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서석노
ㆍ작성일	2024-01-17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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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학년 겨울

1968년 6학년이 되니 3월 새 학기부터 시작된 방과 후 단체 과외로 일요일에도 학교에 가서 과외수업을 받으며 12월이 들어서면서 무척 긴장되고 바쁘다. 곧 중학교 입시시험을 치루야 하기 때문이다.
따뜻한 이불속에서 밤새 소죽 끓인 방바닥은 새벽이 되면 잠자기 좋을 만큼 온기가 있지만 아버지 기침 소리와 마당 쓰는 소리에 억지로 일어나 샘가에서 데운 물을 섞어 고양이 세수만 하고 급히 방으로 들어가려고 문고리를 잡으면 문고리에 손이 얼어붙었다.
우리 가족은 빠짐없이 모여 앉아 아침을 먹는데 할머니와 아버지가 따로 겸상하고
나머지 가족은 둥근 상에 둘러앉아 아침을 먹는다. 할머니나 아버지가 수저를 들면 다 같이 수저를 든다.
시래기 된장국에 밥 말아서 섞박지 김치 걸쳐 짧은 시간에 식사는 끝나지만 식사 도중
잡담하거나 반찬 투정하면 혼나기 때문에 식사 시간은 항상 조용히 수저 소리만 들린다.

아침밥 먹기 바쁘게 목도리, 장갑, 귀마개로 보온을 단단히 하고 어머니께서 싸주신 도시락을 책가방에 넣고 집을 나서면 10리길 학교를 걸어서 가야 한다.
봄철부터 가을까지는 춥지 않아 걸어 다닐 만하나 겨울철이면 어김없이 불어오는 서북풍 바람을 안고 가기 때문에 고역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얼굴에는 두건처럼 보자기를 뒤집어쓰거나 목에다 수건을 목도리 대용으로 감고 걸어가도 겨울바람은 피부가 따갑도록 차고 목이 따끔거리고 얇은 운동화에 양말 두 켤레나 껴 신어도 발은 시리고 무거운 책가방은 팔목이 시큰거린다.
가끔 털모자 쓴 아이는 부럽기도 하지만 나도 방한 장비가 있는데 장갑과 마스크는 낡은 스웨터를 풀어 어머니가 짜 주셨다.
마을 골목과 작은 고개를 지나 넓은 신작로를 나서면 서북풍 찬바람을 정면으로 안고 가기 때문에 키 큰 중학교 형들 등 뒤에 붙어서 찬바람을 피하거나 옆으로 가재걸음을 하며 작은 몸을 할퀴는 매서운 찬바람을 피해 앞으로 나아간다.
중간 지점에 묫자리 봉분 사이에 노란 잔디가 부드럽고 아침햇살이 비쳐 찬 바람을 피하고 푹신한 잔디에 기대어 잠깐 쉬어가면 그나마 잠시 추위가 누그러진다.
그렇게 대여섯 번을 쉬다 걷다 하면 학교에 도착한다.
눈이 오는 날은 발목 위 종아리까지 눈 속에 빠져 9시 버스가 있지만 버스를 타면 등교 시간이 늦기 때문에 푹푹 빠지는 눈을 밟고 가야 한다.
비포장도로 위 눈이 쌓여 질척거리고 바짓가랑이와 운동화가 눈에 젖으면 시린 발을 동동 굴리며 젖은 양말은 교실에서 말린다.
그래도 눈 오는 날은 마음이 설렌다. 연신 창밖에 눈이 가고 쉬는 시간은 눈싸움으로 신났고 눈을 뭉쳐서 먹기도 했다.

주번인 날은 30분은 먼저 나와야 했다. 2인 1조로 주번을 하는데 겨울 주번은 고역이다.
30분은 일찍 학교에 나와서 갈탄이나 우리 반에서 창고에서 난로용 나무를 가져와 불을 피우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5리터짜리 주전자를 들고 우물에 가서 물을 받아 낑낑거리며 들고 와 길러 난로 위에 얹어 놓는다.
교실의 땔감은 솔방울이나 장작을 많이 사용하는데 각자 집에서 땔감을 가져오고 부족하면 새끼와 마대를 가져와서 가까운 산에 가서 분단 별로 조를 짜서 삭정이, 솔방울, 그루터기를 채취해서 학교 맨 구석에 있는 우리 반 땔감 칸에 보관하여 사용하고 땔감이 부족하면 학년별이나 반별로 인근 산에 나무를 하러 가야 하는데 겨울 동안 두, 세 번은 땔감을 구하러 갔다.

