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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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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주 김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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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대수 수필가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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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자 |
정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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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일 |
2021-11-24 10: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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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과 미장원
어느 날인가부터 누우면 명치 아래 복부에 볼록한 것이 만져졌다. 그리고 약간의 통증도 있었는데 마사지를 하듯 쓸어주면 없어지는 현상이 반복되었다. 병원 가기 싫어서 건강검진도 한번 안 하고 살았었는데 이번에는 그냥 견디면 안 될 것 같아 61년 생애 첫 건강 검진 예약을 했다. 평일에는 회사일에 지장이 우려되어 토요일로 부탁을 했고 병원에서는 날자와 시간을 정해주며 검진 하루 전날의 저녁 8시부터는 금식을 하라고 하고 당일에는 물도 먹지 말란다. 하루하루 긴장과 잡념으로 잠을 설쳐가며 토요일을 기다린다. 별일은 없겠지? , 검진은 제대로 할까? , 의사의 실력은? , 장비는 좋을까?
마침내 토요일이 되고 불안한 마음으로 병원이 있는 건물로 갔다. 병원은 구리시의 돌다리 사거리 리맥스 빌딩 4층에 있는 서울 본내과 의원이다. 안전한 검진을 위해서는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이 더 좋지 않겠냐고들 하는데 내 생각은 약간 다르다. 큰 병원은 절차도 복잡하고 사람들도 많아 좀 불편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동네 병원은 규모가 작은 반면 가족 같은 분위기에 의사와의 대화도 여유롭고 자세한 진료를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기다리면서 보니까 건물 내에는 치과, 신경과, 외과, 피부과, 내과 등 여러 전문분야의 개인 병원들이 있었다. 그리고 약국까지... 그래서인지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오르락내리락한다.
아침 9:30분에 병원으로 들어가니 이미 진료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병원의 첫 이미지와 간호사들의 첫 인상에는 일단 마음을 놓기에 충분했다. 간호사가 안내하는 곳으로 가자 설문지를 주며 작성하란다. A4 용지 5 페이지 분량의 설문지는 작은 글씨로 빼곡해서 마치 시험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설문지 작성을 마치고 약물 부작용이나 이상 증상 등의 유무로 의사와 상담하고 검진이 시작되었다. 옷을 갈아입고 X-레이 촬영을 하고 방을 옮겨 키, 시력, 청력, 허리둘레, 혈압검사와 채혈을 하였다. 다음으로 우려했던 위 내시경을 할 차례다. 간호사가 위를 밝게 해주는 것을 먹게 하고 목구멍 마취재를 주면서 입에 머금고 10초간 있다가 삼키란다.
"하나, 둘, 셋 ... 열 삼키세요."
잠시 후 정말 입안이 약간 얼얼해진다.
"새우처럼 옆으로 누워주세요".
나는 말 잘 듣는 온순한 새우가 되었다.
누워있는 사이에 여러 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한 것을 의사는 아는 것 같았다.
"안심하시고 시작하겠습니다."
"많이 힘드시면 수면으로 하겠습니다."
난생처음 보는 내시경 기구의 크기에 기가 죽는다. 직경이 거의 1센티미터가 되어 보이는 검은 호스가 카메라 불빛을 반짝이는 것이 마치 뱀이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차라리 보지 말걸 하는 생각도 잠시 기구를 목구멍 안으로 밀어 넣으면서 의사는 말한다.
"꿀꺽 삼키세요."
순간 당황해서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며 힘을 주었나 보다.
"몸에 힘을 풀어주세요."
의사와 간호사의 말에 긴장을 조금 놓고 삼키자 "크~~ 억"하는 트림 소리와 동시에 깊숙이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침이 나오면 그냥 입 밖으로 흘리세요."
"잘 하고 계십니다."
위속으로 들어간 기구는 카메라 셔터 소리가 여러 번 들리고 확인할 부분이 있다고 더 깊숙이 밀어 넣는 것 같았다.
위 내시경을 마치고 종이컵과 막대 하나를 주면서 화장실에서 소변을 컵에 담아 막대로 적신 후 소변은 버리고 컵과 막대만 가지고 오란다. 이것으로 일단 검진은 끝났다. 위 내시경이 촬영된 영상을 모니터로 보니 기분이 묘하다.
"뱃속이 저렇게 생겼구나."
신비롭게 보고 있는데 의사는 위에 용종 같은 것이 하나 있는데 조직검사를 해봐야 알겠다고 하면서 하나를 더 보여준다. 그것은 십이지장인데 안쪽이 아니라 장 바깥으로 작은 혹이 하나 장을 밀고 튀어나온 부분이 있다고 한다. 장 안쪽이 아니라 바깥이기 때문에 CT나 초음파 검사를 해봐야 알 것 같다고 하면서 확대를 해서 가리키는데 제법 볼록한 게 보였다. 그동안 배에 딱딱한 것이 만져졌고 누르면 통증이 느껴진 원인이 밝혀진 것이다.
