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 말기 환자인 71세의 남자는 자기 부인과 꼭 함께 통원하고 있었는데, 그 부인은 남편이 치료실에 들어가 방사선 치료 중에는 노상 큰 소리로 얘기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제 남편은 폐암 말기래요. 암이 온 몸에 다 퍼져버려서 이젠 손 쓸 수가 없게 되어 버렸데요. 지금 몇 번째 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고통스러우면 할 수 없이 왔다가 한 3주정도 치료 받고 가곤 해요.” 거의 체념에 가까운 한숨 섞인 하소연으로 들렸습니다.

 이 푸념을 들었던 사람들 중에 얼굴을 맞대고 들은 사람은 ‘고생이 많겠군요. 치료 효과가 있어야 할텐데 어쩔까요?’ 라 인사말만 할 뿐 무슨 위로를 드릴 수 있었겠습니까?

 위의 예처럼 방사선 치료를 받는 환자 중 가장 고통스러운 자는 폐암 환자임이 틀림없는 것 같았고, 그 수에 있어서도 가장 많은 것도 폐암 환자인성 싶었습니다.

 어떤 날은 위층 병실에서 침대에 누운 채로 제1치료실에 와서 우선적으로 방사선 치료를 받고 가는 환자들을 가끔 보는데, 이런 경우 대부분 말기 폐암 환자인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전립선 암 환자는 꼭 세 사람 만나 보았는데, 저보다 2주 선배가 한 사람 3주 후배가 한 사람 5주 후배가 한 사람이었습니다 마는 모두 일반 방사선치료를 받는 분들 이여서 저처럼 방사선 세기조절치료를 받는 사람이 없어 몹시 섭섭하였습니다.

 위 세 사람 중 2주 선배인 W군의 어느 섬 출신인 77세의 장 씨하고는 많은 정보를 나눠 가졌는데 이 장 씨는 부인이 뇌졸중에서 겨우 회복된 상태인지라, 김장을 담구기 위해 출가한 딸들과 김장 날을 일요일로 받아 작업하고, 다시 올라 와야 할 정도로 고생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K시의 매제 집에 방을 하나 빌려 버스로 이 곳 병원에 통원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가장 관심 있는 부분은 전립선암의 방사선 치료에 있어서 장 씨가 받고 있는 일반치료와 제가 받고 있는 세기조절치료가 무엇이 얼마만큼 다른가의 문제였습니다. 그러기에 매일 달라진 부분이 나타나지 않은지 관심 있게 관찰하고 묻곤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알게 된 것은 장 씨가 거의 한 달 동안이나 매일 항문에서 무색무취의 분비물이 흘러 팬티를 망치곤 했다는 사실과 허벅지다리가 아파서 한두 번 치료를 빼먹었던 적이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때 저는 25회 치료 중이었고 주수로는 5주, 날 수로는 35일 째였지만, 분비물의 흘림이나 허벅지의 통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세기조절치료의 효과라고 자위하게 되어 어느 정도는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크리쓰마쓰도 지나고 연말이 되었을 때에 위의 장 씨가 34회를 모두 마치고 귀향하게 되자, 저는 방사선 종양학과에서 아마도 가장 오래 된 고참환자가 된 성 싶었습니다.

 이 무렵 이 병원에 신사복 정장을 하고 비서를 대동하여 나타난 고귀한 신분인 듯한 새 환자가 나타났습니다. 제 아내와 저는 그 환자의 방사선 치료타임을 계측한 결과 12회인 것을 확인하고 세기조절치료를 받고 있음을 확신하였습니다. 아내는 치료실에서 나오는 그 환자를 뒤 따라가 질의를 하는 것이었어요.

 “선생님, 실례를 무릅쓰고 몇 가지만 여쭙고저 합니다. 세기조절치료를 하신 것 같던데, 어떻게 해서 그 치료를 받게 되셨으며 어느 부위를 치료하십니까?”

 예의 신사는 마음씨 좋아 보이는 인상에 미소를 띠우면서도

 “제가 지금 바빠서요.”

 “바쁘신 줄 아니까 제가 따라 가면서 말씀을 듣겠습니다. 제 남편이 전립선암으로 세기조절치료를 받고 있는데, 어느 누구도 그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이 없어서 너무도 답답하던 중에 선생님이 그 치료를 받고 계시는 것 같아서 무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질문하게 된 것입니다.”

