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을 앓은다는 것 (1)

 토마스 만은 “마의 산(Der Zerberberg)”에서, 스위스의 다보스에 있는 결핵요양원에 입원한 주인공과 그의 동료 간의 대화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병은 지극히 인간적입니다. 인간자체가 바로 병이기 때문이죠. 인간은 본질적으로 병을 앓은 생물이며, 병을 앓아야만 비로소 완전한 인간이 됩니다.(중략)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권장하는 루소주의는, 인간의 비인간화와 동물화를 촉진시키는 것 외에 아무것도 추구하는 것이 없습니다. 인간성이니 고귀성이니, 도대체 이게 무엇입니까? 인간의 정신이야 말로 자연에서 자신을 분리시켜 자연과의 대립을 자각하고, 인간을 모든 유기체와 구별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정신, 즉 병에 인간의 존엄성과 고귀성이 깃들여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인간은 병을 앓으면 앓을수록 더욱더 인간적이 되며, 병의 수호신보다 훨씬 인간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후략)”

 위의 대화내용에서 보면, 병을 앓은다는 것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병을 앓은다는 것은, 인간정신이 병으로 인하여 인간의 존엄성과 고귀성을 깃들게 하는 것임으로, 그것이 비로소 인간을 완전하게 단련시키는 것임으로 굳이 자랑스럽다고는 할 수는 없으나 그렇다고 절망할 일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제가 이번에 창졸간에 암 병을 앓게 된 중증환자로 등록 되어버린, 실로 허망한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제가 전립선에 이상이 있다고 느껴 본적은 없고, 다만 소변을 볼 때면 어쩐지 잔뇨감이 있다고 느껴진 것이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 때 즉시 시내 비뇨기과의원에 찾아가 진찰을 받고, 한 달분의 약을 처방받아 복용하기를 두 달간을 했더니 정상이 되는 것 같기에 약을 끊고 그대로 지냈습니다. 그랬더니 만 1 년 만에 다시 예전처럼 잔뇨감이 불편하게 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다시 의원에 찾아가 종전처럼 두 달간 복용하니까 증세가 해소되기에 안심하고 방치하였더니, 어김없이 일 년이 되는 여름 날 잔뇨감이 여전히 찾아 왔습니다. 다시 비뇨기과에 찾아 갔더니 이번에는 소변의 분사각도 측정해 보고, 수술용 고무장갑을 끼고 항문을 찔러 촉진도 해보고 나서,

 “별 이상은 없는 것 같으나 만일을 모르니까 혈액검사를 해 봅시다.”

 그리고 며칠 후, 저는 아무 걱정 없이 땅 끝 과수원을 돌아보고 오려고 승용차에 이것저것 짐을 가득 싣고 막 출발하려고 하는데, 휴대폰 벨이 울리는 것 이였어요. 그 예의 비뇨기과에서 걸려 오는 전화였습니다.

 ‘피검사 수치가 심각하게 높이 나왔습니다. 속히 나오십시요. 의뢰서를 써 드리겠으니 큰 병원에 가보셔야 될 것 같네요. J대학병원 비뇨기과에 내 잘 아는 교수님이 계시는데 그 수술만 20년쯤 했습니다. 제가 소개 해드리면 잘 해주실 것입니다.‘

 땅 끝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J대 비뇨기과에 접수부터 하였습니다. 그 날 마침 소개서에 명기된 교수님이 당일 진찰일이여서 쉽게 상담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조직검사인데 저처럼 고혈압 약을 복용하고 있는 사람은, 필수로 복용하게 되는 아스피린계 약을 끊은지 일주일 후에라야 조직검사 시술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지시대로 그 약의 복용을 끊기로 하고 일주일 후로 날을 받았는데, 하필이면 그 날이 공교롭게도 제가 회장직을 맡고 있는 농우회의 9 월중 월례총회 일에 해당되고 말았으니 얼마나 송구스러운지-----. 전립선암의 조직검사는 항문을 통해서 12부위에서 채취하기 때문에 출혈이 많을 경우에 대비해서 시행당일 하루 동안 입원하도록 되어있습니다.

 그 후 일주일 쯤 지나 조직검사 결과가 판명되었는데, 결과는 유감스럽게도 전립선암 중등도였습니다.

