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조명래
ㆍ작성일	2023-07-25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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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길

오솔길 / 조 명 래

오솔길은 배부른 오소리가 엉덩이를 흔들며 길을 냈다 해서 오솔길이라고 한다. 오솔길은 나에게 추억이 깃든 길이다. 첫사랑 숙이의 손을 처음 잡아본 곳도 오솔길이었고, 송아지를 앞세우고 소 풀 먹이려 다니던 길도 오솔길이었다.
이 추억의 오솔길을 이즈음에는 산허리를 가로지르는 임도가 다 끊어놓았다. 오솔길을 따라가다 보면 임도와 만나고 임도를 가다 보면 오솔길이 나온다. 몇 년 전에는 아내와 지리산 둘레길을 완주했다. 그 둘레길도 임도와 오솔길이 뒤섞여 있었다. 아쉬움이 컸다. 요즘은 웬만한 산에는 산허리를 갈라놓은 임도가 닦여 있다. 이 임도는 산불 진화에도 용이하게 이용되기도 한다.

산골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나는 오솔길에 대한 애착이 많은 편이다. 그 시절에 오솔길은 외갓집에 가는 길이었고, 농사를 짓기 위해 지게질하는 길이었으며 송아지를 앞세우고 송아지 따라가든 길도 오솔길이었다. 중학교 이 년 차에 아버지를 잃은 나는 칠 남매의 장남이었다. 우리 집에서 물건을 이동하는 유일한 이동 수단인 지게를 지고 강 건너 밭에다 봄이면 퇴비를 나르고 가을이면 수확물을 짊어지고 하루에 몇 번씩 강 건너 비탈길을 오르내릴 때면 우리 집과 밭을 연결하는 밧줄을 매달아서 도르래에 짐을 달고 왔다 갔다 하면 얼마나 편할까 하는 공상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지게질을 하다 보면 좀 힘들어도 쉬는 자리가 정해져 있다. 거리도 감안되지만 지게를 내려놓기 적당한 장소가 마땅히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지게를 지게 작대기로 받쳐놓고 강가 바위에 걸터앉아서 징검다리 사이를 스치며 흘러가는 강물을 하염없이 보고 있노라면 배에서는 꼬르락 꼬르락 소리가 났다.
우리 집은 왜 이리도 가난할까?
칠 남매 어린 자식 남겨두고 일찍 떠나신 아버지가 많이도 원망스럽고 미웠다. 타고난 가난이 아니었는데 아버지의 방만한 생활이 칠 남매를 고난의 길로 내몰았다는 생각에 아버지를 향한 원망이 어린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상급학교 진학이 어렵다는 것이 현실로 다가왔을 때 처음으로 절망이라는 생각을 떠올렸다.
학업을 잇기 위해 주린 배를 움켜잡고 부산 아미동 골목골목을 뛰어다니며 학습지, 신문 배달을 할 때에 길가 구멍가게에서 구워 파는 풀빵, 어묵 냄새가, 한창 성장기였던 나에게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 풀빵의 유혹을 떨치기 위해 일부러 그 구멍가게 앞을 피해서 둘러 다니기도 했다. 풀빵 한번 배불리 먹어 봤으면, 짜장면 한번 실컷 먹어 봤으면, 하는 것이 그때는 왜 그렇게 절실했는지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리다.
몇 년 전 고향 친구들과 꽤 깊은 산중으로 송이를 따러 갔었다. 현지에 도착한 우리들은 능선 오솔길을 한참 오르다가 송이가 있을 만한 곳으로 각자 흩어졌고, 야지에서 자란 아내는 뱀이 나올까 무섭다고 혼자서 능선을 따라 올라갔다. 시간이 좀 지난 후 송이는 찾지 못하고 심심했던 짓궂은 친구 하나가 자기가 산주인 것처럼 호루라기를 불면서 아내가 올라가고 있는 위쪽 능선을 향해 “거기 위에 있는 사람은 빨리 내려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혼자 올라가고 있던 아내가 놀라 혼비백산하여 급하게 내려오다가 그만 내려오는 길을 잘못 접어들고 말았다. 넘어지고 뒹굴고 가시에 찔리기도 하면서도 산 아래 계곡물만 보고 겨우 임도까지 가까스로 내려와서는 마침 그곳 임도를 지나던 사람을 만나 휴대폰을 빌려 연락이 되었다.
연락을 받고 급히 내려와 보니 아내의 몸꼴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고, 온몸이 물먹은 솜덩어리처럼 젖어서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자초지종 이야기를 들어보니, 당황하여 급하게 내려오다가 길이다 싶어 들어서서 조금 내려가면 길이 끊어지고, 또 길을 찾았다 싶어 내려가면 길이 끊어지더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울먹이기까지 했다. 그 와중에도 다 피어서 너덜너덜한 송이버섯 하나를 들고 있는 모습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하마터면 큰일 날뻔했다. 워낙에 악산이라 얼마 전에 그곳 계곡에서 밤에 손전등을 들고 송이버섯 채취를 하던 사람이 실족하여 절벽에 떨어져 사망하는 사고도 있었다. 지금도 아내는 송이 이야기가 나오면 그때가 생각이 나서 쿵닥쿵닥 가슴이 뛴다고 한다.

내 인생은 수많은 오솔길을 외롭게 걸었던 길이였다.
서러워서 걷고, 힘들어서 걷고, 외로워서 걸었던 길이다. 첫사랑 숙이를 기다리는 길도 오솔길이었고, 밥봉재 너머에서 산뽕잎 을 따오는 어머니와 누나를 마중 나갔던 길도 오솔길이었다.
궁핍을 면하지 못하던 아픔이 속 깊이 박혀서일까 생활이 조금씩 안정이 되고 나니 주위의 어려운 사람들도 돌아보게 되었다. 얼마 전 적은 액수지만 아내와 10년을 후원해온 어린이 재단에서 10년 기부 감사장을 받았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시큰둥했던 아내도 흐뭇해했다.
봄이 오면 아내와 함께 걸었던 지리산 둘레길을 추억을 더듬으면서 몇 코스 골라 걸어봐야겠다.
오솔길은 생각하는 길이다.
두 눈을 감아야 비로소 들리는 소리가 있는 곳도 오솔길이다.
이제 나의 오솔길은 서럽고 외로워서 걷는 길이 아니라 희망과 낭만이 있는 길이다.
길은 끊어진 곳에서 다시 시작된다고 했다.
오솔길은 언제나 시작이 끝점이다.

장계숙 2023-08-09 12:23	오솔길을 감상하며 많은 생각이 듭니다. 옛추억을 간직한 마음의 길이네요. 삶의 이야기가 가득한 친구 같은 길... 세월이 지나 자연도 조금씩 변해가지만 인간의 이기적인 선택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지금은 끊기고 사라져 없지만 맘 속에선 늘 그 오솔길을 찾아가 걸으니 다행입니다. 소소한 일상의 따스함이 가득한 아름다운 글입니다. 선한 의지는 늘 승리하는 법이니 따스한 마음 간직한 멋진 글 모두에게 감동으로 전해지길 응원합니다. 좋은 글~ 감사히 배독했습니다.

조명래 2023-08-10 10:13	안녕하세요 장계숙작가님 ! 변변치못한글 끝까지읽어주심에감사드립니다 항상건강하시고 다복하시길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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