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 /대한문인협회 -시 (詩)

ㆍ작성자	안선희
ㆍ작성일	2013-02-17 06:42

ㆍIP: 124.xxx.30

소

부모님이 셋방을 면하고 집을 장만했을 무렵

농부였던 증조할아버지 식솔을 이끌고 상경하였다

증조할아버지 시골에서는 자주 웃기도 하였는데

서울로 이사하고 표정 없어져서

나는 까닭도 없이 증조할아버지가 무서웠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입 굳게 닫고 책만 읽고 계셔서

어린 시절 나는 한 번도 마루에서 뛰어보지 못하였다

증조할아버지 아흔 넘어서는 망령이 드셨다

소통의 끈 되어준 노인정에 발길 끊고

세상사에 눈 질끈 감은 채 방안에서만 사셨다

식구들 모두 불 끄면 그림자처럼 빠져나와

부엌문 드르륵 열며 무언가를 찾으셨다

소 어딨어, 소 엇다 뒀어!

여러 날 뒤 증조할아버지 침상에서 영면하셨다

네 살부터 나와 함께 살았던 증조할아버지

어쩌면 서울로 상경한 바로 그날부터

고향 집에 가고 싶었는지 모른다

밤마다 찾아 헤매었으나 끝내 찾지 못하였던

그리운 소는

할아버지의 향수병이었는지도 모른다

안정순 2013-02-17 11:28	`안선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옛날 할아버님들은 엄격하고 무서웠지요.. 지금은 그렇진 않지만 그 할아버님께서 연세가 드셔서 치매가 오셨었나 봅니다. 치매가 오면 예날의 어려웠던 시절에 머물며 그 시간속에 머물러 있답니다.. 그러기에 전 재산 이었던 소를 그토록 찿아 헤메셨나 봅니다.. 다 옛 추억이 되셨겠군요....

정행호 2013-02-17 13:49	`안선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한겨울을 주름잡던 설한풍이 금수강산을 투명 면포 자락으로 꽁꽁 동여매어 혹한기 유희를 만끽하던 얄미운 우리들의 친구라, 아직도 차가운 기온 임에 저 멀리 떠나기가 아쉬움일까요? 순간순간 귓불을 어루만지며 다정하게 속삭이는 봄 여신의 반가운 방문에 잔뜩 움츠렸던 전신을 활짝 펴고 거나하게 기지개를 부릅니다. 아울러, 시인님의 아름다운 옥고(玉稿)에 태산처럼 충만하게 동화되어 기쁜 마음으로 구독하였습니다. 내려주신 고운 옥 영(玉詠)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명숙 2013-02-17 14:47	`안선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그렇군요. 소,, 절절하게 그리웠던 것이 증조할아버님은 소였나 봅니다. 향수병,, 뭐든 지나치면 병이 되겠죠. 향기로운 시간 되세요.

경대호 2013-02-17 18:28	망령.. 노망이 드시면..무의식에 있는 강력한 그 무엇인가가 표출된다고 하던데..... 시골에서의 소는 일소의 개념을 훨씬 넘어서는 자식과 같은 존재이였지요.. 고운 시심에서 그윽한 향기가 납니다..

길상용 2013-02-17 20:55	그렇군요. 증조할아버지께서 애타게 찾으시는 소는 소 그자체가 아니라 소가 있는 고향땅이었나봅니다. 향수병. 우리는 간단하게 그렇게 부르지만 정작 본인은 그 이상의 그리움과 기다림이었나봅니다.

