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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주 김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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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영칠 수필가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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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자 |
황영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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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일 |
2023-03-27 02: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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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과 함께한 행복한 인생
황영칠
태백산 줄기의 끝자락 경북 청송에 자리 잡은 주왕산 국립 공원 가는 길목 작은 마을에 가난한 농부의 막내로 태어난 것이 내 인생의 시작이다. 계절은 집집마다 곡간이 텅 비었던 보릿고개 고갯마루 음력 사월이었다.
비록 집안 형편은 어려웠지만 인자 하신 할아버지와 다정하신 부모님 밑에서 사 남매의 막내로 온 가족의 사랑을 받으며 태어난 나는 아장 아장 걸음마를 할 때 쯤 6•25 동란을 맞아 아버지를 잃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으니 아버지의 얼굴도 기억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도 느껴보지 못한 채 홀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우리 가족은 할아버지와 태평양 전쟁에서 아버지를 잃은 사촌 누나 둘과 우리 4남매 모두 여덟 식구였다. 밤이면 할아버지는 사랑방에 주무시고 일곱 식구가 한 방 한 이불 속에서 체온으로 가족 간에 사랑을 나누면서 자라났다.
당시에는 천연두, 학질, 이질, 홍역 등 전염병이 유행하여 신생아가 태어나면 두세 살이 돼야 출생 신고를 했던 때라 나 역시 아홉 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어머니께서 직접 농사지으신 목화로 손수 물레를 돌려 실을 뽑아 베를 짜신 무명베에 검정 물감을 들여 손 바느질로 지어주신 한복을 입고 학교에 갔다.
신발은 검정 고무신을 신고 기쁨과 호기심에 가득 찬 모습으로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감격스러운 기억이 아직도 뚜렷이 남아있다.
읍내에 있는 본교는 집에서 6km나 떨어져 있어 다행히 강 건너 큰 마을에 2학년까지만 다니는 분교가 생겼다. 분교로 사용할 건물이 없어서 1학년은 우리 반 친구네 사랑채 방을 빌려서 교실로 사용하였다.
벽에 작은 칠판을 걸어놓고 짚자리에 앉아 방바닥에 책을 펴 놓고 빡빡 머리 남자 20명과 단발머리 여자 5명이 누런 코를 훌쩍이며 공부하던 때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우리 반 담임 선생님은 젊고 멋진 남자 선생님이셨는데 선생님이 좋아서 장래 희망을 선생님으로 정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누나는 벌써 시집을 갔고 할아버지마저 돌아가셨기 때문에 우리 식구는 몸이 허약하신 어머니와 사촌 누나 둘과 어린 3 형제, 모두 여섯 명이니 제대로 농사일을 할 일꾼이 없었다. 학교에 다녀오면 낮에는 산에 가서 나무를 해 왔고 밤에는 호롱불 아래서 숙제를 했다. 밝은 낮에 공부하거나 숙제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온 식구가 아침 일찍부터 어둠이 깔려 달이 뜰 때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농사에 매달렸지만 보리밥도 배불리 먹지 못했다. 보리 방아를 찧을 때 나오는 보릿겨에다 양을 늘리기 위해 소나무 속 껍질을 넣어 끓인 죽을 먹기도 했다. 먹을 때마다 목구멍이 따끔거리던 생각이 지금도 난다. 소나무 껍질을 넣어 끓인 죽을 먹고 나면 뱃속에서 송진이 굳어서 변이 잘 나오지 않아 울고 있으면 어머니께서 꼬챙이로 파내어 주시다가 항문에 피가 나는 것을 보시고 눈물을 흘리시던 야윈 모습이 눈에 선하다.
봄이면 지게를 지고 나무 하러 산에 가서 진달래꽃을 입술이 파랗도록 따먹고 끼니를 대신하거나 학교에 다녀오면서 찔레 새 순을 꺾어서 군것질로 배를 채웠던 기억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해야 할까?
그래도 어머니께서는 어려운 살림살이에 학비를 마련하셔서 초등학교는 졸업 시켜 주셨다.
하지만 중학교에 진학할 형편이 못 되어 차마 중학교에 진학하겠다는 말씀을 드리지 못하고 어머니 몰래 중학교 진학 시험을 보았다.
