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염규식
ㆍ작성일	2013-11-04 17:52

ㆍIP: 113.xxx.43

가을저녁산책

小天 / 염규식

퇴근 후의 저녁 노을과의 만남은 내가 즐겨 찾는 하루 일과의 하나다
안개 끼고 흐린 날은 또한 그대로가 좋다.

도심을 피해서 이사 온 곳이 도시라고 해도 산자락의 내가 거주 하는 곳은 주로 노인네가 많다.

젊은이들은 높다고 잘 오지 않지만 내가 일부러 선택해서 회사와는 30분 거리니
불편하지 않다,

해가 지고-써늘한 바람에 등짐 지고 조용한 걸음으로 산책해본다.

천년만년 살 것 같은 마음으로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에 늘 아쉬움만 남는 게 인생인가 보다. 산책길의 저녁은 쓸쓸함이 오히려 더 좋은 것이 이제 나도 나이가 드는가 보다.

오늘은 퇴근하며 보라색 ,자주색 들국화를 사서 화분에 옮기고 ,다른 화분들과
상견례를 시키고 여러 화분들의 배치를 새로 했더니 녀석들이 좀은 허전 한지
씁쓰레 하는 것 같아 다시 제자리로 고쳐 놓았다.
허허, 이제 요 녀석들의 눈치도 봐야 하나보다. 저희들도 옆에 있는 정든 친구와
헤어지기 싫어하는 것 같다.

산책길의 길을 돌아 새 화분에 넣을 흙을 준비하다가 어릴 적 생각이 난다

초등학교 시절 온 산을 헤집고 다니면서 벼메뚜기를 잡아서 구어 먹든 일,
비를 피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 놓고 뛰어 놀다가 비가 오는 날이면 산속기지로 피신해서 거기서 동무들과 비를 피하곤 했다.

하루는 여느 때와 같이 동무들과 놀다가 어느덧 배고픈 줄 모르고 해가 지고 있었다. 모두들 배가 고파서 몰래 주인 없는 무우밭에 들어가 생무우를 뽑다가 제대로 깍지 못한 손톱 밑에 흙이 시커멓게 들어가고 이빨로 무 껍데기를 깎아 먹다가
주인한데 잡혀서 호되게 얻어맞고 고무신을 뺏겨서 늦게까지 벌을 받고 고무신을 돌려받고 귀가할 때 커다란 무 하나 씩 손에 쥐어 주던 기억이 새로워서 그냥 부드러운 흙만 골라서 손으로 흙을 파서 담아왔다.

참으로 세월은 유수와 같다 소년시절의 꿈과 이상은 어디가고 이제 산기슭에서
작은 사업을 하면서 그냥 자연과 문학에 소일 하는 나 자신을 볼 때 한편으론 나의 지나온 삶이 후회 서러운 적도 있지만 열심히 잘도 살아왔다.

이 세상에는 한포기의 풀도 나무도 돌도 모든 만물이 조물주의 뜻에 의해 필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나는 살아오면서 나의 삶이 이 세상 어느 누구엔가 어떤 영향력을 주면서 살아 왔는지 돌이켜 보니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상처 준 사람 들이 더 많음은 내가 그렇게 잘 살아온 것은 아닌가 보다.
이제라도 나의 삶을 조금이라도 나누고 배려하며 그 길이 내가 조금은 힘들어도 나아가고 싶다.

수많은 계절이 지나면서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춥고 더운 모진 날씨에도 늘 여름에는 푸른 가지로 그늘을 만들고 겨울에는 낙엽으로 시인의 가슴에 다가오는 말없이 지켜보는 늙은 벚꽃나무 같이 살아 보려고 한다.

가는 세월이 매정키도 하고 해야 할일은 태산 같은데 젊을 때 깨닫지 못함은 유독 나뿐만이 아니지만 그래도 그 당시의 젊은 청춘답지 않게 미래를 위해 인생계획표를 써놓고 살아온 지난 청춘이었기에 아쉬움 은 더욱 크다.

와이셔츠 속으로 스며드는 가을 저녁 바람이 오늘은 유난히 찬 것은 남은 나의 삶에 대한 의지가 약해진 것도 아닌데 아마 조금은 이제 삶을 관조하는 단계에 오지 않았는가 생각해본다.

늘 상 우리의 삶이 오늘과 내일에 속고 힘들어도 변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는
자연을 보며. 늦게나마 하나씩 배우며 나 자신을 격려하고
가을 저녁 산책을 마친다. -끝-

장용순 2013-11-05 05:48	`염규식`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나이가 들어서 후회하는 것은 하다가 실패한 일이 아니라 하지 않은 일이라고 합니다. 해야 할 일이 있다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인생을 덜 후회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즐거운 가을 산책 마음껏 즐기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정찬열 2013-11-10 10:26	`염규식`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염규식 작가님 사람이 나이 들면 철든 다는 옛말 헛말이 아닌것 같습니다. 우리가 일상으로 느끼고 살아온 생활속에 자연과 더불어 문학의 꿈을 펼치며 값진 노후를 실천 하시네요 산책도 하시여 건강을 챙기시여야지요 늘 건강 하시고 향필을 기원 드림니다.

윤혜석 2013-11-15 10:27	`염규식`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염작가님, 반가와요~ 정말 오랜만에 수필서재 글을 올리셨네요^^ 편안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는 글입니다. 나를 돌아보고 남은 날들의 삶의 자세를 다시금 바로 잡아보게 됩니다. 아름다운 저녁 산책, 마음을 살찌우는 고마운 시간되었네요. 늘 건강하시고 자주 뵙게 되기 바랍니다.

염규식 2013-11-06 16:47	《Re》장용순 님 , 수필서재까지 오신 님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님의 고운 댓글에 늘 힘을 얻습니다-- 건필하십시요

염규식 2013-11-11 15:13	《Re》정찬열 님 , 수필서재에 왕림하신 귀한 걸음 감사드립니다 하늘높고 푸른 가을하늘 더욱 필향에 심취하시구요-- 늘 건안 건필하십시요

염규식 2013-11-15 12:01	ㅎㅎㅎ--윤작가님 진작 좀 오시지요-- 윤작가님이 비운 서재 먼지 않겟습니다 하여간 늘 건강하시구요--행복하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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