 “아하! 그러십니까? 저는 항문 쪽에 이상이 있어서 실은 서울 아산병원에서 방사선치료를 받다가 왔습니다. 남편이 전립선암이라니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세기조절치료는 새로운 치료방법이고 효과가 높다고 해서 서울에서 받았었고 여기서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럼 내일 또 뵙지요.”

“예,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셔요.”

 이렇게 해서 그 환자의 운전기사를 통해 그가 국립M대학교 총장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어떤 날은 운전기사 외에 비서인 듯한 사람을 대동한 경우가 많았는데, M시에서 출발하여 이 병원에 09시 직전에 도착하려고 아침식사를 못하고 나왔는지, 치료 후에는 반드시 휴게실에 들려 빵과 우유를 먹고 마시는 것이었고, 저도 안애와 함께 휴게실에 들려 꼭 포도 두 송이와 음료수를 들곤 하였으므로, 4인용인 의자가 달린 원탁이 여남은 개 밖에 없는 좁은 휴게실에서 그 임 총장과 제가 치료가 끝난 후 간식을 할 때면 만나게 되는 일이 너무도 당연한듯 하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먼저 아는 척을 하고 간단한 덕담을, ‘치료 잘하셨어요? 하는 등 인간미가 넘치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병원 방사선종양학과 환자 대기실에서는 그 임 총장은 특별대우를 받아 대기하는 시간이 결코 길어 본적이 없었고, 저와 공통인 점은 언제나 깨끗한 흰 와이샤쓰에 넥타이를 매고 정장차림으로 치료실에 출입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미국을 위시한 서양의 중류이상 사회의 지배적인 범식인 ‘신사라면 식당과 병원에 갈 때는 반드시 정장을 갖추라’는 모범적인 양식을 상기시키는 것처럼 말입니다.

 치료실마다 탈의실이 두 칸 씩 있고 모두 소독 된 환자복이 비치되어 있으나 아무도 입지않고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폐암이나 간암 위암 유방암 환자들은 모두 웃도리를 벗고 치료하기 때문에 입을 수가 없고, 반대로 대장암이나 전립선암등은 아랫도리를 살짝 내리고, 물론 취부를 노출 할 수밖에 없지만 아랫도리를 반만 내리면 되는데 환자복을 입을 필요가 없지 않겠어요? 그래서 저는 상의만 탈의실에 걸어두고 치료용 침대에 넥타이를 맨 채 눕고 나서 바지와 내의를 반쯤 내려서 양 허벅지 위쪽과 배꼽 아래쪽에 있는 +.자 표지가 보이게 하고 두 팔을 머리에 올려 서로 깍지를 끼고 있으면 준비 끝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새 해를 맞아 소한이 가까워지면서 기온이 갑자기 내리더니 많은 눈이 내리기 시작하자 집에서 지하철역에 가는 도중인 성당 옆길과 캐톨릭 신학대학 후문 옆의 비탈길이 스키 타기에 안성맞춤인 빙판이 되고 말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이제까지 아무렇지도 않던 양 허벅지가 빙판 위 비탈길을 조심조심 걸어가려니 아파오기 시작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눈이 계속해서 연일 오던 날, 신학대학 후문 옆에서 앞서가던 아내가 스르르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찍고 말았는데 삽시간에 일어난 일이라 제가 바로 뒤에서 몸이 붙을 만치 가까이에서 따라 갔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이제는 거꾸로 환자가 보호자를 팔을 붙들고 지하철역 까지 겨우 걸어 가, 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먼저 정형외과에서 치료 받도록 하고 나서, 내 방사선 치료는 그 다음에 받도록 하는거야.’ 지하철의 소음 속에서 줄곧 그 생각뿐이었는데 종점인 S역에 도착하여 엘리베이터 쪽으로 가는 길에 아내의 몸이 훨씬 가벼워진 것을 알았습니다.

 “통증이 아까보다 훨씬 덜 하는 것 같아요. 계속 기도를 드렸어요. ‘주님, 일주일만 연기를 해 주십시요. 남편의 방사선 치료가 일주일 남았으니 그때 까지만 동행 할 수 있도록 건강을 허락해 주시면, 그 후엔 더한 고통도 참아 내겠습니다.’ 그랬더니 주님이 응답 해주신 것 같아요.”