그 결과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진학할 가정 형편이 못 되는 것을 알고 계시는 선생님께서 가정 방문을 오셔서 어머니에게 중학교에 진학시켜주시겠다는 허락을 대신 받아주셨다.
지금 기억에 집에서 농사일을 거들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출석하는 날보다 결석하는 날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런 나를 기특하게 봐주신 선생님들의 배려로 간신히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뿐만 아니라 모범 학생 표창도 받았다.
지금도 배려해주신 선생님들의 은혜에 마음 깊이 감사를 드린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 진학의 꿈은 꿀 수도 없었으나 초등학교 1학년과 6학년 두 번을 가르쳐 주셨던 담임 선생님께 교육을 받으면서 결심했던 선생님의 꿈을 포기할 수 없어 어머니와 형님을 설득하여 땀 흘려 농사지은 고추 100근을 팔아서 교육 대학 입학금을 냈다. 입학은 했지만 집에서 44km나 떨어진 시내에 유학을 해야 하니 자취 할 방을 얻는 일과 등록금 마련이 큰 어려움이었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입학한 다음 2년 동안 교육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숙식 가정교사를 해서 학비를 해결하고 꿈에 그리던 선생님이 되었다.
시골 초등학교 총각 선생님이 된 나는 가슴이 벅찬 기쁨을 맛보았다.
빛나는 눈동자의 어린이들 앞에서 나의 어린 시절에 선생님을 꿈꾸었던 때를 생각하면서 나를 쳐다보는 그 보석 같은 눈망울의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꿈을 키워주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토요일 ‘자유학습의 날’이면 꼬불꼬불 논둑길을 줄 서서 걸어가면서 발맞춰 동요를 부르면 그것이 음악 시간이요, 자라는 식물과 농작물의 모습을 관찰하면 그것이 자연(과학)시간 이었다.
냇가에서 수영을 하고 다슬기를 잡으면서 관찰하고 퉁퉁 불린 때를 돌로 문지른 다음 깨끗한 몸으로 냇가 모래밭에서 씨름을 하고 돌멩이로 박자를 맞추면 바로 전 과목 종합 수업 즉 전인 교육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때 행복해 했던 그 어린이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때가 교단에서 참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첫 월급 15,000원으로 고향에 계시는 어머니께 빨간 내복과 용돈을 드렸을 때 기쁨의 눈물을 흘리시던 어머니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시골 학교 교사 생활을 하던 중 서울에서 도시 어린이들을 가르쳐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자란 시골은 꿈과 재능이 있어도 그 뜻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없었으니 서울에 가서 나의 못다 한 꿈도 펼쳐보고, 결혼하여 장래 태어날 나의 자식은 서울에서 꿈을 펼칠 수 있게 하리라는 나름대로 뜻을 가지고 있던 중 ‘두드리면 열린다.’고 했던가 서울에 선생님이 부족하여 희망하는 선생님 모집이 있다는 공문이 와서 지원했다.
촌뜨기 우물 안 개구리 시골 총각 선생님이 서울에 와서 표준말 쓰는 어린이들에게 억센 경상도 사투리로 교단에서 어린이들을 지도한다는 게 여간 긴장되고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 선생님 말투가 이상하다” 며 어린이들이 깔깔 웃고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어린이들에게 표준말을 가르쳐야 할 선생님이 오히려 어린이들에게 배워야 할 노릇이니 이 일을 어쩐단 말인가.
수업 시간마다 사투리 때문에 힘든 날이 이어졌다.
그러나 그냥 당황만 하고 있을 수 만은 없었다.
퇴근 후 밤이면 라디오를 틀어 놓고 아나운서의 억양과 발음 따라 표준말 연습을 밤잠 설치면서 열심히 한 결과 6개월 만에 공부를 재미있게 가르치고 발음이 정확한 선생님이라고 어린이들이 인정해 주었다.
내 나이 서른 살 결혼 적령기가 되었을 때 예쁜 규수가 있다는 중매가 들어와서 시장 비단 가게 집 딸과 결혼을 했다. ‘제 눈에 안경’이라고 했던가, 비단 가게에서 예쁜 한복을 입고 있는 처녀는 영락없는 선녀의 모습이었다.