의사는 일주일 분량의 약을 처방해주면서 우선 약을 복용한 후에 초음파 검사를 해보자고 한다.
"약을 잘 드시고 일주일 후에 오세요."
대장 검사를 위한 채변봉투와 처방전을 가지고 병원을 나와 약국에서 봉투 가득 약을 받아 들고 집으로 가는데 만감이 교차한다. 그동안 건강에 대해서 자부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운동도 꾸준히 하며 큰 아픔 없이 지나 좋았는데 이제 나이를 먹어가면서 차츰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니 막막하고 이것으로 즐거운 인생이 끝나는 것인가 생각하니 발걸음이 천근만근이다. 심란함에 배고픈 것도 모르고 있다가 가져온 약을 먹기 위해서는 뭐라도 먹어야 되는데 마땅한 것이 없다.
시장으로 갔더니 콩물이 시원해 보인다. 콩물에 메밀국수를 말아서 조금 먹고 기분 전환도 할 겸 그동안 코로나 때문에 미뤄 왔던 이발을 하러 단골 미장원을 갔다. 미장원은 거의 여성들의 공간이다. 그것도 할머니, 아줌마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면서 동네 정보통이기도 하다. 60대 원장님은 뭐라 말을 안 해도 자리에 앉으면 마음에 쏙 들게 커트를 해준다. 전동 바리캉과 가위에 잘려서 날리는 머리카락을 보니 검은색은 거의 보이지 않고 하얀 머리카락이 바닥으로 쌓인다.
"이제 이렇게 되었구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며 세월의 무상함에 처연해하고 있는 중에 내 마음을 알 리 없는 미용실 원장님이 묻는다.
"깔끔하게 이발을 하고 나니 느낌이 어떠세요?"
우스개 말로 남자들은 이발을 "벌초"라고 하는데
"벌초를 하고 나니 쓰고 있던 모자를 벗은 기분입니다." 하고 어색하게 웃는다.
이발을 하고 나서 바뀐 모습을 보니 병원에서의 무거웠던 마음이 그래도 조금은 진정되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할머니, 아줌마들이 몸이 아파서 병원을 다녀온 후 들리는 곳이 미장원이었다. 미용을 하며 심란한 마음을 하소연하고, 공감하고, 울며, 웃는 모습들을 보아왔다. 어느덧 나도 그렇게 하고 있었다.
하루에 세 번 약을 먹으며 제발 약으로 해결되기를 마음으로 빌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토요일이 되어 무거운 마음으로 다시 병원을 갔다. 날씨도 내 마음을 아는지 비가 내린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혹으로 건강에 빨간불이 켜졌는데 큰일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했다. 복부에 젤 같은 것을 바르고 차가운 기계로 촬영을 하며 초음파 검사를 한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멈추세요."
자세를 바꿔가며 숨을 들이쉬고 멈추기를 반복하는데 숨쉬기를 참는 것이 매우 힘든다는 것을 느낀다. 의사와 간호사의 알 수 없는 대화가 오가면서 검사를 마치고 모니터를 보며 의사와 앉았는데 마치 수험생이 시험 점수를 기다리듯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약은 다 드셨어요?"
의사는 모니터를 보며 뜬금없이 묻는다. 다 먹었다고 하자 초음파 영상을 보여주며 별 이상 증상을 발견하지 못했다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십이지장 부분의 볼록했던 것이 없어진 것이란다. 의사도 미심쩍은 듯 CT를 해보면 더 정확하겠지만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한다. 더 이상 약 처방도 없다.
"지내시다가 다시 그런 증상이 있으면 병원으로 오세요."
병원을 나오니 비는 더욱 거세게 쏟아붓는다. 병원으로 들어갈 때의 비는 무겁고 어두웠는데 아무런 증상이 없다는 결과를 듣고 병원을 나설때의 비는 그동안 무거웠던 내 마음의 짐을 씻어 내기라도 하듯 시원스럽게 잘도 내린다. 굵은 빗줄기가 마치 하늘에서 국수를 뽑아내는 것 같아 보여 한동안 올려다본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인생을 생로병사라 한다. 살면서 아프지 않을 수가 없고 나이를 먹을수록 병이 찾아오게 마련이다. 아프면 마음도 약해지고 겁도 난다. 병원이 좋아서 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늦게 가서 후회하는 것보다는 중간중간 검진을 받아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을 한다. 조선왕조의 상징 경복궁에는 왕의 침전을 강녕전(康寧殿)이라고 한다. "강녕" 은 오복 중에 하나로 건강의 중요함을 강조한 것이다. "구구팔팔이삼사"라는 말이 있다. 구십구 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 병원신세를 지고 죽는다는 뜻인데 건강하게 살다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사람의 마지막 소망일 것이다.
"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많은 것을 잃는 것이고,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라." 8월에 닥쳤던 태풍이 땅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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