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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택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한영택
ㆍ작성일	2024-05-22 22:15

ㆍIP: 1.xxx.79

지리산 종주 (2편: 에너지 충전, 대피소는 쉼터)

지리산 종주 (2편: 에너지 충전, 대피소는 쉼터)

한영택

길 양옆으로 나지막한 대숲이 우거진 등산로를 따라 열심히 걸어간다. 아침 8시가 되어서 연하천대피소에 당도하니 먼저 와서 아침 식사를 하는 일행과 마주칠 수 있었다. 뒤따라 급하게 식사하고 있으려니 일행 중 일부는 벌써 식사를 끝내고 출발한다. 좀 늦게 출발하는 일행 몇 사람도 천천히 가겠으니 뒤따라오라고 하며 자리를 뜬다. 필자도 잠시 후 다시 길을 나서는데 연하천 길목엔 오랜 세월 동안 알몸을 드러낸 고사목이 지리산의 상처를 보여주는 듯하다.

10시경 총거리의 절반인 벽소령휴게소(17.9km)까지 왔다. 남은 거리는 총 16km(천왕봉까지 11.6km 중산리까지 5.4km)지만, 조금 쉬어야겠다고 들어서려는데 초면의 아가씨 2명이 “안녕하세요?” 가까이 다가오며 반갑게 인사한다. 곁에 와서는 곧바로 “저희 사진 좀 찍어 주세요.” 한다. “아 네”하고는 위치를 잘 잡아 찍어주었더니 상냥하게 “같이 한번 찍으실래요.” 하면서 필자와 멋진 포즈로 찍어 담았다. 어쩌면 멀고 힘든 산행에 있어 고독한 자신과 끈질긴 싸움에서 지치지 않도록 서로 응원해 주는 무언의 표현이지 않았을까?

다시 벽소령에서 빠른 걸음으로 줄 곳 이어진 형제봉을 지나 전망이 좋은 바위에 다다르자 여러 등산객이 사진 찍기에 분주하다. 뒤로는 형제봉, 아래로 온 산을 덮은 붉은 단풍, 북동쪽 멀리 구름이 걸쳐가는 천왕봉과 파란 하늘에 끝없이 부서지는 햇살을 바라보노라니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좋은 날씨 덕분에 멀리서 천왕봉을 감상하기엔 여기가 최고인 거 같다.

묵묵히 지루하게 이어진 능선을 따라 산길을 돌아가자 급한 오르막 108계단이 나온다. 한걸음 또 한걸음 방향이 같은 다른 등산객들이 쉬었다 올랐다 반복하며 힘들게 올라가고 있다. 필자는 별로 아랑곳하지 않고 한참을 위로 올라서 잠시 한숨을 몰아쉬고는 곧바로 또 걸음을 재촉한다. 걷고 또 걷고 한적한 산길이지만 중간중간 무리 지어 가는 등산객을 추월하며 일행을 쫓아가느라 바쁘다.

세석평전에 조금 못 미쳐 앞서갔던 일행 3명이 드디어 보인다. “아이고, 이제 따라잡았네요.” 이들도 조금은 지친 모양이다. 마라톤도 그렇지만, 장거리 산행도 자신만의 페이스를 지켜가야 완주할 수 있다. 무리한 에너지 소비는 자칫 낭패를 볼 수 있다. 상상해 보라 깊은 산중에 들어와 되돌아갈 수도 없는 곳에서 에너지 고갈로 더 이상 걸어가기 어렵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따뜻한 계절은 덜하겠지만, 추운 계절은 그야말로 위험천만이다. 그래서 페이스 조절을 잘해야 한다.

능선 길을 돌아 12시 30분경 세석대피소에 당도하니 많은 등산객이 잘 갖춰진 편의시설에 앉아 음식을 먹고 있다. 필자도 가져온 약밥과 찰떡으로 점심 요기를 했다. 간단하면서도 적당한 영양소와 탄수화물 섭취가 필요한 것이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짐을 가볍게 하고는 일행과 다시 떠날 채비를 한다. 여기서부터 천왕봉까지 5.1km 지만, 지금과는 사뭇 다른 힘든 구간이 남아 있음이다.

천왕봉으로 향해 고개를 넘다가 혼자 세석봉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니 세석평전과 대피소의 모습이 무척 평온하게 보인다. 세석평전은 해발 1,500m에 위치한 남한에서 가장 높은 평탄한 지형의 습지로 야생동물에 물을 제공하는 곳이라 하는데, 매년 6월이면 이곳의 철쭉이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갑자기 구름이 필자가 있는 세석봉 위로 휘감더니 어두워진 틈 사이로 햇살이 광선을 쏘아댄다.

다시 천왕봉을 향해 걷고 또 걸어가는데, 전방에 능선으로 안개구름이 멋진 암봉(巖峰)을 가렸다 보였다 반복하며 운치를 더한다. 얼마 남지 않은 거리라 천왕봉이 보일듯한데 보이지는 않고, 가는 길 곳곳에 고사목이 앙상한 몸통만 내놓은 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장터목대피소에 당도하자 역시 많은 등산객이 북적거린다. 여기가 갈림길이라서 그런가? 곧장 위로 올라가면 천왕봉, 우측 아래로 빠지면 중산리, 각각 갈 길이 다르니 그럴 만도 하겠다. 여기서 천왕봉까지 1.7km가 가장 힘든 구간이라 했던가? 잠시라도 에너지 충전이 필요한 시간이다.
<다음 3편 연속>

23.11.28

지리산 종주 (3편: 희열의 천왕봉, 종점 중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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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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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지리산 종주 (3편: 희열의 천왕봉, 종점 중산리)	4	한영택	2024-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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