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서석노
ㆍ작성일	2024-02-09 09:15

ㆍIP: 1.xxx.37

설날 고향 길

설날이 가까워지면 아련하게 떠오르는 추억의 고향 가는 길. 미혼 때는 고속버스 열차를 이용하여 고향의 명절과 차례를 모시는 것은 당연하며 열차나 버스 예매도 중요한 연중행사였다.
그러다가 결혼 후 처음으로 내 차를 마련하여 가족을 승용차에 태우고 명절마다 고향에
내려가 부모님과 모처럼 친구들도 만나 즐겁게 보내고 다음 명절을 기약하곤 했다.
대중교통이던 자가 운전이던 명절은 어린 시절부터 이어온 고향 명절 분위기와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는 기대로 힘든 줄 모르고 지나갔다.
그러나 어느 설날은 너무 힘들었고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또렷하다.
1994년 2월 9일 민족의 최대 명절 설 전날 나는 고향 길에 오를 준비하면서 밤새 내리는 눈에 걱정 되었으나 고향을 가는 기쁨에 눈은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고속도로 정체가 걱정되어 새벽에 출발하자 하니 아내가 아이들 깨는 시간에 가자고 하여 마지못해 늦은 출발이 되었다.
6살, 4살, 3살의 삼 남매, 아내와 같이 평소 휴일보다 일찍 조반을 마치고 미리 준비한 선물 보따리를 차에 싣고 부푼 마음으로 아침 9시에 고향 상주로 출발했다.
아내에게 명절이고 눈이 와서 5시간 정도는 소요될 것이라 말하니 아이들에게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맛있는 것도 사주고 시골 할머니 집 가면 강정, 가래떡, 식혜, 각종 전, 고기를 듬뿍 넣은 떡국도 있다며 긴 시간 힘들어도 잘 참으라고 아내가 미리 다짐을 주며 약속한다.
전날 아이들이 가는 길이나 시골 집에 가서 먹을 간식거리 귤과 과자와 음료도 준비하고 모친이 좋아하시는 카스테라와 팥빵, 모나카도 준비하였다.
시내를 빠져나가는데 교통 정체가 되었고 어련히 막히는 시내라 고속도로만 들어서면 정체가 어느 정도는 풀릴 것이라 기대하며 조심스레 운전하며 나아갔다.