 버스가 병원 현관에 도착하자 아내는 홀로 조심히 내릴 수 있었고, 병원 안에 들어가서는 많은 암 환자들의 군상 속에서 각성을 받아 허리 통증이 사라져 버리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이때 저는 하나님께 너무도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에서 감사할 일이 아주 많은데도 그때만 감사할 뿐, 지나치는 순간 곧 잊어버리는 일이 다반사가 아닌가요?

  34회 마지막 날에는 그 임 총장이 치료를 마치고 나오자 뒤 따라 내가 들어가게 되면서 서로 마주 쳤는데 그는 내게 다정하게 악수를 청하면서

 “치료를 잘 받으시고 건강하십시요. 저는 오늘 마치고 갑니다.”

 “저도 오늘 끝이 납니다. 안녕히 가십시요. 그리고 쉽게 쾌차하십시요.” 저도 화답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다정하고 상냥한 국립M대총장과의 스쳐 지나가는 인연은 흘러갔습니다.

 사람이 병을 앓으면 앓을수록 인간적이 된다고 말한 토마스 만의 뜻이 자꾸만 반추되는, 임 총장의 슬픈듯하면서도 다정한 눈매가 잊혀지지 않는 것입니다.

 마지막 방사선 세기조절치료가 끝나던 그 날 수요일은, 제가 남 교수의 특진을 받도록 되어있는 날이었습니다.

 “34회를 받으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어디 불편한데는 없으십니까?”

 “비탈진 언덕길을 오르다 보면 양 허벅지가 아파오고 잠간 쉬어가면 해소되곤 하며, 복부 윗쪽이 딴딴하고 변비가 심하여 대변이 나오려면 한참을 고생합니다. 이것은 복부에 맞은 홀몬 주사 때문인가요?”

 “네, 그런 증세는 이제 모두 해소됩니다. 처음에도 말씀 드렸듯이 물을 많이 마시고 적당히 운동을 하시면 머잖아 곧 모두 해소 될 것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십니다.”

 이제까지 듣고만 있던 아내가 질문을 합니다.

 “교수님, 팻트(PET)라는 것을 찍고 싶은데요.”

 “녜, 팻트(PET)는 양전자방출단층촬영이라는 것으로 사람의 몸속에 암 조직이 있느냐, 없느냐를 판별하는 것이지, 전립선에는 별로 필요가 없으며, 전립선에는 피 검사보다 더 정확한 것은 없습니다.”

 “그래도 PET를 꼭 촬영하고 싶습니다. 다른 부위에 혹시 무엇이 있을지도 모르고 하니, 이번에 하도록 해 주십시요.” 아내가 끈질기게 사정을 합니다.

 “정히 그렇다면, 이곳에서는 차례가 한 달쯤 걸리니까 K시의 C대학병원에서 찍도록 조치하겠습니다. 내일 할 수 있도록 하겠으니 그 쪽으로 찾아가시고, 오늘 피 검사용으로 채혈을 해두시고 일주일 후인 22일에 이곳으로 나오십시요. 결과를 보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날, C대학병원의 핵의학실과 함께 있는 팻트(PET)실을 찾아가니 감회가 깊었습니다.

방사선 치료를 받기 전에, 이 곳 핵 의학실에서 뼈 검사사진을 찍었었는데 이제 34회의 방사선치료를 마치고, 그 마무리로 팻트를 찍는다고 생각하니 지나온 세월이 꿈만 같고 덧없음이 느껴졌습니다.

 팻트(PET)의 촬영절차가 핵의학 촬영보다 더 번거롭다는 것은, 조영제 주사를 혈관에 주입한 다음 40분 이상을 침상에서 대기하는 것은 똑 같은 절차이지만, 그것이 음경의 외요도구에 오줌주머니가 달린 고무호스를 꽂고 나서 시행된다는 것이 바로 그 점이었습니다.

 팻트의 촬영시간은 20여분으로 생각보다 길었고, 통 속에 두 차례 들어갔다 나왔다하고, 통 속에서 한참을 멈춰 양전자를 방전 받는 것이 특이했다고나 할까요?

 1월 22일, 마지막으로 진정 마지막으로 H읍의 C대학병원 방사선종양학과로 결과를 들으러 갔습니다.

