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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래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조명래
ㆍ작성일	2023-06-09 14:26

ㆍIP: 183.xxx.251

요강(尿鋼) 예찬

요강(尿鋼) 예찬

조 명 래

원숙한 여인의 잘생긴 둔부를 연상케 하는 이 명품은 백자의 곡선이 안으로 휘어져 실용선 에서 멈춰 있다. 어색하지도 불안전하지도 않으면서 오래 보아도 싫증이 나지를 않고 안정감도 탁월하다.

어머니는 친정에 아버지는 처가로 동반 나들이 가시던 날 그 기회를 노린 누나 둘은 윗동네 친구 집으로 외박을 나갔다.
그날 밤 나는 또래 누이와 집을 지키게 되었는데 어둠이 발등을 밟는 시간이 지나고 산자락을 붙안은 삿갓배미 논에서 어미 찾는 새끼 고라니 울음소리가 잦아들 때쯤에, 오줌이 마려워 잠에서 깬 나는 윗목을 더듬다가 아뿔싸 요강을 챙기지 않았다는 생각에 선잠이 날아갔다.
동짓달 그믐 그 칠흑 같은 캄캄한 밤. 오줌은 터질 듯 마려운데 무서움에 밖에 나갈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날의 무섭고 고통스러웠던 밤은 지금도 기억에서 오래도록 남아있다.
그날 이후 나는 아래채 헛간과 우리 방까지 대롱을 연결하는 공상을 오래도록 구상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요강은 단군 이래 최고의 창조물이자 발명품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반만년의 역사 이래 이런 창조물이 있었던가?
서민들이 밥은 굶어도 생활필수품인 이 요강은 있어야 했다.
다만 서민과 부자의 차이는 있었다. 부자로 사는 사람들은 놋 요강을 서민들은 사기요강을 사용했다.
요강에 새긴 무늬도 부와 수명을 상징하는 그림들이 대부분이다.
요강에 그림을 그려 넣었던 것은 이 요강의 용도와 무관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새색시가 시집갈 때 혼수품에서 부디 빠지지 않았던 것도 이 요강이다.
이 앙증맞은 것이 여염집 마님 가마에도 오르고 안방에서는 떠억하니 윗목 가장자리를 차지했다.
가마에 오를 때에 목화솜을 꼭 챙겨야 했던 것은, 요강에 오줌을 눌 때 오줌 누는 소리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이 명품은 상대의 덩치가 크든 작든, 분 출력이 강하건 약하건 두 개의 분출구를 흩트림 없이 받아내고, 어떤 하중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희대의 이 명품 앞에서는 남자는 꿇어앉아야 하고 여자는 깔고 앉아야 하는 구조로 명품 중에 으뜸이며, 남존여비 사상의 타파 물이었다.
직경이 한자도 되지 않는 이 원의 오묘함이란, 신비롭기까지 하다.
이 속에서 소나기가 쏟아지고 파도 소리가 들려오고 천둥이 울린다.
이 작은 지구는 밤사이 여자의 엄밀한 곳과 대화도 하고 선잠에서 깬 아들놈의 물총 세례도 흐트러짐 없이 받아낸다.
이 요강이 요즈음은 인테리어 품목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돈을 보관하면 재수가 좋고 복이 온다고 한다.

아침이 오면 이 요강 단지는 누나들의 가슴에 안겨 조심조심 아래채 헛간으로 옮겨져서 하룻밤의 역사를 비운다.
밤새 가둬두었던 파도 소리와 천둥소리, 소나기를 비운다.
아차 잘못해서 이 둥근 제국이 땅바닥에 떨어지는 날에는 집에서 쫓겨 날 각오를 해야 한다.
개울가나 우물가에서 설거지를 할 때도 제일 먼저 요강을 씻어서 안전한 곳에 모셔두고 나머지 설거지를 마무리했다.

낮 한때는 축담 모퉁이로 옮겨져 어머니와 누나들의 엄밀한 곳을 감쌌던 개짐을 보관하는 용기로 주간 임무에 임한다.
매일같이 밤의 역사를 갈아 쓰는 요물단지, 이것은 지구이며 우주다.
블랙홀이다.

황영칠 2023-06-10 09:01	존경하는 조명래 작가님 작가님의 첫 작품 '요강예찬 ' 수려한 문장으로 써 내려간 매끄러운 문체는 감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하찮게 생각했던 요강의 중요성과 깊은 의미 놀라운 표현에 아연실색 했습니다. 좋은 글 오래도록 잊을 수가 없을 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정연석 2023-06-14 15:53	존경하는 조명래 작가님 요강 예찬 글 잘 배독 하였습니다 인간 세상에서 아주 작은 물건이라도 쓰임이 있고 요긴하다면 그 가치는 대단하다고 봅니다 요강에 대한 리얼한 글을 읽으며 그동안 요강의 소중함을 잊고 살은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드네요 작가님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공유해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그 여자의 시간

환영합니다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10	상규	2	조명래	2024-02-21

9	단독주택선호 이유서		조명래	2024-02-21

8	독거		조명래	2024-02-16

7	외갓집의 추억	3	조명래	2023-09-04

6	멸 치	2	조명래	2023-08-25

5	오솔길	2	조명래	2023-07-25

4	그루터기		조명래	2023-07-05

3	그 여자의 시간	2	조명래	2023-06-27

2	요강(尿鋼) 예찬	2	조명래	2023-06-09

1	환영합니다	5	poemmusic	202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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