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박목철
ㆍ작성일	2017-02-19 18:30

ㆍIP: 118.xxx.100

술도 익어야 제 맛,

지금이야 아무 때나 술을 마시지만 우리 선조 님들은 술을 마시려면 마시는 이유가 있어야 했다.
아직도 옛 풍습의 흔적을 우리의 술 마시는 버릇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술꾼들도 술 마실 때는
꼭 술 마시는 명분을 찾아서 술을 마신다. 누가 승진을 했다거나, 생일이라거나, 먼 길을 떠난다거나
이유는 갖가지이고, 정 이유가 없으면 요즘 누구 기분이 우울한 것 같으니 위로해 주자는 것도
술자리를 만드는 훌륭한 명분이 되기도 한다. 암튼 술을 마시자고 하면, "오늘 무슨 날이야?"
으레 묻게 되는 게 우리 정서이다.

지금은 공장에서 생산된 술이 주변에 널려 있고, 술 마실 술집도 다양하게 많이 있지만
옛날에는 특별히 집에서 담근 술이 아니면 술을 대할 기회가 그리 흔치 않았다.
술은 대게 특별한 날에 쓰려고 날짜를 맞춰 담그게 마련이고 가장 신경 쓰는 것이 술을 써야 할
날에 가장 알맞게 익도록 날짜를 조절하는 일이었다.
우리가 술을 마실 때 무슨 날이라 술을 마신다는 명분은 이런 오랜 습관에서 생긴 관습이고
우리가 마신 술은 보관 기간이 짧은 양조 술이 대부분이라 잘 익은 술은 술꾼의 행복이었다.

우리나라의 웬만한 양반가에서는 집집이 나름의 독특한 가양주가 전통을 이어오고 있었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전쟁도 거치고 하는 통에 먹고 살기도 어렵다 보니 술을 담그는 것을
나라에서 엄격하게 금했고, 혹 집에서 밀주를 담그다 걸리면 엄한 벌을 받기도 했다.
이러다 보니 술이 익는다는 말은 생소한 단어가 돼 버렸다. 공장에서 생산되어 술의 도수를
일정하게 조정한 술이니 술이 익고 뭐고 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일본을 다녀 보면 가는 곳마다 전통 양조장이 맥을 이어오고 있어서 부러웠다.
쓰는 술의 원료도 다양하고 오랜 세월을 거치며 개발된 양조 기술로 훌륭한 전통주를 생산하고
있으나, 우리의 술은 전국 어디를 가나 술맛이 별반 다르지 않다.
국가에서 관리하는 주정(알코올)을 공급받아 물 타고, 감미료와 향신료로 맛을 내니 술맛이 다를 수가
없는 한계가 있다. 막걸리도 성분을 보면 어느 곳의 막걸리나 첨가물이 비슷하니 다른 맛을 기대하기
어렵다. 일본의 양조장 술을 보면 알코올 도수도 몇 도에서 몇 도까지로 표기된 것이 많다.
효모가 술을 익히는 것이니 술의 도수도 사람이 정할 일이 아니다.

익은 술의 맛을 즐기려면, 막걸리가 가장 적합한 술이다.
막걸리를 마시면 제일 거북한 일이 트림이 자주 나오는 것인데, 이는 발효와 관련이 깊다.
소운의 경험에 의하면, 막걸리는 생산된 후 일정 시간이 지나야 잘 익어서 술맛이 좋아진다.
술맛도 좋아질 뿐만 아니라 은은한 향까지 더해지고 마시고 난 후 트림도 거의 나지 않는다.
요즘 신세대들이 출고 날짜를 따져 조금만 기일이 지나면 피하는 통에 양조장에서도 덜 익은
술을 내놓게 마련이다. (술은 과도하게 익으면 식초로 변해 시어서 먹기가 어려워지지 상해서
못 먹지는 않는다는 점을 아시고 맛있게 익은 술을 드시기 바란다)

소운은 새로운 술을 마시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다.
처음 본 술을 사게 되면 어떤 맛일까? 하는 설렘까지 있으니 애주가이긴 한 것 같다.
대부분 막걸리가 아스파탐을 과도하게 넣어서 사이다에 가깝다는 게 참 아쉽다.
감미료가 들어가지 않은 술을 찾다 보니 아직은 느림** 막걸리 외에는 보지 못했다.
(느림** 막걸리는 병에 봄, 여름, 가을, 겨울, 로 술의 익는 과정에 따라 맛이 다름을 알리고
있었고 소운은 겨울에 해당하는 잘 익은 술이 술맛이 좋았다. 봄은 향도 나지 않았다)

언젠가 한 번 글을 쓴 적이 있지만, 감칠맛이 나는 막걸리는 환상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제주도의 조 껍데기 술인데, 지금은 반출이 되지 않는다고 하고, 모든 제주도의 술이 그 맛인지도
확실치 않다. 제주도 전통주를 주문해 먹어 봤는데 값보다 신통치 않아서 실망했다.
충청도에서 생산되는 밤을 첨가한 막걸리, 강원도에서 생산되는 옥수수를 첨가한 막걸리 등이
약간 감칠맛을 흉내 내고 있어서 소운은 이런 막걸리를 아쉬운 대로 마시고 있고,
요즘은 양평군 모 지역에서 생산되는 술을 즐겨 마시는 편이다.