 “전립선암 중등도라고 하나 전립선은 다른 암과 달라 그 진행 속도가 느리고, 물론 젊은 사람일 때는 사정은 다르지만, 나이가 연만하시니까 또 뼈에 전이가 안 되었으니 중등도를 3기로 보나 염려하실 것 없습니다. 현재 대한민국 남자 수명이 79세 아닙니까? 수술하건 수술 않고 방사선 치료를 하건 평균수명 까지는 충분히 사실 것이니 염려 놓으시고 MRI와 뼈 검사부터 하도록 합시다.”

 이 교수는 당초 제가 소개받았던 교수가 아니었을 뿐 아니라 말투도 정감이 없고 껌을 쩍쩍 씹어가며 설명하는데, 마치 평균수명을 살면 만족하지 않느냐는 뜻으로 말하는 것도 같아, 저로서는 너무도 불쾌하여 병원을 옮기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이렇게 되어서 J대학병원에서 C대학병원으로 전원을 해 버렸는데, 여기에는 C대병원에서 제가 받은 적이 있는 안과수술하며 쓸개 수술 등의 결과가 그 때마다 만족했던, 지난날의 병력에 영향을 받은 아내의 강경한 주장 탓이라 해두는 것이 더 옳을 것 같습니다.

 C대학병원 비뇨기과에 전원을 한 후, MRI와 뼈 검사일은 11월11일로 잡히고 특진일은 11월 16일로 결정되었습니다. 왜냐하면 J대학병원에서 조직검사를 한 날이 9월 24일이였고 MRI는 조직검사를 실시한지 6주후가 아니면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늦춰지고 말던군요.

 특진일에 강태공교수는 콤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면서,

 “전립선암 중등도로 3기에 해당 됩니다 마는, 젊은 사람이 아니고 나이가 연만하시니까 진행속도가 느리고 현재 뼈에 전이가 안 되었으니 걱정하실 것은 전혀 없고 치료하시면 잘 되시겠습니다.”

 그러자 아내가 잽싸게 질문을 합니다.

 “교수님, 수술을 하면 완치가 가능한가요?”

 “ 네, 수술을 안 하셔도 됩니다. 나이가 연만하시니 서둘러 수술하실 것 없고, 수술을 해도 방사능치료를 어차피 해야 하니까, 수술하지 않고 방사능 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방사선치료도 세기조절치료라고 해서, 암 조직을 집중적으로 조사하는 새로운 방법이 생겨, 일반적으로 수직적으로만 조사하는 방법에 비해, 주변장기에 전혀 피해를 주지 않은 치료법으로 완치율이 70~80퍼센트나 되는데 치료비는 다소 비싸서 1000만 원정도 되구요, 일반방사선 치료비는 300만 원정도가 됩니다.”

 “그렇게 비싼 치료를 안 하겠습니다.” 제가 재빨리 얘기하자 안애가 옆에서 끼어듭니다.

 “교수님, 1000만 원이 든다는 세기무엇인가로 해 주십시요! ”

 “그러시면, H 읍에 있는 C대병원에 가셔서 그 곳에서 결정 하십시요. 방사선 치료는 모두 그곳에서만 치료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피 검사를 하시고, 홀몬 주사를 복부에 한대 맞고 가시고, 그 곳에서 치료하시다가 12월14일에 이곳으로 특진을 받으러 오십시요. 그 때 다시 뵙겠습니다.” 강 교수는 얼굴도 핸섬할 뿐 아니라 너무도 자상하게 설명을 해주어서 우리 부부는 모두 기분이 좋았고 신뢰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H읍에 있는 C대병원은 읍내에서 조금 벗어난 산모롱이에 넓은 터를 잡고 잘 지어졌고 그 곁에는 생명공학연구관을 신축하고 있어 퍽이나 활발해 보였으며, K시의 시내버스가 병원 현관 앞에 승강장을 두고 많은 승객들이 오르내리는 것하며 주변에 넓고 편리한 주차장시설을 마련해놓은 것을 볼 때, C대병원의 암 센터로서 제 기능을 다 하고 있다는 첫 인상을 받았습니다.

 방사선 종양학과의 특진교수인 남태원 교수도 인상이 퍽 좋은 분으로 아주 친절하였습니다.

