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정대수
ㆍ작성일	2021-12-09 11:09

ㆍIP: 123.xxx.203

외출 준비

얼마 만에 외출인지 모른다. 천천히 기억을 더듬어 봐도 제대로 격식을 갖춘 모임이나, 행사에 참석한 적이 두해, 세해, 넷, 다섯 해를 넘겨봐도 없다. 경조사로 빠질 수 없는 자리에는 마지못해 다녀온다고는 했지만 외모나, 옷차림은 소홀했고 바쁘다는 이유로 급히 자리를 떠나기가 일수였다. 그러다 코로나 19의 사회적 거리두기는 그나마 다니던 외출도 돈으로 대신하게 되었고 집안도, 친구도, 사회도, 모임까지 자꾸만 거리가 멀어지면서 외부로부터의 모든 문을 닫고 지냈다. 오로지 회사와 집으로 오가는 것이 전부이다 보니 외출은 나와는 거리가 먼 남의 일처럼 되었다. 주말이나 시간이 나도 홀로 또는 가까운 한, 두 사람과 산행을 하거나, 미뤘던 집안일을 하거나, 일주일간의 먹거리를 준비한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점점 소심한 쫄보가 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외출복이 없다. 옷걸이에는 평상복과 자리를 바꾸어 등산복이 걸리면서 등산복이 평상복이고 출, 퇴근 복장이 되었다. 어쩌다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산에서 오세요?", 또는 "산에 가세요?"라고 복장을 보고 말할 정도로 오랜 등산복의 이미지는 자연인 아닌 자연인으로 굳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작은 가방을 메고 다닌 지가 10년 정도 되었다. 그 가방에도 "핵가방"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사람들은 가방 안에 뭐가 들었을까 매우 궁금해한다. 가방 안에는 계절마다 내용물이 조금 다른데 여름에는 작은 우산, 시장가방, 휴지, 사탕 몇 개, 지갑, 메모장, 필기도구, 책, 마스크이고 겨울에는 우산 대신 장갑과 손난로가 들어 있다. 참고로 핵은 없다.ㅎㅎ 등산복과 가방의 조합에 운동화는 자연스럽게 산과 연결될 수 있다. 사무실 동료는 전화기에 이름 대신 닉을 "산 할아버지"라고 저장했을 정도다. 등산복을 좋아하게 된 것은 산을 좋아하기 때문인 점도 있지만 활동이 자유롭고 무엇보다 세탁이 편하기 때문이다. 기계세탁을 자주 할 필요도 없고 여러 벌을 돌려가며 나름대로 깔을 맞추면 나만의 외출 준비는 끝난다.

구두를 신어 본지도 아마 20년 전이나 되었을 것 같다. 이십 대에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구두와 사랑에 빠졌다. 내가 구두를 좋아하게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구두를 신음으로 키가 조금 더 커 보이는 것이 목적이었고, 두 번째는 구두 발자국 소리가 나를 사로잡았다. 세 번째, 계절에 따른 구두와 옷의 아우라에 눈을 떴다. 그래서 월급 중에 거금을 투자해서 구두를 맞출 정도로 애착을 가졌다. 당시에는 기성화 시장보다는 수제화가 대세였다. 신발장에는 검은색, 밤색, 노란색 등 여러 켤레의 구두가 파리가 낙상할 정도로 반짝반짝 광을 내고 대기하고 있었다. 지금은 여름용 운동화 한 켤레, 겨울용 운동화 한 켤레, 등산화 두 켤레, 슬리퍼 하나가 내 발을 책임지고 있다.

신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옛날 생각이 난다. 명절이나 혹은 학년이 바뀌면 어쩌다 아주 어쩌다 새 신발이 생긴다. 그것도 운동화다. 어렵게 장만해 주는 신발이 너무 좋아 아끼느라고 방안에서만 신고 돌아다니곤 했다. 그러다 꼭 신을 일이 생기면 더러운 곳은 피해 조심조심 다니다 집에 와서는 신발에 먼지를 털고 닦아서 잘 모셔 둔다. 그러던 중 동네 아이들에게도 자랑할 겸 신고 나갔다가 한참만에 돌아와서 디딤돌에 신발을 벗어 두고 청소 도구를 들고 왔는데 신발 한 짝이 없어졌다. 깜짝 놀라 주변을 살펴보니 기절초풍할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oh, my god!"
집에서 키우던 개가 마당 한 구석에서 새신을 물어뜯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개새끼야!"
소리를 지르며 지게 작대기를 잡고 쫓아갔더니 신발을 물고 냉큼 도망간다. 보통의 개들은 도망갈 때 물고 있던 것을 놓고 줄행랑을 치는데 이놈은 물고 간다. 나를 만만히 보는 것이지. 덩치 큰 개가 무서웠지만 신발을 물고 있으니 겁을 상실하고 쫓아갔다. 개가 내 신발을 물고 뜯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한 일이라서 황당하고, 기가 차고, 어이없고, 짜증 나고, 말로 다 표현하려면 숨 가쁘게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개와의 전쟁 끝에 간신히 돌려받은 신발은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동안 밥도 주고, 물도 주고, 똥도 치워주고, 집 청소도 해줬는데 이놈이 배신을 때리고 내 신발을 물어뜯어 울화가 치밀어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내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었던 신발에 대한 추억중 한 가지다.