 “깨끗합니다. 팻트(PET)의 판독결과는 전신에 아무런 암이 없다고 나왔습니다. 전립선암의 경우 팻트(PET)에서 잘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씀 드렸지만, 피 검사만은 확실하게 검증이 됩니다. 피 검사결과는 0.009로 치료 전에 9.25였던 것에 견주어 볼 때 어마어마하게 치료가 잘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0.009라는 수치는 거의 0에 가까운 수치입니다. 이제는 C대학 비뇨기과에 가셔서 그곳 지시에 잘 따르시기만 하면 되시겠습니다. 또 이곳으로 오셔서 상담 받으셔도 됩니다. 편리 할대로 하십시요.” 남 교수의 마지막 상담이였습니다.

 아내와 나는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H읍의 C대학병원의 현관을 감개무량하게 나왔습니다. ‘다시는 오지도 않을 곳이며, 와서는 안 될 일이지.’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하였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C대학병원 비뇨기과의 2월 8일의 강태공교수의 판정결과가 되겠습니다. 7주 34회의 방사선세기조절치료 만료즉후 채혈하여 시행한 피 검사에서는 0.009라는 극소치가 나왔지만, 그로부터 3주가 지난 2월 5일에 채혈하여 실시한 피검사 결과는 과연 얼마의 수치가 나타날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미남형인 강 교수는 여전히 웃는 모습으로 반갑게 마지 합니다.

 “괜찮으셨어요?”

 “예,-----그런데 치료가 끝난 후, 언덕길을 오르려면 양 허벅지 위쪽이 아프고, 배도 배꼽 위쪽이 딴딴하고, 변비도 되고 그래요.”

 “예, 그래요, 그런 증상들은 서너 달쯤 지나면 다 없어집니다. 이번에 피 검사 하셨지요? 그 피 검사에 의하면 수치가 0.01의 아주 작은 수치가 나왔습니다. 이런 수치는 보기 드문 현상으로 완치를 의미합니다. 물론 여러 달 후에 어떤 수치로 변화할지는 알 수 없지만, 수술로 도려 버리는 경우가 아니고 방사선 치료로 이정도 완벽하게 수치가 0에 가깝게 나타나는 경우는 아주 드믄 일입니다.”

 “교수님께서 인도를 잘 해 주신 덕택이라 여기고 감사합니다.”

 아내의 말에,

“아니 뭐, 그런 것은 아니고, 일단은 방사선 치료에 성공한 것이니까, 약은 먹을 필요 없으나 근육운동을 알맞게 하시고, 너무 무거운 것은 피하고, 보행도 경사진 곳은 피하고 평지에서만 하십시요. 앞으로 세밀히 관찰하도록 합시다. 그러면 두 달 후 피 검사를 하고 다시 봅시다.” 

 이리하여 그 지루했던 7주 34회의 방사선 세기조절치료의 평가는 끝이 낫습니다. 7주라고는 하나, 방사선 치료에 들어가기까지의 예비검사와, 치료가 끝나고 평가되기까지의 특진 일까지의 기간을 모두 합하면 5개월이 충분히 넘고, 달 걸치기로 보면 6 개월이 됩니다.

 반년 가까운 세월을 저는 오로지 암과의 투쟁을 위해, 앞만 보고 매진해온 셈인데 그 세월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로 부터 따뜻한 보살핌을 받은 것인가요?

 섭생과 운동을 위한 아내의 희생적인 봉사, 여러 의료진의 따뜻한 손길과 격려의 눈매, 암 환자들의 부끄러움 없고 감춤이 없는 자기 병력의 소개, 이 모든 것들이 병을 앓지 않으면 나타날 수없는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존엄성과 고귀성이며, 인간이 병을 앓아야만 비로소 완전한 인간이 된다는, 토마스 만의 주장에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병을 앓은다는 것은 즐거워 할 일이라고 주장한 다니구찌 모토하루(谷口雅春)의 “생명의 실상”의 한 구절도 동의 하게 되었습니다.

 “생명은 강철이 아니다, 생명은 흙으로 빚은 도자기도 아니다, 생명은 에너지이다. (중략) 소나무가 외부로부터 침해를 입으면, 그곳에 송진을 싸 발라 침해받기 이전보다 훨씬 강한몸통으로 변신하는 것처럼, 인간도 병을 앓으면 앓기 이전보다 훨씬 강한 부분으로 변신하기 때문에, 병을 앓은다는 것은 그 이전보다 더 건강해지는 계기가 되는 것이니 어찌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