경부 고속도로 입구까지 오는데 한 시간 반이 걸렸다. 아이들끼리 뒷좌석에서 도란거리며 이야기하며 그런대로 힘들지 않아도 예상보다 정체되고 눈은 점점 더 거세진다.
귀성 차량으로 꽉 들어찬 고속도로는 제설 차량도 진입이 어려운 실정이고 차들은 거북이처럼 천천히 나아갔다.
신갈분기점을 지나는데 막내 아이가 소변이 마렵다 보채 어차피 들일 휴게소라 생각하고 기흥 휴게소에 간신히 들어가 주차 공간이 없어 길 옆에 세우고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화장실로 갔다.
지나가는 차들이 불편한지 경적을 울려 대지만 더 멀리 갔다가는 아내가 찾기가 힘들 것 같아 손으로 인사를 하며 계속 기다리니 한참 만에 아내가 돌아온다.
다시 출발하여 고속도로로 진입하는데 거의 주차장 수준이다.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며 귀성 차량은 잿빛 하늘 아래 끝없는 차량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또 다른 진기한 풍경은 고속도로 주변 인근 주민들이 과자나 먹을거리를 준비하여 노상에서 장사하는 뻥튀기, 과자, 음료 심지어 술까지 좌판을 메고 다니며 판매했다.
우리 가족은 오면서 준비해온 간식거리를 야금야금 먹으며 정체의 지루함과 피곤함을 달래고 있었다.
안성 근방에 오니 오후 5시가 넘어 흐른 날씨에 시야는 어둡기 시작했고 앞에 사고가 났는지 아예 차들이 움직이지도 않는다.
큰 아이가 따끈한 국물을 먹고 싶다고 하여 휴게소에 들어가려니 들어갈 틈도 없고 차선을 바꿀 여건도 되지 않아 간신히 달래는 중에 길가에 많은 사람이 둥글게 모여 서 있다.
앞 차들 움직임이 없고 그대로 주차장 같은 고속도로가 되어 차에서 내려서 가까이 가보니 어묵을 팔고 있었는데 연탄 화덕에 큰 냄비를 올려놓고 꼬치 어묵을 끓여 국물과 함께 종이 그릇에 포장해 주고 있어 나도 줄을 서서 어묵을 사려고 기다렸다.
날씨가 추운 탓인지 어묵은 쉽게 끓여지지 않고 기다리는 시간이 점점 흘러갔고 내 차례가 되었는데 도로 쪽에서 경적이 울려 돌아보니 앞 차들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마음은 급하고 기다린 시간이 아까워 더 끓이지 말고 빨리 포장해 달라고 하여 급하게 어묵과 국물을 받아서 차로 뛰어왔다.
뒤 차의 눈총을 받으며 운전석에 올라 앞으로 운전해 나갔으나 몇 백 미터 가서 차는 다시 움직이지 못했다.
그때야 아내가 어묵 그릇을 펴놓고 아이들에게도 하나씩 나누어주고 나에게도 한 개 권한다.
어묵은 국물 맛인데 국물을 한 모금 마시니 국물이 미지근하여 어묵을 먹는데 겉은 따뜻한데 속은 익지도 않고 딱딱하고 차다.
기대했던 어묵 맛은 못 보고 아이스케이크 같은 짭짤한 맛에 허탈했고 아이들도 아내도 이구동성 “에게! 어묵이 익지도 않았어. 이걸 어떻게 먹어.” 원망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래 이 맛이 바로 어묵 샤부샤부라는 신상품이다. 차는 막히고 속이 답답할 때 시원하게 한 입 씩 깨물어봐. 졸음도 달아나고 얼마나 좋아!”
너스레를 떨면서 씁쓸하게 어묵을 그릇에 다시 넣었고 그나마 아이들이나 모친을 위해 준비한 간식거리가 아이들 짜증을 달래고 허기도 면하게 해 주었다.

천안을 지나오니 시야는 완전히 어두워지고 눈은 약해지다가 그쳤으나 차량 행렬은 여전히 가다 서다 반복하며 정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차가 정체 상태이니 도로인지 주차장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이고 남자들은 밖에 나와 담배를 피우거나 젊은 사람들은 눈밭을 걸어가며 차에 앉아 천천히 움직이는 일행과 대화를 나누며 걸어가는 사람도 있었다.
정체가 심해지자 아내는 그동안 잘도 참더니 화장실이 급해서 안 되겠다며 같이 가자고 하여 외투를 들고 아내를 데리고 도로변 으슥한 곳에서 외투로 가림막을 쳐서 임시 화장실을 만들어 급한 일을 해결했다.
차는 움직이지 않아 여유롭게 아내와 도로변 언덕에서 깜깜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잠시 시원하게 찬 공기를 들어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젊은 남녀가 다가오더니 볼일 볼 자리를 찾는 것 같았다.
남자는 주머니에서 손전등을 꺼내 주변을 비추어보다가 ‘앗’ 소리를 질러 바라보니 아주머니 다섯 명이 등을 돌리고 소변을 보는데 마치 하얀색 큰 호박이 몇 덩이 놓여있는 풍경에 아내와 나도 놀라 웃으며 눈을 돌렸다.
급한 아주머니들이 서로 모여 볼일을 보고 있었고 불빛에 놀라 소리를 빽 지르고 민망한 남자는 급히 손전등을 끄고 같이 온 여자를 데리고 황급히 사려졌다.
아내와 나는 쓴 웃음을 지으며 차로 돌아왔다.
도로는 대전 부근을 지나자 정체가 풀리기 시작했고 정상적인 속도로 운전하니 속이 후련해진다. 아내와 아이들은 모두 깊은 잠에 빠져들었고 눈이 쌓여 속도를 조절하며 시골 집에 도착하니 다음 날 오전 1시가 되었고 열여섯 시간의 대장정을 마쳤다.
자는 아이들을 깨우거나 안아서 방으로 들어가고 모친은 반가운 마음보다도 왜 이렇게 밤늦게 다닌다 나무라시다 아내의 차량 정체 설명을 듣고 도리어 안타까워하셨다.
따끈하게 불 지핀 방에서 들어가니 온몸의 쌓인 피로가 다가오지만 어머니가 일부러 차려주신 따끈한 명절 음식에 용수 박아 떠낸 전통 주 한잔이 온몸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지고 그때야 고향 냄새가 밀려온다.
명절날 귀성은 누구나 예외 없이 마치 연어의 회귀 본능처럼 아무리 힘들어도 꼭 가고 싶었던 몸과 마음의 고향이다.
지금 그곳에는 빈집만 덩그러니 남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지만 기다리던 사람도 보고 싶은 사람도 돌아오지 못할 길 떠나 버렸고 아련한 추억 속에 설날이 다가오면 그곳에서 옛 친구나 친척과 정겹게 만나고 부모님이 반겨주셨던 그리운 고향과 그 시절이 아프도록 그립다. 끝