 “저쪽에서 잘 듣고 오셨을 줄 압니다마는, 방사선치료기간은 7주간으로 34회를 실시하게 됩니다. MRI와 뼈 검사결과 뼈에 전이가 안 되었으니 걱정은 안 하셔도 되고 치료하시면 70~80프로는 완치됩니다.”

 또 아내가 다급하게 질문을 합니다.

 “교수님, 방사선치료를 하면 식사도 잘 못하고 토하고 괴로워한다는데, 안 그런가요? 머리도 빶는다고 얘기를 들었습니다마는---?”

 “아니요, 전연 그런 일은 없습니다. 치료비가 다소 비싸기는 합니다마는, 세기조절치료를 하게 되면 주변장기에 전연 피해가 없이 방사선치료를 하게 됩니다. 일반방사선치료는 수직으로 조사하기 때문에 주변에 다소 피해가 있으나, 방사선세기조절치료는 암 조직을 향해 집중적으로 조사하기 때문에 사선으로 쏘아서 주변장기에 피해가 전연 없습니다.”

 “그---,1000만원한다는 치료말씀이지요? 저쪽 병원에서 이미 듣고 그 치료를 받기로 작정하고 왔습니다. 교수님, 잘 부탁합니다.” 아내가 신속하게 결정해버립니다.

 “녜, 그러면 오늘은 CT촬영을 하시고 내일부터 치료로 들어갑시다.”

 CT촬영을 한다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전립선의 암 조직이 있는 부위를 어떻게 방사선을 조사해야 가장 효율적일 것인가를 가늠하기 위하여 제 몸을 좌우로 돌려가면서 방사선을 쏘일 표적을 표시하는 것으로, 좌우 허벅지 위쪽의 두 군데와 배꼽 아래쪽에 한 군데 도합 세군데에 특수잉크로 +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이것을 기본치료계획이라고 부르는듯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기본치료계획비용이라고 222만 여원을 첫날 수납했는데 달리 시술한 것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그것이 기본계획일 수 있겠거니 그렇게 짐작하게 되던군요.

 다음 날부터 34회를 향한 대장정이 시작되었는데, 매일 22만 여원을 수납해야 됩니다.

 아침에 식사를 7시까지 끝내고 7시반경에 지하철역을 향해 행군을 하면, 20여분 후에 역에 도착되고 지하철을 17분을 타 종점에서 내려 H읍에 가는 버스를 20여분 타면 H읍의 C대 병원에 도착하는데, 시간은 보통 9시 10여분 전을 가리키고 있으니 아주 적당합니다.

 여기서 필요 없는 얘기 같습니다만, 그 병원에 가는 수단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버스로도 갈 수 있고 제 승용차로도 갈 수 있습니다 마는 굳이 지하철을 이용하기로 한 것은, 집에서 역까지의 20여분 상당의 거리를 매일 오고가고 하면서 다리 운동을 하기위한 안애의 배려 때문이었습니다.

 “교수님, 음식은 무엇을 주의하며 특히 유의해야 할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아내가 마지막 물었을 때에,

 “고단백 섭취를 하시도록 하고 운동, 보행운동을 열심히 하시도록 하십시요.” 라고 한 남교수의 말 한마디로 34회 왕복의 강행군이 시작된 것입니다.

 방사선종양학과의 대기실은 여러 가지 암환자로 북적이고 있었습니다. 1,2,3치료실에서 호명하는 순서에 따라, 치료실에 들어가 방사선을 조사하고 나오는데, 단 몇 분이 걸리지 않은 너무도 짧은 시간입니다. 치료실 입구위에 (치료중)이라는 램프에 불이 켜지는 시간이 방사선이 조사되는 시간이기 때문에, 한번 작동에 11초~15초, 길게 조사할 특별한 경우 19초 정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통 세 차례 조사하면 치료 끝이니, 순번이 늦었더라도 기다리는 시간은 결코 지루한 적이 없었습니다.

