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박목철
ㆍ작성일	2017-07-07 12:38

ㆍIP: 118.xxx.100

사람 사는 이야기

만남,
허리를 다쳐 한동안 외출을 삼간 채 칩거를 해야만 했다.
무슨 심한 운동을 하거나 일을 한 것도 아닌데, 텃밭에서 굽혔던 허리를 펴는 순간 뜨끔 하는
느낌과 함께 찾아온 통증 때문에 거동할 수가 없었다. 허리가 아프면 잠자리에서 돌아눕기도
어렵다는 사실을 새롭게 느끼며 잠이 깨곤 했으니 허리의 소중함을 새삼 느꼈다고나 할까,

공재룡 시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시인님께서 아프시니 위로도 드릴 겸 최상근 박사와 같이 찾고 싶은데 좀 어떠시냐고,
언젠가 최상근 박사와 양평이나 용문 장날 만나서 막걸리라도 한잔 나누자고 한 약속도 있고 해서
5일이면 용문 장이니 용문역 앞에서 만나는 게 좋겠다고 약속 날짜를 잡았다.
다행히 치료를 열심히 한 탓에 걷는대는 지장이 없고, 의사 말로는 가볍게 걷는 것이 오히려 허리에
좋다고 걷기를 권장도 받은 터라 가벼운 마음으로 약속 날짜가 기다려 지기도 했다.

예상보다 시간이 덜 걸렸다는 공재룡 시인의 전화를 받고 서둘러 용문역으로 나갔다.
기차를 타고 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차를 가지고 오셨다 해서 아마도 공 시인님 애인 때문에?
아니나 다를까, 차 문을 열자 잽싸게 내려 꼬리를 흔드는 녀석을 공 시인은 대견한 듯 쓰다듬는다.
"애를 집에 혼자 둘 수가 없어서"
이 녀석 前生에 얼마나 善業을 많이 쌓았기에 이런 호강을 하나 싶은 마음에 녀석을 다시 살펴보았다.
얼마나 잘 거둬 먹였는지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털에서 운기가 반지르르하게 흘렀다.
사람이나 개가 역시 주인을 잘 만나야 팔자가 좋다는 말이 맞긴 하다.

최상근 박사가 도착했다. 공시인 이 시계를 보며 한마디 했다.
"얼마나 늦었나 봅시다" 사실 공 시인과 얘기를 나누느라 시간이 지났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시계를 보니 한 십여 분 늦은 것 같다. "지각 한 죄로 오늘 비용은 제가 다 쏘겠습니다"
이렇게 세 명 문인의 용문 장터 탐방은 처음부터 죽이 잘 맞았다고나 할까,
장터에서 제일 먼저 시작한 일은 철판 위에서 노릇하게 익은 개떡을 하나씩 사 먹는 일이었다.
공시인 이 장터에서 개떡을 보자마자 하나 사 먹자 한 것을 최 박사 온 다음에 같이 사 먹자고 미뤘던
일이다,. 종이 컵에 하나 씩 담아 준 개떡을 먹으며 신나게 장터 구경에 나섰다.

요즘 세상에 장터가 무슨? 할 분이 계시겠지만, 장터는 장터 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있다.
장터를 돌아다녀 보면, 아직도 이런 물건을 만들어? 할 만한 옛날 물건들이 눈에 많이 뜨인다.
과자나 사탕도 우리가 어렸을 때 먹던 그런 것들이고, 개떡이나 메밀 전은 그렇다 쳐도 대장간에서
두들겨 만든 투박한 연장이 눈길을 끌기도 한다. 저런 옷을 누가 사 입을까 싶은 여자 옷도 옷걸이에
걸려 시선을 끈다. 고무줄도 굵기 별로 다양하게 걸려 있는 곳이 장터이다. 고무줄은 몸빼라 하여
여인들이 집에서 만들어 입던 허리춤에 넣던 요긴한 물건이지만, 장터가 아니면 볼 수가 없다.
"언제 한 번 물건 사러 와야겠네요" 최상근 박사는 장터가 신기한 모양이다.

