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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이도연 소설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도연
ㆍ작성일 2021-02-01 10:56
ㆍIP: 175.xxx.88
《동면의 겨울 숲에서》
《동면의 겨울 숲에서》

겨울바람에 얼어버린 숲을 따라 오르는 길은 건조하고 메마르다.
숲의 속살들이 말라버린 갈비뼈 사이로 훤하게 들여다보인다.
가을의 알록달록한 풍요는 찾을 수 없고 정월의 겨울바람만 숲속 가득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썰렁한 숲의 나무들이 흔들리는 풍경은 을씨년스러운 바람처럼 다가온다.

멀리 보이는 나지막한 산봉우리에는 잔설이 커다란 잣나무 우듬지 사이로 은백색의 빛을 번뜩여 뿜어내고 있다.
겨울 추위에 얼었다 녹아내린 오솔길은 때마침 곱게 내리쪼이는 정오의 햇볕 아래 습기를 머금어 힘없이 녹아내려 질척하게 물기를 토해낸다.

겨울들과 산자락이 어우러진 생태공원 팻말 너머로 화단을 예쁘게 단장하고 길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유혹하고 사랑을 듬뿍 받았을 꽃이며 껑충하게 자라 누런 수술을 머리에 이고 하늘바라기하고 있는 갈대가 빛바랜 야윈 모습으로 흔들리고 들풀이며 나뭇가지들이 성글게 자리를 잡고 불어오는 바람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겨울 숲은 동맥의 힘줄처럼 펄떡이며 살아있다.
여름에 피어나 가을 무렵 씨방을 부풀려 말라버린 누런 꽃 속에는 살아 숨 쉬는 숨결들이 소록하게 들려온다.
겨울 동면을 하며 숨죽여 생명을 품은 씨앗의 숨소리가 매서운 칼바람 부는 추위에 몸을 사리고 새큰거리는 생명력으로 씨방 속에서 다가올 봄날을 기다려 웅크리고 인내하며 잉태를 위한 시간의 산고를 이어가고 있다.

나무는 생명의 근원인 뿌리를 얼어버린 동토의 거죽 아래로 깊이 몸을 낮추고 그 위에는 가을로 물들다 겨울바람에 말라버린 이파리를 떨 구어 푹신한 이불을 만들어 발목 위까지 덮어 놓았다.
나무도 생각이 있어 저마다의 방법으로 월동 준비를 하였나 보다.

나무의 월동에 깜짝 놀란 것은 여름과 가을의 숲속 나뭇가지에 둥지를 틀어 은신하고 새끼를 부화시킨 여름 철새인 꼬리가 길어 우아해 보이는 삼광조의 둥지이다.
떨어져 버린 나뭇가지 사이로 빈 둥지가 떠나버린 삼광조를 그리워하며 주인 잃은 슬픔으로 쓸쓸하게 민낯을 드러내 놓고 덩그러니 매달려 있다.
겨울의 긴 동면이 지나가고 나면 주인 없는 둥지에 또 다른 생명이 날아들어 알을 품어 부화하여 새 생명을 잉태할 것이다.
겨울 숲은 갈잎 색으로 물들어 있고 얼어버린 흙의 표면 아래에서는 작은 씨앗들의 이야기인 생명의 술렁거림이 살금살금 들려오고 있다.

흐르다 멈추어 버린 계곡에는 구들장같이 두꺼운 얼음이 꽝꽝 얼어 있고 냉혹하게 얼어버린 얼음 밑에서도 동면의 생명은 살아 숨을 쉬고 있다.
물속 바위틈에 몸을 감추고 몸의 움직임을 최소화하여 에너지를 최대한 아끼고 있는 물고기는 시냇물 소리 들려오는 봄날이 오길 기다리며 해빙의 봄날이 오면 사랑을 찾아 물길을 오르고 계곡에 생명의 씨앗을 뿌리는 산란을 시작할 것이다.

동면하는 겨울의 숲은 침묵과 고요 속에 살아 숨 쉬고 숲의 여기저기를 들여다보면 꿈틀거리며 새 생명을 준비하는 분주한 삶의 모습이 햇살이 스미듯 보이고 숲속을 귀 기울여 보면 숲의 소리가 부서지는 봄날의 햇살처럼 수선스럽게 들려온다.
겨울 숲은 꿈틀거리며 살아있다. 긴 겨울 북풍한설 엄동설한의 추위를 피해 깊은 동면을 하며 희망의 날을 기다리는 인내의 통증을 감내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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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64 욕망과 절망 이도연 2021-02-08
63 《동면의 겨울 숲에서》 이도연 2021-02-01
62 《해 저무는 바다에 세월을 묻다》 이도연 2021-01-26
61 《산 그리고 인생》 이도연 2021-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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