 저의 경우는 세기조절치료니까 방사선의 기계기구가 다른 줄 알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제2치료실에서 일반치료도 병행하는 것이어서 좀 서운하고 거금 1000만원이 허망한 듯한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기계에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고 방사선 조사장치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침상에 올라 하반신을 내리고 양 허벅지위쪽과 배꼽 아래 +표적이 있는 곳에 천정에서 내리는 파란 일직광선이 조준을 하고나면, 인공위성 날개 닮은 기구 아래로 몸통이 밀쳐집니다. 그러고 나면 그 예의 날개 판에서 태엽 감는 소리가 한참 난 후에, 왼쪽 허벅지 쪽부터 방사선을 조사하는데 15초정도 걸리고 약간 각도를 올려 역시 12초정도 또 다시 각도를 올려서 13~4초정도, 다시 각도를 올려서 15초정도, 이렇게 왼쪽 허벅지 쪽을 4 회 끝내면 복부 쪽으로 날개 판이 돌아와 역시 같은 방식으로 4 회 조사하고, 마지막으로 오른쪽으로 돌아가 4회를 각도를 바꿔가면서 조사하여 도합 12 회로 마감 되는 것이니, 보통 6회 조사로 끝나는 일반방사선치료하고는 확실히 틀린 조사방식이며 시간 또한 많은 차이가 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각도를 12 회나 바꿔가면서 방사선을 쏘는 방식이 수직조사를 피하고 암 조직만을 집중적으로 쏘는 사선조사 방식인 것을 뒤 늦게야 알게 되었습니다.

 방사선종양학과 환자대기실은 암환자와 그 보호자로 빈자리가 없는 형편입니다. 서로들 각자의 병을 부끄러움 없이 얘기하고 서로가 정보를 교환하곤 합니다.

 M시에서 열차를 1시간 25분간 타고, H역에 도착하여 그 곳에서 택시로 병원까지 직행하여 언제나 1등으로 출석한다는, 중년여인은 머리를 빡빡 깎아버리고 모자로 가리지도 않은 채 언제나 명랑하고 활달하였습니다.

 “항암제를 여덟 개나 맞았지만, 나는 끄떡없이 이겨냈고, 머리가 빶기 시작하니까 즉시 빡빡 깎아버렸제. 인제 방사선 5주도 다 끝나가니까 치료 끝이여. 담임 교수님도 ‘이제는 먹고 싶은것 있으면 무엇이든 먹으라’고 하니까 다 낫은것 아니것오?”

 이 여인의 부군은 항상 카키색 군복 비슷한 헐렁한 옷차림에 가방을 들고 부인의 뒤만 따라다닐 뿐 어떻다 말 한마디 하는 것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폐암 3기라는 아내의 방사선 치료를 위해 5주간을 M시에서 열차통원을 했으니 그 고생이 보통이겠습니까 마는 표정은 너무도 태연합니다.

 Y시에서 승용차로 2시간을 달려 매일 통원 치료하던 68세의 남자는 간암환자로, 서울 아산병원에서 방사선치료를 받다가 그 쪽의 권고로 이곳으로 전원을 했다는데, 안색이 검은색이 너무 짙어 보는 이의 마음이 왠지 불안할 정도였지만, 언제나 정확한 시간에 대기하고 있었고 대화를 해보면 노상 적극적이고 밝았었습니다.

 K군에서 공직생활로 정년퇴직했다는 67세의 김씨도 서울 아산병원에서 방사선치료를 받다가 그 쪽의 권고로 이병원에 전원을 해 왔다는데, 대장 쪽 암인 모양으로 절제수술을 하지않고 방사선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방사선치료는 입원이 허용되지 않으니까, 인근 읍내 병원에 입원하여, 그 곳에서 침식을 해결하고 이병원에 통원치료를 받고 있는 형편으로 이런 방식을 취하는 원거리 지방 환자들이 많했습니다

 M시에서 설비공사를 하다가 호읍기에 이상을 느껴 그 곳 기독병원에서 2 개월간을 치료하였으나 낫지 않고 더 심해지자, 이곳에 와서 폐암으로 확정을 받아 방사선 치료를 5주간 받게 된 56세의 박씨도, 위의 예처럼 인근 병원에 입원하여 침식을 해결하고 통원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말기 폐암 환자인 71세의 남자는 자기 부인과 꼭 함께 통원하고 있었는데, 그 부인은 남편이 치료실에 들어

  다음(2)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