장계숙 2024-02-09 10:06	민족의 대이동~ 설날이 내일 입니다. 예전엔 귀경길이 참 힘들기만 했습니다. 객지생활을 하던 때라 고향가는 길이 고행이었지만 마음은 즐거웠던것 같습니다. 콩나물 시루 같은 버스에 좌석도 없이 서서 8시간을 갔네요. 그래도 버스를 탈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뻤습니다. 한번은 인파속에 시달리다 부모님께 선물 받은 비싼 손목 시계를 잃어버리고 가슴 쓰리던 기억~ 그마저 모두가 즐거운 추억입니다. 지금은 명절 연휴에 해외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시대가 변하고 명절의 의미도 예전 같지 않으니 한편으론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아이들과의 귀향길 이야기 공감하며 즐겁게 감상했습니다. 설 명절에 좋은 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올해도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최미봉 2024-02-10 20:19	삶에 명절만 되면 민족 대이동에 연중 행사인데요 엄청 밀려 밀려가는 고속도로 정체됨은 보고 있는 듯합니다 힘드셨지요 작가님 서울 지회 회원이시네요 반갑습니다 좋은 글 주인공이 되어 함께 여행한 기분입니다 건강하시고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서석노 2024-02-13 15:38	장계숙님 최미봉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은 갈수도 없고 아무도 기다려 주지 않는 고향이라 더 아련하군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정연석 2024-02-13 21:21	존경하는 서석노 시인 작가 님 안녕하세요 설 명절은 즐겁게 잘 보내셨는지요 설날 고향 가던 추억을 리얼하게 잘 집필하셔서 흥미있게 읽었습니다 흥미있다기 보다는 그 시절의 아픔을 느끼며 배독하였습니다 지금보다는 도로사정이 나쁜 점도 있지만 그때는 10시간 운전은 기본이었던 것 같습니다 작가님 건강하시고 즐거운 일 많으시길 바랍니다

서석노 2024-02-23 20:05	정연석 시인, 작가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월이 흐르니 앞으로 전진보다 지난 추억이 더 살가워 지는군요 자주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염경희 2024-03-02 19:50	안녕하세요 작가님!!! 이제야 서재 개설하심을 확인하고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설날 풍경이 새록새록 다가오는 시간 날씨마저 겨울을 연상케해서 착각하기 쉬운 날입니다 설인줄~~~ 내일 반갑게 뵙겠습니다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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