나는 그 선녀와 결혼해서 지금도 선녀처럼 모시고 사랑하며 살고 있다.
결혼 후 호강은 시키지 못했지 만 결혼생활 45 년 간 한 번도 부부 싸움을 해본 기억이 없다.
친정에서 예쁘게 자란 처녀를 모셔다가 고생 시킨 아내의 얼굴을 보면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난다. 젊은 시절 삯바느질로 고생한 아내는 허리 디스크란 병을 얻어 오늘도 병원에서 물리 치료를 받고 왔단다.
초등학교 교사의 적은 월급에 반찬 값 이라도 살림에 보태려고 젖먹이 남매를 키우면서 삯바느질로 밤을 지새우다 재봉틀에 엎드려 잠이 들었던 아내의 애처로운 모습, 바느질에 지쳐 곤한 잠에 빠진 엄마의 젖을 빨고 있던 젖먹이를 잘 키워내서 시집 장가까지 보낸 공로가 장하여 공로상이라도 주고 싶다.
45년 전 신혼 때는 단칸방에 어머니 모실 방이 없어서 재래식 부엌 위 다락방에 어머니를 모셨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고 가슴이 아프다.
첫 딸 임신해서 유난히 입덧이 심했을 때, 여름철 복숭아 한 개, 가을철 도토리묵 한 접시 먹고 싶다고 하는 아내의 마음을 달래주지 못하고 살림살이가 어려워 그것 하나 챙겨주지 못했던 기억에 지금도 눈물이 핑 돈다.
남매가 유치원에 다닐 때 작지만 16 평 짜리 새 아파트에 입주해서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을 때가 나의 결혼생활에서 가장 행복한 때라고 생각된다.
서울에서 교직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도시 어린이들에게 부족한 자연환경과 시골 생활에 대한 지식을 도시 교육에 적용해서 지도했을 때, 어린이들이 이해를 잘하고 재미있어하면서 실력이 쑥쑥 늘어났다. 이렇게 안정을 찾았을 때 시골 선생님 시절 못지않은 보람과 즐거움으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때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산업화가 되어 갈수록 어린이들이 주지 과목 실력은 늘어나는데 인성과 도덕성은 점점 후퇴해가는 것이 안타까웠다. 어린이들의 도덕성 향상을 위해 대학원에서 초등 도덕을 전공하여 도덕성 향상에 기여한 점이 보람으로 남아있다.
2011년 교직 생활 42년 째 되던 해에 정년이 되어 사랑하는 어린이들의 보금자리를 떠나야 한다는 생각, 퇴직 후 제 2의 인생 계획을 미처 세우지 못해서 밤잠을 설치고 있을 즈음 하늘이 내린 선물을 받았다.
서울 시내 초등학교 어린이들의 안전을 지켜주기 위해 ‘학교 보안관’을 처음으로 채용한다는 소식에 거리낌 없이 지원하여 제 2의 인생을 시작했다.
꿈 많은 어린이들의 밝은 얼굴을 보면서 달리는 자동차들의 위험과 폭력으로부터 어린이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경광봉을 손에 들고 카우보이를 닮은 멋진 보안관 제복을 입고 호루라기를 힘차게 불면서 교통 지도와 순찰로 봉사했다.
9 년 간 보람 된 제 2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행복했던 기억이 새롭다.
아침 일찍 등교하는 어린이들에게 ‘사랑 합니다’ 로 인사 하면 천 여 명 어린이들이 밝은 얼굴과 행복한 표정으로 “보안관 선생님 사랑 합니다” 로 공손히 인사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내 인생에 교직을 선택한 것이 행복했고 제 2의 인생도 어린이들을 위하여 봉사했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어린이들의 보금자리에 봉사할 일자리가 있다는 생각에 힘이 불끈 솟았다. 자라나는 어린이들을 위하여 오래도록 봉사 하리라 는 결심을 하면서 동녘에 해가 뜨기 전에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으면서 꿈 많은 어린이들을 만나기 위하여 기쁜 마음으로 출근했던 9 년 간 보람 된 제 2의 인생도 잔잔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내 인생에 50년을 초등학생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기에 마음도 꿈도 내 친구도 초등학생 인생으로 살아온 삶이 고맙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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