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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이도연 소설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도연
ㆍ작성일 2020-11-18 12:36
ㆍIP: 175.xxx.88
공주 "마곡사" 가을 풍경 속으로
공주 "마곡사" 가을 풍경 속으로

이 도 연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가을은 목덜미를 스치는 바람이 제법 차다 아침 안개가 도시를 부드럽게 감싸며 소리 없이 고여 있는 아침에 또 다른 세상의 풍경과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선다.

자욱한 물안개가 피어오르며 고요한 적막 속에 깊어 가는 가을 끝 무렵 마곡사는 단풍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능선에 자리 잡은 나무들은 가을의 끝자락에서 바스락거리며 말라가고 전각 주변과 길가에 앉은 나무는 온몸이 붉게 타오르며 절정을 향해 가고 있다. 멋스러운 전각과 어울려 가을 햇살이 이파리를 어루만지며 잘게 부서져 내리면 아름다움이 더욱더 눈부시다.

수북하게 쌓인 낙엽은 발밑에서 화들짝 놀라 소리를 내고 불어오는 바람에 마른 잎사귀는 비처럼 날리며 마곡천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는 시선 끝에서 가을이 또 저만치 가고 겨울의 문턱으로 다가 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마곡사는 공주시 사곡면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로 2018년 6월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유서 깊은 도량이다.

태화산 자락에 둥지를 튼 천년 고찰은 아늑하고 따스했으며 경건했다. 마곡천 지류를 따라 천천히 걸어 올라가다 경내에 이르자 해탈문(解脫門)이 보인다.
발걸음이 해탈문을 지나면 내 삶의 지혜와 어리석고 미욱한 마음이 보리심으로 가득하여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삶의 욕망과 찌꺼기를 내려놓고 새로운 나로 태어나기를 바라며 해탈문을 밟는다.

해탈문안에 모셔진 금강역사의 두 눈이 나의 헛되고 헛된 욕심을 꾸짖어 커다란 눈을 부라리며 내려다본다.
한 분은 "아"하고 입을 벌리고 우주의 문을 열고 한 분은 "옴" 하며 입을 다물어 삼라만상 우주의 문을 열고, 닫으며 불법을 수호하고 있다.

해탈문 옆에 단정하게 지은 영산전은 자연석 기단 위에 덤벙 주춧돌을 세우고 정면 5 칸 측면 3칸으로 지은 맞배식 건물이다.
마곡사에서 가장 오래된 불전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주불이 아니고 천 불을 모셔 놓았다.
전면이 화려한 연화두형으로 빛바랜 단청에서도 화려함이 스며 있다. 영산전(靈山展)에 걸려 있는 현판은 세조의 어필로 이곳에 와서 영산전이라 쓰고 친히 하사하신 것이라 한다.

영산각 앞마당은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고 울타리 옆으로는 단풍나무가 바람에 흐드러지며 붉고 노란색으로 물들어 눈 부신 빛으로 피어나 길손의 발걸음을 잡는다.

마곡천(馬谷川) 위로 비스듬하게 몸을 누인 천년 고목 옆으로 극락교(極樂橋)가 보인다.
극락교 저편 불국정토의 땅에 멀리서 보면 두 개의 불전을 포개 놓은 듯한 대광보전(大光寶展)과 대웅보전(大雄寶展)이 사천왕문(四天王門)과 해탈문(解脫門)으로 이어지는 동선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다.

대광보전의 팔작지붕 위로 이름 모를 산새가 울음 한 조각을 떨어트리며 날아간다.
청정함이 극에 이르러 광명에 걸림이 없으니 허공에 머물러 고요히 세상을 비출 뿐이라 속세에 물러나 세상을 바라보니 모두가 부질없는 꿈결 같은 일이라 말하며 대광 보전은 적막한 푸른 하늘 아래 단정하고 정갈하다.

대광보전은 마곡사의 본전으로 진리의 상징인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으며 앉은뱅이가 진리의 보리심을 얻어 두 발로 걸어 나왔다는 이야기를 상징하는 참나무 돗자리가 깔려 있다.
창호에는 다양한 꽃 살 무늬가 장식되어있고 가운데 칸 기둥 위로는 용머리를 조각해 놓아 엄숙하고 정교하게 꾸며 있어 건축미가 돋보이는 조선후기 건축물의 걸작이다.

숨결을 조용히 다스리며 언덕을 오르면 대웅보전이 보인다.
티끌 같은 찰나의 세상을 살다 가는 것을 무얼 그리 근심이 많은지 근심은 욕심을 부르고 욕심은 욕망을 통하여 나를 괴롭히는 결과로 이어지는구나! 마음을 편안히 하고 무소유의 마음으로 세상 앞에 참회의 눈물로 나를 뒤돌아보자 대웅보전의 커다란 진리와 세상을 향한 자비로움으로 석가모니불을 참배한다.

 건립 당시 대장전으로 지어졌으나 기록에 의하면 나중에 대웅전으로 바뀌었다. 대웅보전의 현판은 통일 신라시대의 서예가 (金生)의 필적이라고 전해지며 천년을 살아 꿈틀거리는 현판의 필체가 석가모니불의 웅대한 불법의 힘으로 파란 하늘 아래 마곡사 경내를 내려다보고 있어 경건한 마음으로 합장하여 고개를 숙인다.

대웅보전 옆 오솔길 따라 걷다 보면 마곡천이 명경지수(明鏡止水)처럼 고이다 흐르고 물길 위에 징검다리를 놓아 한걸음한걸음 맑은 물에 마음을 정갈히 하여 걸어가며 돌계단을 올라 냇가 언덕을 오르자 백범 김구(百凡 金九) 선생이 이곳에서 삭발을 하고 출가를 했다는 삭발 터가 나온다.

이미 결심은 하였지만, 칼날이 머리를 스치며 상투가 냇가의 모래 위로 툭 떨어질 때 눈물도 함께 떨어졌다는 글이 쓰여 있다.
백범이 꿈꾸던 속세의 눈물이 떨어지고 힘없고 나약한 이 땅에 사는 민초들의 서러운 눈물도 함께 떨어졌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솔밭 고샅길 옆으로 김구 선생이 걸었다는 명상길을 돌아 마곡천 맑은 물길을 따라 천년 고찰 마곡사에 피어난 만산홍엽(滿山紅葉)이 흩날리는 가을 속으로 걸어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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