 같은데 아무리 기억하려 해도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고 정신은 멀쩡한데 기억이 나지를 않은 것이다. 여기서 잠시 어릴 적으로 돌아가자면 나는 목사골 나주에서도 봉황면 철천리 선동이라는 65세대 가 사는 큰 마을이 있고 그곳에서 500여m 정도 떨어진 4호가 산 밑에 자리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약관(弱冠)의 나이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광주에 무선전파사에 취직하여 기술을 연마하다 영산 포 읍의 전파사로 옮겨 기술을 습득하였다. 우리 면 소재지에 전기가 처음으로 들어오던 1969년 도에 고향 면 소재지에서 전기재료며 박스형식 Radio를 조립하여 파는 회사제품이 나오기 전의 일이다.

1970년도에 해병대를 자원입대하여 통신병에 근무하며 월남의 전쟁터에 파월도 되었지만 사소한 훈련사고로 고국으로 후송되어 72년 11월 전역을 하였다. 그리고 군대 가기 전과같이 고향에서 Radio며 자게 농 같은 진공관식 전축도 만들어 팔아 꾀나 뭇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병실 침대 옆에 선 그 부인은 한사코 만면에 웃음을 잃지 않으며 나 큰 마을 우대미 양창근이 집 앞에 살았다며 갑장인 자기를 그래도 모르겠냐는 것이다. 특 고압 감전 사고에 기억력까지 날아간 것일까? 생각나는 고향 갑장 여자 친구 들이래야 4~5명 그중의 한 사람인데 이름은 생각나지 않은 채 그냥 얼버무리며 이제 알겠다 하니 이름을 대보라고 채근한다. 끝내 30여 분을 함께 했지만 이름을 밝히지 못하니 먼발치서 지켜보던 집사람이 답답하여 자리 옆에 와서 평소에도 사람을 잘 못 알아본다며 거들어준다. 다음에 올 때까지 숙제라며 돌아간 미모에 여자 친구는 손수 담근 김치며 선물을 두고 몇 번을 돌아보며 쾌유를 빈다며 손을 흔들고 집사람이 대신하여 전송한다.

도저히 궁금해서 참다못한 나는 나보다 세 살 아래인 나의 여동생에게 전화로 확인하니 큰 마을에 감촌 댁 큰딸 *님이 아니냐는 것이다. 맞다. 그때야 확연 해지는 갑장 여자 친구인 것을, 알고 보니 그 여자 친구는 내가 군대 있을 때 어려운 시골생활을 뒤로하고 취직한다며 서울로 가 어쩌다 한 번씩 고향에 내려오면 한 번씩 내 가게를 들려주었다. 그때 집사람도 봤다는 것인데 기억에 둔감한 나는 이렇게 힘들어할 때 어떻게 알고 찾아와준 고마운 친구를 몰라봤다, 는 것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그 후로 강남에 산다는 그 여자 친구는 내 여동생과도 천주교를 함께 믿어 여러 차례 병원을 찾아왔다. 그때마다 손수 만든 음식을 싸 가져와 준 고마운 친구다. 가끔 카톡으로 자기네 친구들과 어울린 사진을 보내주고 안부를 전한다. 그 보답을 다 하지 못한 채 진갑(進甲)이 넘고 60대 중반의 나이에 이 몸은 한겨울에도 꽃은 시들었지만, 그 추위에도 생생한 잎을 간직한 장미꽃처럼 피어나는 그 친구의 모습이다. 꺼져가는 모닥불에 불소 시게 처 럼 잔잔하고 훈훈한 고향의 정을 담아주는 내 가슴속에 불을 집힌 고향의 친구였다.

20131220 저물어 가는 달 기(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