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조명래
ㆍ작성일	2024-02-21 14:48

ㆍIP: 183.xxx.251

상규

상규 /조명래

산 산 산이라면 지리산.
강강 강이라면 덕천강.
저 높은 산 이 맑은 물
단군 선조의 거룩한 창조 이래 면면 오천 년!
초등학교 졸업식 때 내가 졸업생 대표로 읽었던 답사의 첫머리 글이다.첩첩산중 중중 산중, 긴장돼 두 개만 연결하면 동서로 걸쳐질 것 같은 산골 동네 사방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지리산 자락, 앞을 봐도 뒤를 봐도 온통 산 뿐이다. 이곳 산골 덕천 강변에 기다랗게 자리한 동네 그 이름이 서당골이다.

덕천강은 지리산에서 발원하여 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에서 흘러내린 강물과 시천면 중산리에서 흘러 내려온 강물이 합 처져 진주 남강으로 흐르는 강이다.

조식 남명선생의 시
”두류산 양단수를 옛듣고 이제 보니
도화 뜬 맑은 물에 산영조차 잠겼네라
아이야 무릉이 오디오 나는 연가 하노라”

이 시의 양단수가 바로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쪽에서 흘러온 물과, 삼장면 유평리를 거처 내려오는 물이 합쳐진 곳을 보고 남명선생이 읊은 시다.

상규는 내 고향 친구다.
상규는 동네 중간쯤 강변에 살았고, 우리 집은 물레방앗간을 하는 관계로좀 떨어진 곳에 살았었다.
이곳 산골에서 초등학교 동창인 상규와 나는 초등학교를 같이 다녔다.
선천적으로 키가 좀 작고 왜소한 체구를 타고난 상규는 집안 형편상 어릴 적부터 집안일을 적잖게 도와야 했다.
어린 나이지만 소 풀도 베어 나르고 지게 지고 나무도 하러 다녔다.
농사 철이 되면 학교도 결석하고 농사일을 도와야 했다.
반면 나는 우리 부모가 정미소를 하는 관계로 상규와는 상대적으로 하는 일이 별반 없었다.
3킬로 정도를 걸어 다녀야 했던 초등학교 등하굣길에서 상규는나한테 괴롭힘도 꽤 많이 당했었다.
한 번은 상규가 자기 어머니한테 내 비행을 고하는 일이 있었다.
무섭기로 소문난 상규 어머니가 우리 방앗간 뒤 논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는 나를 붙잡아서 치마 밑에 넣고 오줌을 쏴 버릴 것이라고 하시면서 나를 당신의 치마 밑으로 잡아넣는 바람에 혼비백산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산에서 나서 산에서 자라온 내 친구 상규와는 추억도 많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안일을 돕던 상규는 서울로 갔다.
엿 공장에 배달원으로 취직이 되어 간다고 고향을 떠났다.
나도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을 떠났다.
우리 둘은 그때 헤어진 후, 그 뒤 한동안 서로의 소식을 모르고 지냈다.
그 후 나는 제대를 하고 친척이 운영하는 제빙 냉동공장에 관리 책임자로 근무하고 있었을 때였다.
상규가 내 있는 곳을 수소문해서 찾아왔다. 반가웠다. 우리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그동안 궁금했던 많은 이야기를 했다. 한참을 망설이던 상규가 내게 취직 부탁을 했다.그때는 지게차 없이 손수레로 입출고 작업을 해야 했던 시기였다. 그래서 사람을 많이 쓰는 시절이라 큰 어려움 없이 상규를 내가 근무하는 회사에서 같이 근무하게 할 수 있었다.그렇게 좋은 환경은 아니었지만, 회사 관리사도 제공해 주었다.

성실하고 근면한 상규는 몇 년이 지난 후, 작업반장을 맡아서 근무하게 되었고,상규 처는 해산물 가공 공장에서 돈내기 일당을 받는 일을 했다.상규 처는 주위에서 소문이 날 정도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악착스럽게 일을 해서 상규네는 점차 기반을 잡아갔고, 딸 둘 낳고 아들까지 그곳에서 낳았다.아들 낳았다고 나한테 자랑하면서 자전거 타고 미역 사러 가는 뒷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후 나는 내 사업장을 갖게 되어 그곳에서 퇴직을 하였다.상규도 고종 형님의 주선으로 시청 청소과에 취직이 되었다.쓰레기 수거도 하고 재활용품 수거하는 일이었다.공직자 되었다고 나한테 자랑했던 기억이 난다.그러던 어느 날 초등학교 총무한테서 상규가 크게 다쳐서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보니 재활용 수거차 에서 떨어졌단다.적재함 위에 타고 있었는데 수거 작업 후, 미쳐 자리도 잡기 전에 운전기사가 출발하는 바람에 사고가 난 모양이다.수술과 재활 치료를 받고 간신히 정년까지 채우고 퇴직을 했는데, 그 후유증이 노년에 와서 심상치가 않는 것 같았다.

상규는 퇴직 후 처남이 하던 블루베리 농장을 인수해서 농사를 지으면서 무리한 일을 한 것도 부실한 허리에 영향을 많이 준 것 같다.급기야는 동창회 모임에 와서 앉아 있는 것도 힘들어하더니만 얼마 전 다시 수술을 했는데, 재수술 후 이 년이 지났는데 병은 더 악화가 되는 모양이다.무엇보다도 부부간 사이도 많이 안 좋은 것 같았다.

얼마 전 통화할 때, 너가 있는 곳에 이사를 해서 독립해 살고 싶은데 경제권을 다 쥐고 있는 집 사람이 허락을 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빈농의 차남으로 태어나서 평생 동안 죽어라 일만 하다가 이젠 좀 편안하게 노년을 보낼 때인데 안타깝다.
유난히 큰 눈에 서려 있는 상규의 힘든 모습이 나를 힘들게 한다.
자기가 직접 밥을 지어 먹는다기에 우리 회사 건어물 창고에 있는 식재료를 이것저것 챙겨 보냈더니 고맙다고 하면서 울먹이던 목소리가 아프게 다가온다.

시냇가 다리 밑에서 라면을 끓이다, 너 생각나서 전화한다던 상규의 활기찬 목소리가 그립다.

홍성기 2024-02-22 23:51	존경하는 조명래 작가님 어릴적 친구와의 추억담을 맛갈나게 쓰셨네요 특히 “치마 밑에 넣고 오줌을 쏴 버릴 것이라고 하시면서 나를 당신의 치마 밑으로 잡아넣는 바람에 혼비백산한 기억” 이 대목에서 한참을 웃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들로 많은 독자들의 큰 사랑 받으시길 기원드립니다.

장계숙 2024-03-01 16:00	인연의 삶이 때론 내 삶 속에 기쁨이 되기도 하고 괴로움을 주기도 하니 더불어 사는 일이 그렇듯 내맘처럼 평온하거나 쉽지만은 않습니다. 고운 기억 속의 이야기.... 함께 하며 마음 갈래를 더듬어 봅니다. 감사히 배람했습니다.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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