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정대수
ㆍ작성일	2021-08-16 11:31

ㆍIP: 123.xxx.203

근심을 잊는 고개 "망우 고개길"

한 여름 더위가 심상치 않다. 출근하면서부터 몸으로 느끼는 더운 열기는 실내에서 가만히 있어도 에어컨을 켜야만 견딜 수 있을 정도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침에는 창문을 열어두면 그런대로 맞바람에 시원했는데 7월 중순을 지나면서 대기 온도는 실로 무시무시하다.
그래도 "여름이면 더워야 제맛이지." 했는데 지금의 기온은 더운 것보다는 찐다거나 굽는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기상청을 우스개 말로 "구라청"이라고 한다. 날씨를 예보하는 것이 어려운 줄은 알지만 빗나갈 때가 너무 많으니...ㅎ
어쨌든 기상청에서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상층까지 덮여있는데 여기다 티베트 고기압까지 확장하면 한반도에 "열 돔"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예보를 한다. 그렇게 되면 극심한 무더위를 겪어야 한다기에 조금은 겁도난다.

낮 12시 오전 일과를 마치고 점심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온다. 건물 밖의 온도는 온풍기를 돌리는 듯한 후끈후끈한 열기로 숨이 막히고 피부도 따끔거린다. 그리고 강열한 햇빛은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부시다 못해 눈을 찌른다. 손으로 햇볕을 가리고 게슴츠레 뜬 눈으로 서둘러 식당으로 간다. 점심은 삼환 건물 지하에서 신세계푸드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먹는다. 여섯 가지 정도의 반찬이 매일 다르게 제공되어 각자 식판에 담아 먹을 수 있는 작은 뷔페식이다. 국과 밥도 때마다 새롭다. 값은 6천 원이다. 종로에서 이렇게 착한 가격에 한 끼를 먹을 수 있다는 게 감사하다. 그래서 인근에서 많이 와서 식사의 즐거움을 더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점심시간이 되면 "오늘은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어렵게 고른 메뉴를 먹으면서 후회를 한적도 많았는데 이제는 고민할 필요가 없어서 참 좋다. 그런데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밥이며 음식들이 너무 맛있다 보니 매번 많이 먹게 된다. 그것까지는 좋은 데 결정적으로 배가 점점 나오고 있는 것이다. 뭘 먹을까의 고민이 내일은 좀 덜 먹어야겠다는 행복한 고민으로 내용이 바뀌었다.

퇴근시간에도 열기는 식을 줄을 모른다. 퇴근길 사람들은 손에 들거나 목에 거는 선풍기 또는 부채로 부지런히 더위와 싸운다. 코로나 19는 하루 확진자가 천명대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7월 12일 부로 수도권은 4단계로 격상되어 더 힘들게 한다. 마스크를 착용했다 하더라도 대중교통은 사람들로 붐비니 사실은 불안하다. 전철을 타고 핸드폰으로 책을 보며 회기역에 왔다. 이제 중앙선으로 갈아타고 구리까지 가야 하는데 열차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면 나가서 버스로 환승을 하기도 한다. 막연히 기다리기에는 지친 상태이고 시간도 아깝기 때문이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더운 열기를 예상하고 역사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불과 조금 전 그 열기가 아니다. 바닥에 물기가 있어서 하늘을 보니 먹구름이 몰려다니는 것이 한차례 소나기가 지나간 듯하다. 요즘 소나기는 비만 오는 것이 아니라 강한 바람을 동반한다고 들었다. 아마도 강풍이 열기를 몰고 간 것 같다. 거리에 나뭇잎들이 바닥에 떨어져 물기를 머금고 있는 모습이 그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듯하다. 덕분에 한결 시원해진 바람이 분다.

회기역 2번 출구로 내려와서 예전에는 위생병원 지금의 삼육 서울병원 버스 정거장까지는 제법 걸어야 한다. 가는 길에는 오래전부터 이 지역을 대표하는 까만색의 웨딩 헤너스 결혼식장 건물이 자리매김하고 있다. 조금 더 가면 김밥집과 음식점들 몇 곳이 배고프고 피곤한 길손을 괴롭힌다. 특히 환기구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배비장 숯불갈비 집의 갈비 굽는 냄새는 거의 환상이다. 때문에 더욱 발걸음을 재촉하여 구리로 가는 버스로 환승한다. 차 안에서 핸드폰으로 책을 보는 것이 이제는 거의 일상이 되었다. 망우 사거리를 지나면 왼편으로 세계 최대의 감리교인 금란교회가 있고 다음으로 동부제일병원을 지나면 버스는 망우리공원 고갯길로 올라간다. 이 구간을 지나는 만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창밖을 바라보며 고개를 넘는다. 전망이 잘 보이는 창가 자리에 앉으면 불과 잠깐이지만 깊은 숲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숲길로 올라가면서 오른쪽으로는 운동장도 있고 이어서 망우리 공원 속으로 올라가는 길이 보인다. 왼쪽으로는 양원역 근처에 중랑 캠핑숲이 있다. 사시사철 지절대는 새들의 노랫소리와 봄이면 아름다운 가지 각색의 꽃들이 사열을 하고 있고 여름이면 짙은 녹음에 눈의 피로도 풀어주고 산들바람에 찌든 몸과 마음까지 잠시나마 평온해지며 가을이면 단풍길에 겨울이면 다시 올봄을 기다리게 되는 고갯길이다. 나는 이 구간이 참 좋다. 그래서 가끔 버스에서 내려 걸어가기도 한다. 술이라도 한잔 했다면 콧노래도 흥얼거리며 걷기에는 아주 그만이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 또 운동하는 사람 그리고 주인과 함께 나온 강아지들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꼬리를 흔들며 산책하는 평화로운 모습에서 나도 덩달아 여유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망우리 고개는 자료에 의하면 조선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종묘사직을 다진 후 무학대사에게 자신의 묏자리를 알아보게 하였다고 한다. 태조는 무학대사가 선정한 검암산 현재의 구리시 동구릉(건원릉)을 둘러보고 자신의 능지로 결정하고 궁으로 돌아가던 중 이 고개 위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능지를 바라보며 "이제야 근심을 잊게 되었다." 고 하였다고 한다. 이후 "근심을 잊는 고개"라고 한 데서 망우(忘憂) 고개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사람이 살면서 근심 없이 살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저마다 크고 작은 근심 덩어리를 안고 산다. 그런데 그 근심을 잊게 해주는 고개라니 밑져야 본전이라고 한번 넘어보면서 근심은 이 고개에 두고 가면 그나마 마음에 위안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근심을 잊어 즐거운 낙(樂)이 망우"라는 문구가 있는 고갯마루 교각 위에 잠시 머물며 넘어가는 해가 남긴 노을 아래로 멀리 북한산 국립공원의 멋진 모습을 보며 상념에 잠기기도 한다. 태조 이성계도 이 고갯마루 어딘가에 서서 자신의 능지를 바라보며 상념에 잠기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본다. 우리가 사는 곳 그리고 다니는 길에도 역사가 담겨 있다. 모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알고 나면 그 의미가 달리 느껴지고 그때를 회상해보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나도 이 고개를 걸을 때면 잠시나마 근심을 잊고 평안했던 것 같기도 하다. 예전에는 망우리 하면 공동묘지를 떠올리며 회피했는데 이제는 많은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고 근심을 잊게 만드는 아름다운 공원이 되고 있다.