오전 수업이 시작되고 6학년인 우리는 중학 입시 위주로 공부하고 12월은 모의고사 시험과 담임선생님 교대로 각반을 돌아가며 시험감독 하고 채점하고 심지어 성적이 부족하면 체벌하는 선생님도 있었다.
3교시 지나면 각자의 도시락을 난로 위에 포개 놓으면 수업 중 밥 타는 냄새가 나면 주번은 나와서 포개놓은 도시락을 아래위 교대로 바꾸어 놓는데 그때는 도시락통이 반찬통 따로 된 것이 없고 노란색 사각 양은 통에 밥 담고 귀퉁이에 반찬이 담겨 있다.
그러다 보니 김칫국물이 쏟아져 책도 버리고 가방 바닥도 김치 냄새가 날 때가 많아 어머니께 도시락을 바꿔 달라고 하고 싶지만 어림도 없을 것 같아 꾹 참았다. 어떤 아이는 유리병에 양철 뚜껑이 있는 반찬통을 가져와 많이 부러운 적도 있었다.
특히 난로 위로 얹어 놓은 도시락에서 김치찌개 냄새가 나면 점심시간이 더욱 기다려지며 입에서는 침이 고이고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기다리던 점심시간이 되면 각자 도시락을 가져가 난로 위의 주전자에 따뜻한 물을 도시락 뚜껑에 받아서 삼삼오오 둘러앉아 맛있게 점심을 먹는다.
한 반에서 서넛 되는 부잣집 아이들은 도시락 밑에 달걀부침을 깔고 반찬도 고기반찬이나 계란말이 장조림 등을 가져오면 슬며시 하나씩 얻어먹고는 해도 염치가 없어 자주 하지는 못했다.
학교에서 선정한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은 양호실 옆에서 큰 솥단지를 걸고 노랗게 익은 옥수수죽을 나누어 주었는데 호기심에 옥수수죽과 도시락과 바꾸어 먹기도 했으나 점심 후 조금 지나면 배가 빨리 고파진다.

정규 6교시를 마치고 나면 오후 4시다. 다시 3~4교시 방과 후 수업이다.
겨울철은 먼 길 아이들은 2교시만 수업하고 보냈는데 그런 아이들이 부러웠다.
오후 5시 지나면 밖은 깜깜해지고 과외를 마치고 교문을 나서면 어두운 밤길을 동네 아이들 서너 명이 어울려 집으로 간다.
밤인데도 추위는 아침보다는 나은데 하굣길은 바람을 등에 지고 가기 때문에 걸음도 빨라진다.
동네 입구에 들어서면 집마다 작은 방문에 호롱불이 비치고 저녁밥 짓고 소죽 끓이고 군불 땐 연기가 매캐하지만 따스하게 코끝을 스친다.
식구들은 벌써 저녁을 마치고 어머니가 아랫목에 묻어둔 놋그릇 밥공기와 오늘은 장날이라 동태찌개가 밥상에 올라왔다.
무와 대파를 숭숭 썰어 넣고 얼큰하게 끓여 내와 찌개 국물이 얼은 내 몸을 녹여 준다. 동태라고 한 토막뿐이지만 시원한 국물에 추위도 가시고 동태 살이 입에서 살살 녹는다.
저녁밥을 다 먹고 나면 호롱불 밑에서 학교에서 배운 공부를 잠깐 복습하고 나면 등하굣길 추위와 학교 공부로 종일 시달린 몸은 녹초가 되고 씻는 둥 마는 둥 꾸벅거리다가 이불속으로 파고든다.
군불 땐 방바닥은 절절 끓고 등짝은 뜨거운데 코는 시리다. 추운 날은 윗목에 놓은 물그릇이 꽁꽁 언 적도 있었다.
겨울바람은 나뭇가지와 문짝을 흔들고 굉음을 내며 밤새 문풍지를 울린다.

