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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영칠 수필가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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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자 |
황영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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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일 |
2023-04-27 08: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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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33년 만에 불러봅니다
황영칠
비록 가난하였지만 꿈 많은 소년이 꼴지게를 지고 다니면서 자란 고향 산천을 생각만 해도 마음이 저리고 가슴이 따뜻해 진다.
하지만 너무 많은 세월이 지났기에 봄 동산을 생각하면 배고픈 시절 어머니의 눈물겨운 자식 사랑이 가슴을 미어지게 하면서 내 나이가 이미 어머님 떠나실 때 보다가 더 들었다는 생각에 어머님의 사랑과 불효한 지난날이 더 저리게 가슴에 다가온다
7년 전 KBS 라디오 방송에서 이른 새벽에 새벽잠 못 이루는 시니어들을 위하여 만든‘행복한 시니어’ 프로그램에서 어머님께 보내는 편지에 투고하여 방송되었던 글을 문단에 소개하면서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분들과 함께 부보님의 사랑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자 한다.
(편지 글)
사랑하는 어머니!
부르기만 해도 가슴이 저려옵니다.
어머니께서 저희 곁을 떠나신 지 33년이 지났습니다.
한 번도 가보시지 않은 험하고 먼 초행 길이 얼마나 두렵고 외로우셨습니까?
어머니께서 가난한 살림에 고생 끝에 병을 얻어 혼자 떠나시던 날, 어머님의 목숨보다 귀하게 키워주신 저희 4남매 중 누구 하나 배웅해드리지 못한 외롭게 떠나시게 한 죄스러움에 지금도 어머니 계시는 고향 하늘을 쳐다보고 ‘어머니’하고 부르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부를수록 눈시울이 젖어옵니다.
어머니께서는 1950년 2월 38세의 꽃처럼 아름다우셨던 시절, 누구보다 나라를 사랑하셨던 아버지께서 동네에 침입한 빨치산을 물리치시기 위해 산속에서 밤을 지새우고 돌아오셔서 갑자기 돌아 가셨다지요? 그 날로 청춘 과부가 되셔서 험한 세상 가시밭길을 어린 4 남매를 혼자 키우시면서 험한 세상 가시밭길을 헤쳐 나오신 불쌍한 어머니!
가난한 농촌 살림에 수많은 보릿고개를 넘으시면서 오직 자식들을 위해 갖은 고생 다 하시다가 지쳐 쓰러지셨던 어머니
그러나 당신의 삶은 가장 아름답고 고귀하셨습니다.
따뜻하고 인자하신 어머니
꽃 피는 봄 동산을 거닐면서 저희들에게 따뜻한 사랑과 꿈을 한 아름씩 나눠 주셨던 어머니의 모습이 제 가슴에는 아름다움과 그리움으로 남아있습니다.
깊은 산골 외딴집 뒷산에는 뻐꾸기 울음소리 메아리가 들려오고 분홍빛 진달래가 각시방 이불처럼 핑크빛으로 물들여진 아늑한 고향 산천 전경은 아직도 제 마음속에 남아있는 한 폭의 정겨운 그림입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아마도 그날이 저의 열 번째 생일날이었나 봐요.
학교에서 점심밥 대신 냉수로 배를 채우고 15 리 하굣길을 단숨에 달려와서 책 보자기는 툇마루에 던져두고 장작불 연기로 까맣게 그을린 컴컴한 부엌, 묵직한 무쇠 밥솥 뚜껑을 힘껏 열어보니 쌀이 반도 넘게 섞인 밥과 미역국 한 그릇이 놓여 있지 않겠어요. 부엌 흙 바닥에 앉아 설날에 먹어보고 처음 먹어보는 눈부신 쌀밥을 먹으려니 어머니의 사랑이 감격 스러워 목이 메었던 그날의 기억이 제 머리에 또렷이 남아있습니다.
그리운 어머니!
어머니께서는 직접 목화 농사를 지으시고 베를 짜시어 따뜻한 솜을 넣은 한복을 지어 입히시고 검정 물을 들인 베 조각을 기워 만든 책 보자기를 어깨에 메어 주셨지요. 어려운 살림에 초등학교에 입학 시켜 주시던 그 감격스러운 기억이 지금도 생생히 남아있습니다.
입학식 날, 통학로 양지 바른 길 섶에는 이른 봄 엄동설한에 언 땅을 헤집고 나온 파란 제비꽃이 곱게 피어 있었지요.
어머니께서는 그 제비꽃처럼 무척 이나 청초하고 아름다우셨습니다.
