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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정병윤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정병윤
ㆍ작성일 2023-02-24 16:58
ㆍIP: 221.xxx.91
나의 삶 솔 향기
나의 삶 솔 향기

정병윤

 산책길 아기자기한 바람 속으로 걸었다. 그늘과 가지 사이로 나 있는 오솔길 양옆 진달래 흐드러진 우거진 숲을 걷는데 내 어린 시절 헐벗은 동산이 다가와 혼자인 나에게 하늘 끝으로 푸른 땅의 말씀을 전한다.
 중학생 시절부터 고학한 나는 병아리 부리 정도의 돈이라도 모이면 저금하면서 살았다.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되었을 때 어느 날 사촌 형이 나를 찾아와 한마디로 어리둥절했다. 왜냐하면 피를 나눈 가족이 나를 찾아온 일은 어머니와 이모를 만나기 전까지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사촌 형은 할아버지 야산에 나무를 사서 심기를 권했다. 언제나 내 가슴 한구석 그리운 고향이자 언젠가 타향살이를 마치면 돌아갈 고향에 형님의 말씀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흔쾌히 할아버지 자갈 산에 소나무를 심었다. 그 후로 미래의 꿈동산을 생각하면서 계속 돈을 모이는 대로 소나무를 사고 또 샀다. 매 순간이 행복으로 날고 있었다.
 중년이 되었을 때 나의 꿈은 기품있는 자태로 당당하게 자랐다. 초록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소나무의 바늘잎은 내 눈을 청아하게 했고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진 삶의 과거와 현재였다. 나이를 드러내지 않는 몸통 가지 위로 새 한 마리 부유할 때 늦잠 자던 솔가지 기지개를 켠다. 상쾌한 기분으로 경사길을 걸어 언덕배기 하늘 아래 오솔길을 지날 때마다 오늘을 사는 향기는 토양의 양분을 빨아들이고 안개비 내려도 다시 떠오르는 태양이 주는 대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웠다.
 4월을 물고 5월이 되면 토끼 구름이 뒹굴고 조화로운 풀들도 보이지 않은 자유로운 소나무 가지 사이로 세상을 물들인 송홧가루 내린 그 길을 따라 산책하는 길에는 쉬어가는 새들이 솔향을 빨아들인다. 바위틈새로 물의 웃음들이 새어 나오고 수정 같이 맑은 물로 얼굴을 씻고 바위 위에 다리를 걸쳐본다.
 한여름 매미는 허공을 째는데 이내 태풍으로 부서진 상흔들이 마음을 안쓰럽게 하면 가라앉았던 내 유년이 또 고개를 든다. 꿈이 속삭인다. “내 넓은 어깨로 만든 그늘에서 아팠던 기억을 너털웃음으로 날려 보내”하고…. 훌쩍 자란 꿈이 솔잎에 와 앉는다.
 잎이 말라가는 계절을 만나 빛바랜 솔잎들이 언덕길 켜켜이 쌓여 나무의 맥박을 만지는데 나만 보이는 고요 사이로 쩡쩡 울리는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 기침 소리에 내 꿈의 조각들이 자란다. 등 굽은 소나무 껍질이 마치 내 인생인 양 슬픈 마음이 울렁일 때마다 이런 새벽이 젖는다.
 친구들이 소풍이나 여행을 갈 때 부러워만 했고, 너덜거리는 신발 사이로 내가 보이면 확 뚫리는 사이다 한 방울로 갈증을 날리고 싶었다. 그리고 원망스러운 시간이 찾아오면 오징어라도 씹고 싶었지만, 지나간 시간은 돼지 저금통의 배를 불렸다.
 내공이 깊은 사람처럼 단단한 소나무는 40년 이상의 나이테를 둘러야 한다. 비견한 예로 집을 지을 때 쓰이는 대들보와 같은 늠름함 일 것이다. 지금도 소나무는 나에게 말한다. “기다리는 자에게 천국이 저기 있나니”하고 말이다.
바람이 한쪽 눈을 감고 자는 시간에도 푸르름을 훔쳐 갈까 하는 고뇌에 잠들지 못하고 마치 나의 겨울이 울 듯이 슬피 운다. 내 마음속에 새겨진 상처가 다시 부유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가슴은 벅차고 마음이 스산하다. 고독과 외로움 그리고 나를 옥죄었던 여정 속 길들이 솔밭에 물결치고 송기(松肌)로 허기를 달래던 시간이 남은 길을 달랜다.
 고독한 여정을 견뎌야 할 때 내리는 함박눈이 나를 두렵게 가둔 원망이 어머니의 사랑처럼 덮는다. 먼 길을 돌아온 나의 꿈이 자랐고 나밖에 모르는 형님은 나보다 큰 키와 가슴으로 품을 내어주셨다. 따뜻한 가슴을 가진 형님을 생각하며 용울음 소리가 계곡을 흔들고 가슴을 파고 지축을 흔들면서 서서히 멀어진다.
 죽어야 사는 인고의 세월 바람은 봄을 맞이하고 하늘이 끝없이 뻗어진 사이로 뭉게구름이 떠다닌다. 시원한 솔잎들은 새소리에 장단 맞춰 신명 나게 내 안에 사는 우주를 흔든다. 어느 집 정원에 기품있는 소나무가 봄에는 새순을 피우고 리듬을 타고 어깨를 들썩이니 내 삶을 깨우는 그 향기는 영원히 노래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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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4 추분과 탱고 4 정병윤 2023-02-24
3 여름에 남겨진 신의 목소리 정병윤 2023-02-24
2 나의 삶 솔 향기 정병윤 2023-02-24
1 환영합니다 poemmusic 2023-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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