6학년 전체가 단체로 학교에서 방과 후 과외공부를 한 결과는 11월쯤 되면 윤곽이 드러나고 각자 진학학교를 고르느라 분주하고 부모님들의 얼굴에도 희비가 교차 된다.
극성 부모들은 학교 과외가 끝나면 면 소재지에 사는 가세가 넉넉한 아이들은 별도로 그룹과외를 했다고 한다. 담임선생 중 열성인 분이 7~8명을 모아 일요일과 평일은 밤늦게까지 과외를 시켰다.
시골 초등학교에서 도회지나 인근 명문 중학교 가려면 나름대로 상위석차에 있어야 한다. 우리 반에는 재수하는 한 학년 선배도 있었다. 그만큼 중학교 진학도 열성적이었고 명문 중학교 진학 학생들을 높이 평가했다.
한 반에 서, 너 명은 인근 명문중학교나 도회지 유명 중학교에 갈 수가 있었고 나의 꿈은 좋은 중, 고등학교를 나와서 한의사나 선생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필코 중학교는 지역에서는 명문중학교로 알려진 인근 소도시 중학교에 가고 싶어 담임선생님도 아버지께 말씀드렸으나 아버지는 내가 원하는 중학교 진학을 반대하셨다.
아버지 생각은 없는 집 장남에다 밑에 동생들이 줄줄이 있어 가정형편 상 힘들고 객지에서 하숙할 형편도 안 되니 어린 것이 자취도 못 한다고 끝까지 반대하시며 아버지 다른 속내는 면 소재지에 있는 중학교에 장학생으로 가는 것이었다.
명문중학교를 포기하고 면 소재지 중학교의 단 한 명 뽑는 장학생을 바라며 시험을 치렀지만 이미 낙심할 대로 낙심한 내가 시험을 제대로 못 본 탓인지 수석 입학은 하지 못하고 어린 꿈은 그렇게 스러졌다.
중학 시험을 치르고 나니 모든 것이 다 자유였다.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겨울 방학을 맞이했지만 어린 나이에도 쉽게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초등학교 6학년의 겨울은 날씨도 마음도 어린 나에게 힘들어했던 기억이다. 끝

황영칠 2024-01-17 21:46	존경하는 서석노 작가님 중학교 입학을 앞둔 어린 시절 당시에는 누구나 넉넉하지 못한 가정 형편에 작가 님은 그래도 유학하실 생각까지 하셨군요. 공부를 아주 잘 하신 우등생이셨나 봅니다 제가 자란 시골은 좋은 학교니 뭐니 선택의 여지도 없었습니다. 그해 겨울은 작가 님의 아름다운 추억이 있었군요 추억이 아름다운 작가 님의 조리 있게 쓰신 수필에 감동하면서 다음을 기약합니다, 좋은 작품 가슴에 안고 갑니다

장계숙 2024-01-18 12:17	오래전 기억을 꺼내보는 기쁨~ 그시절 풍경이 선명하게 그려집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려운 학교길...공부... 저도 버스로 40분 거리를 통학 했습니다.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여윈탓에 어린 남동생들 등교길 옷 챙기고 도시락에 아침밥상까지~ 중고등 시절은 늘 고달펐던 시간이었네요.ㅠㅠ 비슷한 추억을 공유한 세대라 글 읽는 즐거움이 가득 합니다. 주번...도 까마득히 잊었던 단어구요. 지난 시절의 풍경을 그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슬픈 기억 뿐이지만 언제나 그립고 그리운 날들입니다. 덕분에 생각지도 못한 추억여행하며 그시절 향기로운 여운 안고 갑니다.

서석노 2024-01-18 17:04	황영철, 장계숙 작가님 읽어 주시고 공감 해 주셔서 감사 합니다 누구 없이 가난한 어린 시절. 철없던 아이는 울며 보채며 우겼지만 내 뜻대로 하지 못했지요. 지금 돌이켜 보면 더 나은 학교에 보내지 못한 아버지 마음은 헤아리지 못한 철부지 였지요.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지금은 옆에 계시지도 않으신 분! 그립습니다

설날 고향 길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