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쳐?
장터의 진미는 장터 주막이다. 세 사람은 장터 주막에 자리 잡고 막걸리를 주문했다.
안주는 통닭이다. 웬 통닭 하실지 모르지만, 장터 통닭은 도시에서 파는 그런 세련된 통닭이 아니라
기름 솥에 거칠게 튀겨낸 통닭이다. 한 마리를 순식간에 먹어치우고 한 마리를 더 주문했다.
술은 백 년 전통을 자랑한다는 지평 막걸리이다. "막걸리 날짜 오래된 거 있으면 주세요"
"요즘 분들은 출고 날짜 따져서 조금만 오래되면 안 마시는 데, 술맛을 아시는 분이네"
주모께서, 글 쓰는 글쟁이가 술이 익어야 맛있다는 정도도 모를 리 없다는 사실을 모르시다니,

온 김에 용문사 들러서 점심 겸 한 잔 더 합시다.
누가 먼저 꺼낸 말인지 확실치 않은 것을 보면, 아마도 셋이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을 법하다.
현대인은 가까운 지인이라도 만나기가 쉽지 않다. 모처럼 만났는데 이렇게 헤어지기가 아쉽다는
생각을 모두가 같이했을 것이다. 한가지 미안한 것은 공재룡 시인께서 운전 때문에 술을 마시지
못한다는 것이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서 술자리를 같이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잘 알기에
공 시인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공 시인은 조금도 싫다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용문사 입구 식당 식탁에 앉아 무슨 두루치기인가 안주로 술을 마시며 입담들을 실컷 풀었다.
현대인은 말할 기회가 거의 없어 말할 기회가 궁한 법이다. 왜? 들어 줄 사람이 없기도 하지만
서로가 필요한 말의 수요 공급의 원칙이 맞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 박사는 영문학 박사 출신이고, 공재룡 시인은 고운 서정시를 쓰는 분이고, 소운은 雜學家이니
서로 들어줄 말이 많은 셈이라, 간만에 말하고 싶은 갈증은 충분히 가신 좋은 시간이었다.

술은 맘이 맞는 사람과 마시면 많이 마셔도 탈이 없고 숙취도 없다.
꽤 마셨지만, 최 박사나 소운이나 별로 취하지 않았다. 귀갓길에 휴게소에 들려 찬 커피를 마셨다.
공재룡 시인께서 천 원짜리, 하시더니 7백 원짜리 소시지를 세 개 사서 개에게 까 먹였다.
"애도 더운데 오늘 고생했어요" ㅎㅎ 하기야 우린 술이라도 마셨지만,
공시인 이 챙겨 준 커다란 오가피 술병을 안고 오며 하늘을 쳐다봤다. 아직 저녁별은 뜨지 않았다.
!참 좋은 하루였다.

낮술, 소운/박목철

글쟁이 셋이 모여
용문 장터에서 낮술을 마셨다
술이 고픈 게 아니라
말이 고팠나 보다
언어를 엮어내는 글쟁이들이
할 말이 오직 많을까 만
귀는 없고 입만 가득한 잘난 땅이니,

"막걸리 거품 없이 따는 법"
먹걸리 병 주둥이 잡고 빙빙 돌리며
최상근 시인이 웃었다.
공재룡 시인도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용문 장터에서 낮술 마시고
아비는 알아보게 취했다.

정찬열 2017-07-07 14:41	안녕하십니까 소운 작가님! "저녁별 뜨는 마을" 공재룡 해병 선배 시인님께서 자주 소운 작가님 이야기 자랑을 들었습니다. 문예대학 5기 수학중 최상근 박사님의 교육도 참교육에 더욱 존경합니다 평소에 도 그렇고 존경하신 세분의 용문장터의 정겨운 자리가 새삼 부럽습니다. 더욱 시골장터의 훈훈한 모습은 언제 봐도 우리 일상을 간직하는 사람사는 인심의 자랑거리입니다. 작가님께서 편찬은 허리 가 하루속히 쾌유되시길 빕니다. "사람사는 이야기" 즐겁게 읽었습니다. 감사 합니다.