2020년 대한문학세계 수필로 등단을 하고 보니 대한문인협회 행사가 봄, 여름, 가을, 겨울 4회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코로나 19가 장기화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는 강화되었고 행사는 기약 없이 계속 연기되었다. 때문에 외출로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는데 국내 백신 접종률 70%를 넘기고 21년 11월부터 위드 코로나가 되면서 12월 4일 토요일에 대전청소년위캔센터 대강당에서 겨울 행사를 한다는 협회 공지를 보았다. 참석하나, 가지 말까, 어쩌지 등으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참석 여부를 11월 15일까지 알려야 되는데 연말이 되어가니 일도 제법 바빠져서 상황을 봐서 결정하기로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시국이 코로나에 변이 바이러스 "오미크론" 등장으로 엄중해져서 단체모임은 멀리하는 것이 우선이고, 모두 처음 대하는 분들이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을 가기에는 너무 어색할 것 같아 망설여졌고, 그동안에 외부 활동이 전혀 없다가 나갈려니 엄두도 안 나고, 옷도 없는 등의 이유가 줄을 선다. 하지만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뵙고 인사를 하겠나 싶어 참석하기로 마음을 먹고 지회와 협회에 문자도 보냈다.

그러던 11월 24일 핸드폰으로 한통의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라서 받지 않을까 하다가 받았더니 다름 아닌 김락호 이사장님이셨다.
"안녕하세요. 정대수 작가님 이시죠?"
"대한문학세계 겨울호에 작가님의 글 (병원과 미장원)을 실어도 되겠습니까?"
"이번 행사에 참석하실 거죠?"
뜻밖의 전화에 순간 당황하기도 했지만 너무 반갑고 고마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참석여부를 유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석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전화 한 통화에 마음을 굳혔다.

차근차근 외출 준비를 한다. 먼저 옷을 챙겨보자. 수십 년 전에 입었던 검은색 겨울 바지 하나가 있고, 오래된 콤비도 하나 있고, 반코트도 하나 있어서 일단 세탁을 맡겼다. 신발은 단화를 한 켤레 장만했다. 가방은 아들이 쓰던 것을 얻었다. 역시 가방에는 장갑, 손난로, 지갑, 메모장, 필기구, 책, 휴지, 마스크가 들어간다. 이발은 아직 때가 일러서 두고 염색 대신 헤어젤을 구입했다. 날자가 임박하여 퇴근길에 세탁물을 찾아와서 걸어 두었다. 이때까지는 만사가 순조로웠다. 설레는 마음에 잠도 좀 설치고 당일 새벽 6시가 되어 나설 준비를 한다. 걸어둔 옷들에 세탁소 비닐을 벗겨내고 입는다. 바지는 허리가 안 맞다. 콤비는 옷이 커졌는지 내 몸집이 쪼그라들었는지 허수아비 같아 보이고, 반코트는 깃털이 빠져나와 내피가 너덜너덜하고, 단추는 떨어지고 야단이 났다. 부리나케 바느질을 하는데 바늘귀에 실을 꿰는 것도 부랴부랴 할려니 손에 땀이 나고 숨이 막힌다.

어쨌든 신부가 신랑을 맞이하듯, 애인이 생겨 첫 데이트 준비를 하듯 외출 준비에 나름대로 공을 들였다. 그런데도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서 보니 촌티가 줄줄 흐른다. 가방을 매니 더 거지 같다. 머리에 젤을 발라 하얀 머리카락이라도 정리하고 새로 산 단화를 신고 7시경 출발한다. 집안에서는 몰랐는데 구리역으로 가는 길에 내가 바지를 안 입고 나왔나 할 정도로 아랫도리가 썰렁해서 쳐다 보기까지 했다. 그동안 겨울이면 기모바지를 입다가 낡은 기지 바지를 입으니 영하 3도의 찬 바람이 그냥 느껴진 것이다. 그런데 더 불편한 것은 새로 장만한 단화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10 여분을 걸어가니 오른쪽 발등이 조여 오면서 아프기 시작한다. 옷도 신경 쓰이는데 신발까지 불편하니 걸어 갈수록 자세가 이상해지고 몸도 힘들어졌다. "나는 당신이 오래오래 걸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책에서 재활치료사인 저자 다나카 나오키는 구두, 운동화, 등산화를 막론하고 발에 맞는 신발을 잘 골라야 한다고 했다.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오래 신으면 발에 변형이 오고 결국은 무릎관절에까지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한 것이 생각났다.
"나는 오늘 무사할까?" 기대 반, 염려반, 설렘 반으로 대전을 간다.