술꾼이 술 익는 냄새에 행복을 느낀다고 하지만 지금은 어디서도 술 익는 냄새를 맡을 수가 없다.
소운은 달지 않은 막걸리를 사서 집에서 익혀 먹는다. -술이 익는다- 말 자체가 참 정겹다.
옛 분들은 장독에서 술이 익으며 내는 소리까지 귀 기울이며 술 익는 냄새에 취했다고 한다.

선조 때 대신이며 많은 가사를 쓰신 송강 정철은 대단한 애주가였다고 한다.
낮에도 술이 얼큰히 취해 갓을 삐딱하게 쓰고 업무를 보기도 했다고 했다.
부정적 평가도 많은 문인이지만, 술을 즐기며 가난하게 살다 간 청렴한 분이기도 하다.
그분이 쓰신 권주가 장진주사의 일부를 발췌해 보았다.

한 잔 먹세그려 또한 잔 먹세 그려,
꽃 꺾어 셈하며 무진 무진 먹세 그려,
-중략
누런 해, 흰 달, 가랑비, 굵은 눈, 소소리 바람 불제
뉘 한잔 먹자 할고,
-장진주사 발췌-

세상이 살벌하다.
한잔 술에 몽롱한 눈으로 보면 네 편도 내 편도 다 정다워 보이지 않더냐,

이석희 2017-02-19 19:30	소운님! 참 멋지신 분이십니다. 저도 젊은 시절에는 소문난 술꾼이었는데 지금은 단주를 하였습니다. 고향집에 가면 모친께서 용수를 박고 떠다주신 표주박에 담긴 술맛을 잊을 수가 없지만 그 어른도 가시고 정말 옛 추억 한 조각이 되었습니다. 저도 꼭 막걸리를 자주 먹었습니다. 어느 술도 그 맛을 당할 수가 없습니다. 양주는 비싸기도 하지만 우선 써서 못먹고 소주는 취해서 실수할까 싶어서 못먹고 막걸리는 배불러서 못먹지 실수할 일은 없으니 안심하고 먹지요. 어쩌면 내가 먹은 막걸리를 모았다면 한 마지기 모내기는 족히 할 것 같습니다. 아무튼 술 이야기라면 날밤을 새워서 해도 모자랄 것입니다. 눈이 번쩍 뜨일만큼 재미있고 멋드러진 소재로 짜여진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경렬 2017-02-19 19:35	술에 취해 보았다면 내리신 글맛을 아련만~~ 기분 좋을 만큼만 든다면 분명 술은 약이라 합니다. 무짐무진 먹으면 몸상하고 정신마져 혼탁하고~~ 그러나 걱정마셔요. 술친구는 잘한답니다. 마시지 않아도 술취한 친구와 함께 취하는 기분이었답니다. 잘익은 술이 뒤끝도 깨끗하다고 들었습니다. 고향집 부뚜막에 항상 조그만 술단지가 서너개씩 익어가며 시큼한 냄새가 부엌에 배어 있었습니다. 걸러낸 찌기미에 사카린 타먹는 재미도 쏠쏠 했지요. 즐거운 추억에 잠겨본 시간입니다.

김종덕 2017-02-19 21:48	박목철 작가님, 안녕하십니까? 수주 변영로 선생님(酩酊 40년)을 생각나게합니다. 술은 사람을 알아본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님께서 빚은 술을 언젠가는 같이 할 수 있는 여가가 생길 수 있기를 당부드립니다. 글을 술로도, 술을 글로도 표현할 수 있기를, 함께 할 수 있기를 앙망해봅니다. 건강하시고, 감사합니다.

김강좌 2017-02-19 23:37	저도 어렸을때 아버지술심부름 다녀오다가 주전자 끝에 입을대고 맛을 보기도 하고, 커서는 가끔씩 술맛도 모른 채 주위의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다보니 분위기에 기분이 들떠서 덩달아 마셔보곤 했습니다~ 술도 제대로 익어야 제맛이 나듯이 사람도 제대로 익어야 성숙해지리라 생각해봅니다~^^ 기분좋은 미소 지으며 행복한 머무름합니다 ~^^*

정찬열 2017-02-20 21:49	소운작가님!"술도 익어야 제맛" 술에대한 좋은글에 덩달아 흥미롭습니다. 유년시절 양조장 막걸리가 심심하다고 특별히 부탁하여"독한모르매"술에 취에 끙끙대든기억과 언젠가 제주도에 출장갔다 비행기안에서 옆자리 할머니가 사오시던 조껍데기 술이 비행기 고도가높아지면서 폭팔하여 정장을 했던내가 흠뻑 뒤집어쓴 일화에 해병대 기질자랑끝에 서울육삼빌딩 대회의장에서 다음날 동력자원부 장관상을 받아야하는데 그만 스물세병 소주 를 막장까던 기억은 영영 잊혀지지가 않아서 입니다. 술에 얽힌 정보에 감사히 배독했습니다.

여행은 외로워야 한다.

휴대폰에서의 해방(日曜放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