가슴이 저리도록 그립고 보고 싶은 어머니
평생을 해소 천식을 앓으시면서 금이야 옥이야 돌보시던 손녀딸에게 어머니께서 앓으시던 결핵을 전염 시켰다고 가슴을 치시며 당신 자신을 원망하고 미워하시던 어머니, 이제 걱정 마세요. 그 세 살이었던 손녀딸 세영(가명)이는 건강하게 자라서 어머니의 사랑스런 증손녀 둘을 낳아 행복한 가정을 꾸리면서 할머니께 감사하며 잘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어머니께서 떠나신 후 저의 4 남매에게는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 72세에 세상을 떠나신 것처럼 누나도 72세에 어머니를 찾아 먼 길 떠났습니다. 누나가 어머니를 찾아 갔던가요? 누나가 떠나기 전 어머니를 애타게 부르다가 먼저 떠났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3 형제는 의 좋고 행복하게 살면서 어머니의 증손자 10명을 생산하여 착하고 귀엽게 키우고 있습니다.
어머니!
어머니께서는 생전에 둥근 보름달이 떠오르는 날이면 정한 수 떠 놓고 어린 자식 잘되라고 비시다가 그리워하시던 아버지 곁으로 떠나셨지요. 하늘나라는 이 세상보다 무한히 넓다는 데 아버지는 만나보셨는지요? 이승에서 고생하신 어머니의 삶과 저희들을 훌륭하게 키워내신 무용담을 아버지께 빠짐없이 말씀 드렸더니 고생하셨다고 위로해 주시던가요?
아버지께서는 어머니를 한눈에 알아보시고 반가워 하시던가요?
혹시나 너무 늙으셨다고 서운해 하시거나 구박은 하시지 않으시던가요?
다시 한번 불러보고 싶은 그리운 어머니! 들녘엔 청 보리밭 녹색 물결이 출렁이고 뒷동산은 진달래꽃으로 화장하던 봄 날, 너나 할 것 없이 보릿 고개에서 나물 죽에 허기를 달래던 4월, 아지랑이 아른거리던 고갯마루에 저는 지게에 땔감을 한 짐 지고 어머니께서는 식량에 보태 먹으려고 쑥을 한 보따리 이고 가냘프신 몸으로 얼굴이 보따리에 파묻혀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시면서 용케도 구비진 고갯길을 넘어오시던 모습이 애잔한 그리움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날 어머니의 체온으로 따뜻하게 데워 두셨던 보릿겨로 만든 까만 개떡 하나를 치마 품에서 꺼내주시면서 “나는 배가 부르니 너만 먹어라”고 하셨던 어머니!
철없는 막내는 어머니께서 정말 배가 부르신 줄 알았습니다.
가냘프고 애처로운 어머니
어머니께서는
밤낮없이 일만 하시기에 피곤하지 않으신 줄 알았습니다.
항상 배가 부르다고 하시기에 정말 배가 부르신 줄 알았습니다.
쌀밥과 고깃국을 정말 싫어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잔칫집에서 품 안에 품어 오신 떡 한 조각을 내어놓으실 때 정말 배 불리 잡수시고 오신 줄 알았습니다.
평생을 화장 한번 하지 않으시기에 어머니는 꾸미실 줄 모르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 부를수록 가슴이 저려옵니다.
이 막내가 결혼하고 어머니를 모실 방이 없어서 난방도 안 되는 마루에 커텐을 치고 접이식 간이침대에 모셨던 불효막심한 제 자신이 한없이 원망스럽고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어머니!
어머니의 철없던 막내가 철도 덜 든 체 나이만 먹어 내년이면 일흔 살이 됩니다.
어머니!
어머니께서 귀여워하시던 막내 며느리 기억나세요?
어머니의 경상도 사투리를 못 알아듣고 쩔쩔매면서도 어머니를 극진히 모시던 막내며느리도 이제 환갑을 훌쩍 넘겨서 어머니의 손부며느리를 본 시어머니가 되고 할머니도 되었습니다.
오는 설날에는 어머니의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 증손자 모두 모여서 생전에 맛도 못 보신 고깃국에 쌀밥 차려 놓고 대문 활짝 열고 기다리겠습니다.
빙판길 미끄러우니 아버지 손 꼭 잡으시고 조심해서 정답게 오세요.
기다리겠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어머니 살아생전에 ‘사랑합니다.’란 그 흔한 말 한마디 하지 못했지만 어머니를 가슴 저리게 사랑하기에 생전에 주신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게 열심히 잘살고 있습니다.
먼 훗날 어머니를 찾아뵙고 부끄럽지 않은 자식이 되어 큰절 올릴 수 있도록 남은 삶도 열심히 살겠습니다.
그때까지 아버지와 함께 오순도순 재미있고 행복하게 사시기를 간절히 기도 드리겠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그립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병신년(2016년) 단풍이 아름다운 늦가을에
막내아들 영칠 올림
지금 다시 이 원고를 읽어보니 가슴이 더 아프고 부모님에 대한 죄송한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생각할수록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간절해지면서 나는 과연 부모 노릇을 부끄럼 없이 하고 있는가 하고 나 자신에게 되물어 보면서 부족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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