백낙은 2017-07-07 19:52	"글쟁이 셋이 모여 용문 장터에서 낮술을 마셨다 술이 고픈 게 아니라 말이 고팠나 보다 ............ 아비는 알아보게 취했다." 소운 작가님. 세 분의 우정이 많이 부럽습니다. 평생을 예수쟁이로 살아 소운님 같은 경험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바른 말이지만 예수쟁이들 끼리 모이면 별 재미 없거든요.ㅎㅎㅎ 우리 집 근처에도 5일 장이 서는데 시골이라 그렇게 다양하지 못합니다. 파계라도 해서 막걸리 정도는 해 볼까 하다가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주저 안고 만답니다.ㅎㅎㅎ 훈훈하게 하는 글 감사합니다. 늘 은안하소서.

이석희 2017-07-08 19:32	소운 작가님!!! 공감이 가는 글이라서인지 넙죽 받아 단숨에 읽어내려 갔습니다. 막걸리 병 넘치지 않게 따는 법은 제가 한창 젊었을 무렵 청탁 안 가리고 두주 불사하던 시절 어느 날 방송을 보니 나오더이다. 실제로 실험해 보니 이 위에 더 나은 법이 없어서 농주로 한잔만 겨우 먹는 요즈음도 단골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병 꼭지를 들고 상 위에서 막걸리 병을 뱅뱅 돌리는 방법 말입니다. 말이 나왔으니 말입니다만 막걸리는 우선 값이 싸서 좋지요, 취하기 전에 배불러서 못먹으니 좋지요. 밥은 안 먹어도 되니 다이어트 식품이어서 좋지요 거기에다가 요즘 막걸리는 트림도 안 나옵니다. 만원 버스나 기차를 타도 덜 부끄러우니 술 치고는 으뜸입니다. 제가 너무 나갔나요. 이거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신이 나는 이야기라서 그만...소운님 아주 멋지십니다.

박목철 2017-07-09 08:57	《Re》정찬열 님 , 공재룡 시인님과 같은 해병대 출신인 것은 진작 알았습니다. 두 분다 화끈 하시니 해병대 출신답다는 생각을 한답니다. 부지런하시게 문예 대학도 수강 하셨군요, 수고 하셨습니다. 사실 공시인님은 술을 거의 안 하시니 최박사와 저만 마셨습니다. 언제 기회 되면 정 작가님과 막걸리 한 잔 나누고 싶네요, 날씨가 너무 습해 불편합니다. 몸이 불편하시니 더욱 힘드시겠습니다. 건강하시고 행복 한 시간 되시기를 기원드릴께요,

박목철 2017-07-09 09:02	《Re》백낙은 님 , 위원장님 반갑습니다. 뵈온지가 꽤 시간이 흘렀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술 마시지 말라는 건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표교 할 때 전한 것이 그대로 성경 말씀이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신부님들은 술을 드시더군요, 막걸리에 취해 냄새 풍기며 주정하는 게 보기 싫어서 술 마시지 말라고 했다고 이해 하고 있습니다. ㅎㅎ 위원장님은 술을 드셨다면, 더 멋진 수필가가 되셨을 겁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막걸리 한 사발 권하고 싶어집니다. 너무 나갔나요? 무더운 장마철 건안하시고 좋은 글 많이 기대하겠습니다.

박목철 2017-07-09 09:14	《Re》이석희 님 , 이석희 작가님 반갑습니다. 저도 젊은 시절에는 양주 같은 독주를 좋아 했습니다. 어느날 부터인가 독한 술이 싫어지더군요, 찬 맥주도 별로이고, 막걸리를 마시시 시작 했답니다. 이것도 요령이 생기더군요, 막 출고 된 막걸리는 맛도 없고 트림이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잘 익혀서 먹으면 없던 향도 생기고 맛이 아주 깊어집니다. 느림마을 막걸리로 시험해 보세요, 봄, 여름, 가을, 겨울로 구분하더군요, 봄에 해당하는 술은 향도 거의 없습니다. 저는 겨울이 되도록 익혀서 먹습니다. 예상외로 술 드시는 문인이 없다는 사실이 생소했습니다. 건강하시고 좋은 술 기분좋게 마시며 오래 오래 좋은 글 쓰며 살아야지요, 무더운 날씨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이석희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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