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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조명래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조명래
ㆍ작성일 2024-02-16 13:33
ㆍIP: 183.xxx.251
독거




독거(獨居)     / 조명래


내 방식대로 내 몫으로 잘 정리되어 있었고, 그 속에 온전히 젖어 있었던 일상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고 홀아비 남동생 집에 다니러 온 누나처럼 부산만 떨다가 그녀는 또 홀연히 떠났다.
아쉬움도 외로움도 이제는 만성이 되어간다.
차라리 혼자가 편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이젠 다시 나만의 시간, 조용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아무 간섭 없이 향유할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긴 해도 영영 떠난 사람이 아니라는 데에 위안을 한다.

퇴근을 하고 운전해 오면서 한참을 생각했다. 오늘 저녁은 무엇으로 해결할 것인가를.
여기쯤에서 결정을 해야 한다. 국밥집으로 갈 것인지 국숫집으로 갈 것인지를. 국밥집과 국숫집은 혼자 가도 덜 부끄럽고 실속도 있어 좋다. 그래서인지 나 홀로 오는 사람들이 많다. 가족과 지인들끼리도 오지만 남자 중늙은이들도 많다. 어떤 날은 독거노인 반상회 하는 날 같은 때도 있어 혼자 실소를 머금을 때도 있다. 자의건 타의 건 우리 사회에 독거노인이 많다는 이야기다.

이른 아침에 잠을 깨고 멀뚱히 천장을 쳐다본다.
오늘도 혼자라는 생각에 외로움이 밀려오고 머리가 공허하다.
아침 차릴 생각으로 잠시 머리를 굴린다.
인기척이 없는 아래층에선 빈 공기만 휑하니 올라온다.
오늘따라 싱크대의 물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아침이다.
오늘도 아침 해는 동쪽에서 뜨고 있었다.

동네 마트에서 햇반 몇 개 사서 들고 집을 향해 걸어간다. 희미하게 어둠이 깔린 골목이 오늘따라 을씨년스럽다.
대문 앞에서 열쇠를 찾는다.
초인종을 눌러도 문을 열어줄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외로움이 엄습해 온다.
새삼스럽게 가족이란 단어를 뇌어본다. ‘부부를 중핵으로 그 근친 혈연을 인연으로 구성된 집단’이라 한다.

큰딸은 지방 고등학교를 나와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어렵잖게 대기업에 취업이 되었고, 작은딸은 교대를 나와서 서울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 부부한테 자식 잘 키웠다고 부러워하는 사람도 가끔 있었다.
이 핑계 저 핑계 차일피일 출산을 미루던 큰딸이 일곱 살 아래 터울인 동생이 임신을 하자,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는 사십이 다 되어 출산을 하고부터 우리 부부의 노후생활에 중차대(重且大) 한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어렵게 출산을 한 큰딸은 자기 엄마를 우렁각시로 착각하는지 시도 때도 없이 불러올리더니만, 급기야 불안과 우울증이 온다는 핑계로 출산 후 삼 년이 되어 갈 때쯤 재취업을 했다.
우려하는 우리 부부에게는 돌봄이를 구해서라도 저희들이 알아서 한다고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독거노인의 길로 들어서고 있는 줄은 몰랐다.
한 여자가 직장 생활을 하면 다른 한 여자의 희생이 절실하게 필요한 우리나라 사회 구조상 내 짝지는 큰딸의 볼모로 잡히고 말았다.
뱃속에서부터 할미를 인질로 삼은 손자는 딸과 사위의 공모자로 지능이 점점 발달해 가고 있다.
내가 지진아처럼 뒤늦게 위기감을 감지했을 때는 안마의자와 자전거를 뇌물로 받은 후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누라까지 딸의 동조자로 변해가고 있다.

사십여 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한 아내가 퇴직을 했을 때, 나는 거창하지는 않지만 우리 둘만의 노후 계획서를 보여주며 꿈에 부풀어 있었다.
두 딸도 출가시켰고 내가 하는 사업도 나름대로 안정이 되어 있었기에
“이제부터는 해피 인사이드다.“ 하고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었는데...
노경(老境)에 한유(閑遊)는 즐기지 못할망정 이 나이에 이게 무슨 팔자인가 싶다. 외동아들한테 시집가서 아기 갖지 않는다고 지청구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중이다.
얼마 전 나와 비슷한 처지의 친척 동생이 하던 말이 생각난다. 끝이 안 보인 다고, 그나마 지금 어린이집에서는 시간을 대충 맞춰 주지만 학교에 들어가면 보호자 손길이 더 필요하다는 그 말이 가슴을 옥죄어온다.

늙으면 홀로서기 연습을 해야 한다 하지 않던가 이참에 억지 춘향이일망정 제대로 홀로서기 연습 좀 해보자. 세탁기 돌리기, 전자레인지, 오븐 돌리기, 진공청소기 사용도 점차 숙달이 되어 가고 있다.
이젠 김치찌개, 된장찌개 정도는 곧잘 한다.
딸 집에 인질로 잡힌 아내가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무급에 비정규직으로, 한 달에 몇 번씩 천 리 길을 오르내리는 아내가 안
스럽다.
본인은 좋아서 한다지만 어찌 자기 집에서 생활하는 것만 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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