염규식

2021-12-11 00:50

`정대수`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작가님의 구두에 대한 에피소드 감사히 배독하고갑니다.
항상 좋은 작품으로 귀한 교분 나누었어면 합니다.
방역작업으로 늘 어수선한 세상입니다
건강 유의하시구요 문운 창대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고운밤 되십시요---^^


정대수	염규식 작가님 반갑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이렇게 찾아주시고 부족한 글을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서재를 통하여 작품도 접하고, 인사도 주고, 받는 장이 되면 참 좋지요. 귀한 교분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작가님 께서도 항상 건강하시고 만사에 형통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12/11 08:47

박희홍

2021-12-12 04:46

`정대수`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존경하는 정대수 작가님

["안녕하세요. 정대수 작가님 이시죠?"
"대한문학세계 겨울호에 작가님의 글
(병원과 미장원)을 실어도 되겠습니까?"
"이번 행사에 참석하실 거죠?"
뜻밖의 전화에 순간 당황하기도 했지만 너무 반갑고 고마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참석여부를 유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석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전화 한 통화에 마음을 굳혔다.]

그렇게 하여 참석해 주시고 ”한국문학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하셨군요. 수상 축하합니다. 먼발치에서 수상하시는 모습은
뵈었지만 직접 만나 축하 인사는 못 했습니다. 축하합니다.
”외출 준비“에서 한 편으로는 저를 보는 듯합니다.
곱게 지피신 수필 마음 깊이 간직해 갑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주말 더 행복하세요.


정대수	존경하는 박희홍 시인님 반갑습니다. 먼 걸음 하시고 부족한 글을 읽어 주시고 수상을 축하해주셔서 넘 감사드립니다. 저도 시인님의 한국문학 예술인 대상을 수상하시는 모습을 먼 발치에서 뵈었고 박수를 드렸습니다. 다시 한번 수상을 축하 드립니다. 이번 겨울 행사에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마음을 다지는 좋은 계기가 되었답니다. 시인님의 작품에서 처럼 이제 12월의 종착역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마무리 잘 하시고 22년에도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만사에 형통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12/12 08:55

정찬열

2021-12-12 19:13

`정대수`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인사가 늦였습니다.
그토록 반가웠었던 존경하는 정대수 작가님~!
대전의 행사는 너나 할것없이 마스크로
절반이상을 안면을 가렸으니 누가 누구인지
어렵사리 시상이 있을때 자리에 앉은것을 보고야
찾아 뵙는 실정이니 서로가 반가워도 오래도록
가까깝게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이 부담이 되었다.

아마 정작가님이 저를 찾아 주시어 인사를 나누것
같기도 한데 제가 한국 문학 올해의 작품상을 받고
정대수 작가님께서 한국문학 올해의 작가상이 연이어져
차분한 시간을 갖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올해의 작가상 수상을 늦게 나마 축하 드립니다."
급박한 시간에 무관심을 드린것 같아 송구함 뿐입니다.
신축년도 저물어가는 12월 중순에 마무리 잘하시고
임인년 새해 뜻하시는 소망과 행운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 합니다.


정대수	존경하는 정찬열 작가님 반갑습니다. 협회 겨울 행사에서 인사를 드릴려고 했는데 코로나로 경황이 없는 가운데 치르다 보니 시간적인 여유도 없었습니다. 먼 발치에서만 작가님의 한국문학 올해의 작품상 수상하시는 모습을 뵈면서 박수를 드렸습니다. 다시 한번 수상을 축하 드립니다. 이제 한 해를 마무리 해야 하는 시점이 되었습니다. 마무리 잘 하시고 22년에도 건강하시고 훌륭한 작품 활동으로 좋은 결과가 있으시길 바라며,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12/13 06:36

한영택

2021-12-13 23:41

정대수 작가님 안녕하세요?
작가님의 글 잘 봅니다. 오랜 기간 동안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모처럼의 바깥나들이 반갑고 즐거운 일이지요. 이번 행사에서 올해의 작가상 받으심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왕성한 활동 기대합니다. 저도 행사에 참석했지만 미처 작가님을 뵙지 못했네요. 코로나로 인한 방역수칙 준수 등 그다지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서 조심하는 분위기라 행사만 치르고 바로 돌아가다 보니 다들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방역수칙준수 백신접종 등 오랜 기간 동안 나름 잘 지켜왔음에 불구 변이에 변이 코로나 확산되어 확진자 급증으로 또 어려움을 맞고 있네요. 건필하시고 암튼 무탈 건강하십시오.


정대수	존경하는 한영택 작가님 반갑습니다. 지난 겨울 행사에서 작가님의 한국문학 올해의 작품상을 수상하시는 것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며 축하의 박수를 드렸습니다. 다시 한번 축하 드립니다. 저도 단체로 버스를 타고 움직이다 보니 경황이 없어서 안타깝게도 제대로 인사를 드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행사때는 상황이 좀 좋아 지기를 바라면서 반가움을 나누기를 소망합니다. 코로나가 변이 바이러스까지 등장하면서 매우 위험합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 올해 남은 날 마무리 잘 하셔서 22년에도 좋은 작품으로 많은 사랑 받으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고맙습니다.^^	12/14 05:28

12월이 되면

병원과 미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