곽종철 2013-02-18 05:21	고향을 그리는 마음 소와 함께한 그 시절이 전부인 증조할아버지 시골 생활을 청산하고 도시생활로 접어들면서 더욱 강렬히 표출된 것 같습니다. 고운 시향에 젖어 머물다 갑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주응규 2013-02-21 10:43	좋은 글향 가득 품습니다 감사합니다 쌀쌀한 날씨 속에서도 봄 내음이 간간히 묻어납니다 여유롭고 기쁨 가득 담는 날되십시요^*~

홍대복 2013-02-21 15:21	안선희 시인님! 건안하시죠? 봄이 오는 길목에서 깊은 시향에 푹 젖어봅니다 시인님! 들녘 가득 피어나는 매화 향기처럼 향기롭고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김화영 2013-02-22 10:49	외로우셨던 증조부 소 몰고 논밭 가시던 그 시절 그리우셔서 부엌문 여시고 찾으시는소 증조부 께선 외양간으로 착각 하심이 마음아파 옵니다. 고운시간 되세요!

안선희 2013-02-28 19:38	《Re》안정순 시인님 , 증조할아버님은 화를 내신 적이 없는데도 근엄한 표정 탓인지 함부로 행동할 수 없는 위엄이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시골 생활은 어려웠지만 정이 있었기에 할아버지께는 향수의 대상이셨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시인님, 귀한 걸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선희 2013-02-28 19:41	《Re》정행호 시인님 , 추위가 완전히 물러갔다고 생각 됩니다. 두꺼운 겨울 외투를 벽장에 넣진 않았어도 봄 원피스를 찾고 있으니까요. 시인님, 봄은 시인만이 느낄만큼 짧지요. 짧은봄 다산하시는 기쁨 있으시길 축원드립니다.

안선희 2013-02-28 19:43	《Re》이명숙 시인님 , 시인님은 부산이 고향이시지요. 아님 타향에서 옮겨오셨는지도 모르겠네요. 고향에서 태어나 친분있는 분들과 함께 살면서 일가를 이루는 것처럼 귀한 일이 있을까 싶습니다. 저 또한 서울서 중년을 맞이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고향이라기에는 미흡한 감이 있답니다.

안선희 2013-02-28 19:44	《Re》경대호 시인님 , 소는 죽으러 갈 때 눈물을 흘릴만큼 영물이라고 들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는 서울인데도 길가에서 소똥을 본 기억이 나는데 맞는지 모르겠네요. 증조할아버지가 워낙 말수가 없으셔서 멀리서 조용히만 있고 외롭게 해드린 일이 후회스럽습니다.

안선희 2013-02-28 19:46	《Re》길상용 시인님 , 저 또한 중년이 되고 보니, 후회스럽지 않을 인생에 대해 종종 생각합니다. 화려하고 바쁜 일상 보다는 곁에 있는 사람들을 챙기고 함께 생각을 나누며 항상 내 편이 되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안선희 2013-02-28 20:53	《Re》곽종철 시인님 , 증조할아버님과 증조할머님은 아흔살이 넘도록 해로하셨습니다. 농촌에서의 삶이 인생의 전부였고, 후반에 서울로 상경하셨지요. 두분께 즐거움을 드리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저의 모습이 뉘우쳐집니다.

안선희 2013-02-28 20:55	《Re》주응규 시인님 , 왜 시인님이 대전분이라고 생각했을까요? 행사때만 뵈어서인가 봅니다. 가까운 곳에 계셨는데. 시인만이 봄을 느낀다고 하지요. 짧은 3월, 4월 시심에 잠겨보는 계절 되시길요. 시집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안선희 2013-02-28 20:57	《Re》홍대복 시인님 , 깊은 밤에 간간이 도시가스를 틀고 잠을 청하긴 해도 난방장치 없이 잠을 자는 날이 더욱 흔하니 봄이 오긴 왔나 봅니다. 우리 시인들의 계절인 봄에 문인방의 등불을 화려하게 밝히고 밤샘을 해보아요^^

안선희 2013-02-28 20:59	《Re》김화영 시인님 , 웬지 시인님이야말로 증조할아버지의 외로움을 잘 이해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은 결국 혼자라지만, 증조할아버지가 노망이 든 당시에는 할아버지를 꺼리고 무서워했던 저였는데 나이들어 떠올리니 그 외로움을 나눌 수도 있었겠다는 깨달음이 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