망우로를 따라 서울 중랑구를 넘어서면 경춘로로 이어지는 경기도 구리시의 딸기원이다. 딸기원이라는 지명으로 보아 아마도 예전에 딸기가 많이 나는 곳이었겠다 생각을 했었는데 맞았다. 딸기원 마을은 "응골"이라 불리며 몇 가구 없었는데 1960년대 홍수로 왕숙천이 범람하자 25가구 정도가 이주하면서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6.25 이후 큰 규모의 딸기 밭이 있었는데 1954년경 버스가 다니기 시작하면서 당시 버스 차장들이 편의상 딸기원이라 부르면서 마을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딸기 밭은 없는 것 같고 곧 개발을 앞두고 있다니 아담한 마을의 모습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보지 못하게 될 것 같다. 망우리고개 서옹 메밀 막국수 집을 지나가면 예전의 교문리 검문소 건물이 보인다. 당시에는 서울로 가는 길목마다 바리케이드를 쳐놓고 헌병들이 검문을 했다. 눈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헬멧을 푹 쓰고 "잠시 검문 있겠습니다."라고 경례하는 헌병들의 모습은 좀 위압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검문소를 지나면 교문1동 행정복지센터 건물이 있다. 교문사거리 근처에 제법 규모가 큰 배밭이 있는데 서울 근교에 이런 과수원이 있다는 것에 신기하기도 하다.

버스 창밖을 보고 있는데 하늘에 회색과 주홍색 구름이 섞여 보이더니 교문사거리에 가까워지자 엄청나게 큰 무지개가 앞쪽에서 보인다. 잠시 보이다가 말겠거니 했는데 정거장에 내려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얼른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이럴 때 좋은 카메라가 있었다면 멋진 작품이 나올 만도 한데 좀 아쉽기도 하다. "무지개" 하면 초등학교 교과서에 김동인 님의 소설이 생각난다. 무지개를 쫓았던 소년처럼 나도 무지개를 쫓아 왕숙천 쪽으로 더 가볼까 하다가 포기하고 사진으로 남기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근심을 잊는 고개 "망우 고갯길"을 넘어와서 좋았는데 덩달아 무지개 그것도 쌍무지개를 보면서 잠시나마 꿈을 좇는 소년의 마음이 되었다. 다음날 아침에는 각 방송사마다 카메라에 담긴 아름답고 웅장한 모습의 무지개 영상을 보여준다. 코로나와 폭염으로 지친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한 소박한 배려인 것 같기도 했다.

정찬열

2021-08-18 06:57

`정대수`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존경하는 정대수 작가님
금년같은 무더위와 빗금치는 코로나에
더구나 아직 직장을 나가고 계신다니
고생이 많겠지만 그런날 그런 시간들이
얼마나 행복합니까

서울의 대도심변두리에서 보는 쌍무지게
메스컴을 탈만도 하는 전경 입니다.
작가님의 글을 읽으며 어릴적 끝없이 쫒아가던
무지게 쫒던생각속에 즐감으로 배람했습니다.

엊그제 밤을 적신 비가내리더니
새벽이면 귀뚜라미 합창이 여운을 남김니다.
항상 건강과 행운이 함깨 하시기를 기원 합니다.


정대수	정찬열 작가님 반갑습니다. 올해는 참 많이 더웠지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더위의 공포와 싸우고 있고 많은 희생자가 생기고 있습니다. 게다가 산불까지 발생하여 더 힘들게 하고 있지요. 다행히 우리나라는 곧 가을이라는 좋은 계절이 오지요. 이미 입추가 지났고 곧 처서입니다.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찌는 풍요로운 날들이 되겠지요. 저도 참으로 오랜만에 무지개를 봐서 정말 기분이 좋았답니다. 그래서 사진으로도 담았는데 영상을 볼때마다 마음이 셀레이고 좋습니다. 가을이 왔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늦더위가 만만치 않습니다. 건강 관리 잘 하시고 만사에 형통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바쁘신 중에도 걸음하셔서 귀한 말씀을 남겨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8/18 10:14

병원과 미장원

시간을 쪼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